[김세영의 마니아썰]K골프와 골프의 神이 만드는 드라마

김세영 기자 2015. 8. 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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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골프의 대표주자인 박인비는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골프의 신(神)과 특급 배우가 만들어낸 올 여름 최대 블록버스터였다. AP=뉴시스

개인적으로 요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중계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부진에 빠진 탓에 남자 골프에 대한 재미가 반감된 영향도 크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LPGA 투어 경기 자체에 있다. 단순한 골프 경기가 아니라 드라마 한편을 보는 것 같은 환희와 감동 등이 녹아 있어서다. 각종 불륜과 배신, 음모가 판치는 막장 드라마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이 드라마는 더구나 라이브다. 짜릿함이 생생히 살아 있다.

스토리도 탄탄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막판으로 갈수록 극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한치 앞을 짐작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다 '골프의 신(神)'으로만 불릴 뿐, 얼굴이 여태 공개된 적 없는 작가는 극적인 반전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준다. 그가 극본을 쓰고, 연출한 드라마에 웬만한 작가나 PD는 명함도 못 내밀 판이다.

골프의 신은 올해 주연 배우로 대부분 한국 여자 골퍼들을 캐스팅했다. 흔히 'K골프'로 불리는 그들은 올 시즌 현재 20편의 작품 중 12편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역대 최다다. 그 중 상당수 작품이 메가 히트를 했다. 환상의 호흡이다. 사람들은 기꺼이 밤잠을 미루며 시청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김세영은 롯데챔피언십 최종일 18번홀에서 기적같은 칩인 파를 성공했다. 그 기적은 연장전에서도 이어졌고, 그의 샷은 올 상반기 최고의 샷 1위와 3위에 올랐다. AP=뉴시스

골프의 신과 K골프가 호흡을 맞춰 히트한 올 시즌 첫 작품은 지난 4월 롯데챔피언십이다. 주연은 김세영, 조연은 박인비였다. 평소 이름값으로 따지면 박인비가 주연이었겠지만 골프의 신은 신선함을 내세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골프의 신과 박인비는 더 큰 블록버스터를 준비하고 있었다.

골프의 신은 최종일 마지막 18번홀에서 김세영의 두 번째 샷을 물에 빠뜨려 패색이 짙은 것처럼 한 뒤 프린지에서 친 네 번째 샷을 기적 같은 칩인 파로 연결해 연장전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리곤 연장 첫 번째 홀에서 김세영이 다시 한 번 '샷 이글'의 기적을 만들도록 했다. 시청자와 갤러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골프의 신의 연출과 김세영의 연기에 LPGA 투어도 화답했다. 지난달 상반기 베스트 샷을 선정하면서 김세영이 이 대회에서 기록한 연장전 샷 이글을 1위, 앞서 정규 라운드 18번 홀에서 기록한 칩인 파를 3위로 꼽았다.

최나연은 월마트 NW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샷 이글을 기록하며 우승했다. 그 모습은 롯데챔피언십의 데자뷰였다. AP=뉴시스

최나연도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지난 달 월마트 NW아칸소 챔피언십에서다. 최나연은 최종일 당시 단독 선두로 출발했지만 후반에 스테이시 루이스에게 1타 차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하지만 막판 16~17번 홀에서 기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16번 홀에서 홀까지 142야드를 남겨놓은 상황에서 최나연은 8번 아이언으로 부드럽게 휘둘렀고, 볼은 그린에 한 번 튕기더니 곧바로 홀 안으로 사라졌다. 갤러리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여기저기서 "이글, 이글"을 외쳤다. 롯데챔피언십의 '데자뷰'였다.

다음 홀에서도 '8번 아이언의 기적'은 이어졌다. 파3인 17번홀에서 최나연은 이번에도 8번 아이언을 잡고 티샷을 날렸다. 볼은 홀 바로 앞 25cm 지점에 멈췄다. 거의 홀인원이 될 뻔했고, 중계 해설자도 "홀인원이나 다름없다"며 흥분했다. 탭인 버디를 기록한 최나연은 이 홀에서 사실상 승부를 확정했다.

골프의 신은 때론 대형 신인을 발굴한다. US여자오픈 우승자 전인지가 그랬다. AP=뉴시스

두 작품을 히트한 골프의 신은 더욱 K골프의 연기력에 신뢰를 보냈다. 이번엔 좀 더 참신한 인물을 찾았다. 그렇게 낙점한 배우가 전인지와 최운정이었다. 둘 다 스토리가 있었다. 전인지는 US여자오픈이라는 초특급 무대에 아직 한 번도 서지 않았을 뿐 기본기는 이미 탄탄했고, 최운정은 아버지가 캐디백을 메야 하는 애틋한 사연이 대중에게 먹힐 것이라고 확신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앳된 얼굴의 전인지가 막판 15~17번홀에서 3연속 버디 쇼를 펼치며 US여자오픈 정상에 오르자 자존심 강한 미국 관객들도 환호했다. 함께 그의 별명인 '덤보'도 전파를 탔다. 그가 일본 메이저 대회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도 새삼 알려졌다.

골프의 신은 최운정과 그의 아버지에게 인간 승리를 주제로 한 시나리오를 안겼다. 아버지와 딸은 우승 뒤 그린에서 펑펑 울었다. AP=뉴시스

골프의 신은 최운정에게는 156번을 실패하지만 마침내 157번째 도전 만에 우승한다는 '인간 승리'의 시나리오를 안겼다. 기나긴 레이스를 마친 아버지와 딸은 그린에서 펑펑 울었다. 그래서 골프의 신은 이 작품의 제목을 '마라톤 클래식'이라 했다.

특급 배우인 박인비에게는 좀 더 특별한 대우가 필요했다. 박인비도 연초부터 골프의 신에게 언질을 한 게 있었다. 바로 브리티시여자오픈이다. 박인비는 4대 메이저 작품 중 이 대회 주연만 아직 맡지 못했었다. '커리어 그랜드 슬램'이라는 타이틀도 걸려 있으니 올 여름 특급 블록버스터로 손색이 없었다.

골프의 신과 박인비는 주연 확정에 합의를 한 채 시나리오 구상에 몰두했다. 언제나 그렇듯 흥행 공식이 필요했다. '시련-인내-반전-환희'라는 4단계 공식이다. 브리티시여자오픈 직전 대회 성적이 신통치 않고, 대회 개막을 앞두고 허리 통증이 오는 게 첫 번째 시련이었다.

무대에 겨우 오르게 한 뒤에는 날씨로 괴롭혔다. 다른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극 후반부엔 버디를 잡아 시련을 이긴 듯하게 하다 다시 연속 보기로 무너지게 했다. 두 번째 시련이었다. 박인비는 언제나 그렇듯 인내 연기를 아주 잘 소화했다. 그가 처음 개척한 '무표정' 연기가 관객들에게 오히려 큰 어필을 했다. 마침내 14번홀에서 이글을 잡아 발판을 마련하고, 가장 어렵다는 16번홀에서 버디를 잡아 승부에 쐐기를 박을 때도 그랬다.

고진영은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골프의 신에게서 선택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조만간 주연 배우로 우뚝 설 것으로 기대된다. AP=뉴시스

골프의 신은 때론 신인 배우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에는 고진영에게 그랬다. 그에게 첫 주연 배우 자리를 주는 듯했지만 막판에 무너지는 구도로 극을 짰다. 신인인 고진영은 처음 온 기회였고, 전인지의 선례도 있었기에 내심 기대했지만 골프의 신은 외면했다. 그는 무대에서 내려와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골프의 신이 다음엔 고진영을 중용하기로 했다는 소문도 무대 안팎으로 퍼졌다.

K골프와 골프의 신은 이렇듯 올해 환희와 감동의 드라마를 연달아 히트하고 있다. 그들이 만드는 후속 작품이 더욱 기대된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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