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忍'자 열 번 새기며.. 女帝, 역사가 되다

최수현 기자 입력 2015. 8. 4. 03:00 수정 2015. 8. 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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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 브리티시 女오픈 역전우승.. 아시아 첫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 메이저 '마지막 퍼즐' 맞추다 허리 통증에 거센 비바람.. "나흘간 열 번 '포기할까' 생각 끝까지 인내, 인내하며 극복" 최종일 7타 줄이며 대역전극 - 남편 남기협씨 '최고 버팀목' 사랑의 힘으로 슬럼프도 탈출.. ESPN "朴, 진정한 전설 됐다"

어떠한 상황이 와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박인비(27)는 '침묵의 암살자'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얻었다. 그의 인내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설명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박인비는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3개 메이저 대회 연속 우승(2013년), 단일 메이저 대회 3연패(2015년) 같은 놀라운 기록들을 쏟아내며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마침내 "남은 골프 인생 가장 큰 목표"라던 커리어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퍼즐 한 조각, 브리티시 여자오픈 트로피가 필요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의 거센 비바람과 주위의 무거운 기대가 그를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돌려세웠다. 3일(한국 시각) 트럼프 턴베리골프장 에일사코스(파72·6410야드)에서 끝난 이번 대회 최종 라운드 마지막 두 홀을 남겨놓고 역전에 성공하기까지 박인비는 오래 참고 기다렸다. 그는 "경기를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열 번쯤 찾아왔다"며 "포기하지 않았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10세 때 골프를 시작한 박인비는 2년 뒤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떠났다. 2002년 US주니어선수권 우승을 차지하는 등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2008년 역대 최연소 기록(만 19세)으로 US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화려한 성공의 길이 보장된 듯했지만 너무 일찍 '천재'로 주목받으며 오히려 자신감을 잃어갔다.

드라이버샷 궤도가 틀어지면서 슬럼프가 찾아와 4년 가까이 헤어나지 못했다. 골프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그런 박인비를 지금의 남편 남기협(34)씨가 잡아줬다. 박인비는 한국프로골프 투어에서 활동하던 남씨와 골프 아카데미에서 만나 가까워졌다. 남씨는 2011년 약혼 후 스윙코치로 박인비와 투어 생활을 함께하며 드라이버샷 궤도를 잡아주고 심리적으로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

2012년 7월 에비앙 마스터스 우승으로 '부활'을 알린 박인비는 골프 역사를 새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2013년엔 63년 만에 LPGA 투어 3개 메이저 대회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세계 랭킹 1위에 등극했고 한국 선수 최초로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작년 10월 결혼식을 올린 그는 지난 6월 위민스 PGA챔피언십 3연패를 이뤘다.

그러나 유독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는 매번 좌절을 맛봤다. 2012년 준우승했고, 2013년엔 4개 메이저 연속 우승에 도전했다가 부담감에 짓눌려 공동 42위에 그쳤다. 작년엔 최종 라운드 9번홀까지 2타 차 단독 선두를 달렸으나 이후 4타를 잃어 4위로 끝났다.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사건이었다"고 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박인비의 목표는 단 하나,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이었다. 동계 훈련 때도 일부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머물며 추위와 강풍 속에 패딩 점퍼까지 껴입고 훈련했다. 스코틀랜드의 악천후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박인비는 직전 대회인 마이어 클래식에서 마지막 샷 점검에 나섰지만 갑작스러운 샷 난조에 빠져 공동 44위에 그쳤다. 스코틀랜드로 이동해서는 허리를 굽히기 힘들 정도로 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는 "컨디션이 나빴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런 기대감 없이 골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1라운드 13위, 2라운드 9위, 3라운드 5위로 순위를 끌어올린 그는 4라운드에서 7타를 줄였다. 2번(파4)·3번홀(파5) 연속 버디에 이어 4번(파3)·5번홀(파4) 연속 보기를 기록했을 땐 '올해도 안 되나 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보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7번홀(파5)부터 4연속 버디를 잡아냈고 14번홀(파5)에선 9m 이글 퍼트를 집어넣어 한때 3타 차까지 벌어졌던 선두 고진영(20)을 따라잡았다. 16번홀(파4)에선 6번 아이언샷을 홀 90㎝에 붙여 결정적인 버디를 잡아내며 단독 선두로 나섰다.

박인비는 "비가 퍼붓고 바람이 휘몰아칠 때, 5번 아이언샷이 고작 100야드쯤 가서 멈출 때는 정말 괴로웠지만 끝까지 인내하며 극복해냈다"고 했다. 미 ESPN은 "박인비는 이미 한국 골프의 거인이지만 이제 세계 여자 골프의 진정한 '전설'이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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