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넘긴 시각, 2200명 청중은 일어나지 않았다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김기철 기자 2015. 8. 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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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피아니스트 소콜로프, 잘츠부르크 축제서 리사이틀 앙코르만 6곡, 밤 12시도 넘겨.. 청중, 곡 끝날 때마다 환호해

자정을 10분 남짓 남긴 시각, 은발의 피아니스트는 다섯 번째 앙코르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3시간에 걸친 음악회에 지쳤을 청중들을 위로하듯 감미로운 선율이었다. 쇼팽 전주곡 중 15번째인 일명 '빗방울 전주곡'.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넘어가다 가슴을 둔중하게 울리는 터치가 강렬했다. 7분 남짓한 심야의 연주가 끝나자 2200석 객석을 가득 채운 청중들은 발로 바닥을 구르며 환호했다.

지난 1일 밤 9시, 여름 축제가 한창인 잘츠부르크의 페스티벌 대극장. '은둔형 연주자'로 알려진 러시아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Sokolov·65) 리사이틀에 청중이 몰렸다. 열여섯에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신동으로 주목받은 소콜로프는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찾아 서방 망명을 택하지 않고 소비에트 치하에 남았다. 스튜디오 녹음을 싫어해 지난 20년간 음반도 내지 않았다. 오케스트라 협연도 마다한 채, 독주회만 고집해왔으나 내한공연은 한 적이 없다. 지난 1월에야 2008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연주한 실황 음반이 세계적 음반사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나오면서 국내 애호가들의 갈증을 달래줬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소콜로프는 이날 바흐와 베토벤, 슈베르트 등 자신의 장기를 모은 프로그램을 내놨다. 바흐 파르티타 1번은 건반마다 영롱한 소리를 냈고, 베토벤 소나타 7번은 한 음 한 음 신중하게 눌렀다. 2부에 연주한 슈베르트 소나타(D 784)와 '음악의 순간'(D 780)도 흔들림 없이 진중했다. 몇 차례 건반을 잘못 누르긴 했으나 음악을 만들어가는 대가(大家)의 여정에 흠집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1부 초반 객석에서 휴대폰이 잠깐 울렸고 청중의 기침 소리가 연주를 방해했지만 소콜로프는 안중에도 없는 듯, 자신만의 우주에서 순항했다.

소콜로프는 알려진 대로 무뚝뚝한 음악가였다. 한 곡, 한 곡 연주하곤 목례하듯 고개만 숙인 뒤 바로 걸어나갔다. 2부의 슈베르트 소나타를 친 후, 잠깐 의자에서 일어섰다가 바로 앉아 '음악의 순간'을 연주했다.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머리를 가슴에 파묻듯 숙이고 몰입했다. 무대는 얼굴을 뚜렷하게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어두웠고, 객석은 프로그램조차 읽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만큼은 청중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날의 볼거리는 40분간에 걸친 앙코르였다. 쇼팽의 마주르카와 전주곡 등이 연주됐고,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청중은 발을 구르며 박수를 보냈다. 6번째이자 마지막 앙코르곡이 끝났을 때 자정을 넘어섰다. 콘서트홀을 떠나는 청중은 마법에 홀렸다가 겨우 빠져나온 듯 몽롱한 표정이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모차르트 고향 잘츠부르크에서 7월 18일부터 8월 30일까지 열리는 페스티벌은 음악 애호가들을 유혹하는 유럽 최고 여름 축제로 꼽힌다. 1920년 출범한 이 축제는 1956년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카라얀의 명성이 축제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올해도 플라시도 도밍고와 요나스 카우프만, 롤란도 비아존, 안나 네트렙코, 안젤라 게오르규 같은 스타들이 매일같이 오페라에 나서고, 빈 필하모닉과 보스턴 심포니, 베를린 필하모닉 등이 연주한다. www.salzburgfestival.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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