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0년> 항일투사 후손 고려인 "내 이름은 계학림입니다"

2015. 8. 4.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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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에서 서거한 국어학자·항일투사 계봉우 선생 아들 "항일 사료 수집·연구위한 역사관 절실"

카자흐스탄에서 서거한 국어학자·항일투사 계봉우 선생 아들

"항일 사료 수집·연구위한 역사관 절실"

(크즐오르다<카자흐스탄>=연합뉴스) 김현태 특파원 = "내 이름은 계학림입니다. 아버님이 주신 이름인데 함부로 바꿀 수가 없었어요."

아흔의 고령에도 그는 또렷한 한국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계씨는 많은 고려인이 러시아식 이름을 쓰는 것과 달리 지금까지 자신은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자긍심에 '아버지가 주신' 한국 이름을 고집한다고 했다.

그는 국어학자이자 항일투사인 북우(北愚) 계봉우(桂奉瑀·1880~1959) 선생의 셋째아들이다.

계씨는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난달 연합뉴스와 만나 잊히는 항일투사들의 희생과 정신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예전에는 고려인들이 많아 독립투사들의 정신이 잘 유지됐지만, 지금은 대부분 세상을 떠나 그 뜻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며 말을 이었다.

계봉우 선생은 연해주에서 독립군 책임비서로 일하다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1937년 카자흐스탄 중부도시 크즐오르다로 넘어왔다. 그는 항일운동으로 1916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3년의 옥고도 치렀다.

국어학자이던 선생은 민족주의 교육에 헌신했다. 그는 크즐오르다에 온 후 80세의 일기로 현지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조선문법', '조선말의 되어진 법' 등 30여 편의 저서를 남기며 국어, 한국문학 등에 대한 연구에 매진했다.

선생을 따라 함께 온 계씨는 아직 크즐오르다에 살고 있다.

계씨는 "한국정부가 나서야 한다. 지금은 고려인들이 돈을 모아 관리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며 현지 항일 사적지 관리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크즐오르다에는 항일 무장투쟁의 전설 여천(汝千) 홍범도(洪範圖·1868∼1943) 장군, 계봉우 선생의 묘와 집터가 남아 있다. 또 1990년대 카자흐스탄 정부가 이들을 추모하며 지정한 거리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사료와 업적은 국내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홍범도 장군은 해방 후 반공을 국시로 삼은 남한에서 레닌으로부터 이름이 새겨진 권총과 돈을 받고 볼셰비키(소련 공산당)에 입당했다는 이유로 항일투쟁사에서 배제됐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과 비교될 수 있다는 이유로, 중국이나 소련에서는 그가 공산 정부 수립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족독립을 위해 항일운동을 했다며 외면당했다.

계봉우 선생 또한 공산주의를 받아들이고 한인사회당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조명받지 못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1995년에서야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계씨는 아버지를 잡으러 온 일본군이 집에 3번이나 불을 지르며 가족들을 괴롭혔던 사실을 회상하다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족보에서조차 아버지의 이름이 남아있지 않던 현실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한국정부에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고려인들과 국외독립운동가 후손들은 현지에 항일사적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계씨는 그러면서 "국외 항일투사들의 정신과 희생을 이어가려면 이제는 한국정부의 현실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크즐오르다에는 항일투사들의 사적지와 더불어 항일 사료들도 많지만 지금까지 방치되고 있다.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 때 크즐오르다에는 약 10만 명의 고려인이 뿌리를 내렸다. 그래서 현지에는 고려인들이 가져온 일제 강점기이자 조선 말기의 희귀사료가 많이 남아 있다.

크즐오르다 국립대학교 한국어·영어학과 안수현 부교수는 연합뉴스에 "현지에 한국 역사관 설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크즐오르다 대학 도서관에는 고려인들이 가져온 조선 말기의 일기와 사서삼경 등 사료가 많지만, 체계적 분류와 연구 없이 먼지만 쌓인다"고 설명했다.

크즐오르다 대학은 원동고려사범대학의 후신이다. 원동고려사범대학은 일제를 피해 러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이 후손에게 역사와 정체성을 전하고자 블라디보스토크에 세운 민족학교다.

강제이주 때 고려인 대다수가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면서 원동고려사범대학도 크즐오르다로 왔다.

이후 소련정권이 러시아 문화 우선정책을 펼치며 학교명이 크즐오르다 대학으로 바뀌고 고려인 관련 문서들은 창고로 옮겨져 세상과 단절됐다.

안 교수는 "크즐오르다에 있는 독립투사들의 추모공원 재단장 및 고려인 사료들을 모은 역사관 건립이 중요하며 이를 뒷받침 할 한국정부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mtkh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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