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이 먹은 간장에 숨은 비밀

김은남 기자 입력 2015. 8. 4. 01:45 수정 2015. 8. 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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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홍제어린이집 옥상에는 장독 예닐곱 개가 햇볕을 받으며 늘어서 있다. 올 초 어린이집 원아와 교사, 부모들이 직접 담근 간장과 된장이 익어가는 장독들이다. 이 어린이집은 안전한 먹을거리 교육을 위해 8년 전부터 매년 직접 장을 담가 급식용으로 쓰고 있다.

이런 어린이집이 흔치는 않다. 지난 7월10일 서울시의회에서 이윤희 의원실이 주최한 '영유아 급식 식재료 및 장류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영성 교수(신한대·식품공학)는 서울 및 수도권 지역 어린이집 212곳을 조사한 결과 이중 절반가량(49%)이 값싼 혼합간장을 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나머지 50%는 양조간장, 1%는 한식간장 등 기타 간장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잠깐. 양조간장은 뭐고, 혼합간장은 또 뭘까. 간장은 제조 방식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일단 전통적인 방식대로 메주를 띄워 소금물을 섞은 다음 발효·숙성시켜 만드는 것이 한식간장, 일명 조선간장이다. 양조간장은 메주 대신 콩(대두)이나 지방을 뺀 콩(탈지대두)에 밀가루를 섞은 다음 이를 발효·숙성시켜 만든다. 이들 간장은 발효·숙성에 이르기까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년 이상이 걸린다.

그런데 이 같은 발효 과정을 생략하고 화학적 방법으로 2~3일 만에 속성으로 만드는 간장도 있다. 산분해간장이 대표적이다. 산분해간장은 말 그대로 탈지대두를 식용염산 등 산(酸)으로 분해시킨 다음 생성된 액체를 가성소다 등으로 중화해 만든 간장이다. 당연히 대량생산하기 쉽고 값도 싸다. 산분해간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몇 차례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콩을 산으로 분해하는 과정에서 3-MCPD (모노클로로프로판디올) 등 유해물질이 발생한다는 논란이 대표적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세계보건기구(WHO) 합동 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JECFA)는 3-MCPD를 '불임 및 발암 가능성이 있는 바람직하지 않은 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이런 산분해간장을 양조간장 또는 한식간장과 혼합해 만든 것을 혼합간장이라 한다. 이번 조사 결과 어린이집 절반 가까이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난 간장이 바로 이 혼합간장이다.

이에 대해 간장 제조사들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한 간장회사 홍보팀 관계자는 '산분해간장을 둘러싼 안전성 논란은 사실상 끝난 상태다'라고 말했다. 한때 3-MCPD 등이 문제가 됐던 것은 사실이지만 1990년대부터 위해성 저감 기술에 투자를 집중한 결과 현재는 산분해간장의 3-MCPD 발생량을 10ppb(10억분율)까지 획기적으로 낮췄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 기준(300ppb)은 물론 세계적으로 가장 엄격하다는 유럽연합 기준(20ppb)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그러나 이는 성인 기준일 뿐, 영·유아에 그대로 적용해도 되는 기준은 아니라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주장이다. 이날 김영성 교수와 함께 기조 발제에 나선 소혜순 희망먹거리네트워크 자문위원은 '영·유아기에 식습관이 형성되고 평생 건강의 기틀이 다져지는 만큼 불필요한 화학첨가물로 맛을 내는 장류나 양념류를 영·유아 급식에 사용하는 방식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례로 산과 중화제를 사용해 가공하는 산분해간장의 경우 역한 향을 가리기 위한 탈취제(활성탄)는 물론 강한 짠맛을 없애기 위해 액상과당, 효소처리 스테비아 등 감미료와 합성 조미료가 다량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혼합간장의 실체는 '논란'의 산분해간장?

김영성 교수는 혼합간장이라는 말로 실체를 가리는 것 또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산분해간장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면서 이를 보는 소비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산분해간장이라는 용어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이도 많다. '과일 통조림을 만들 때도 산을 많이 사용하지만 이를 산분해통조림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산분해간장은 작명에서부터 불리한 조건에 놓인 셈이다'라고 한 업계 관계자는 말했다. 그래서인지 시중에서 파는 간장 중 산분해간장이라 표기된 제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대신 이들이 선택한 우회로가 혼합간장이다.

문제는 비율이다. 현행 식품법상 혼합간장이라는 명칭은 산분해간장 99%에 양조간장을 1%만 섞어도 쓸 수 있다. 시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간장 중 하나라는 진간장의 경우 식품 유형은 '혼합간장'으로 분류돼 있는데, 그 아래 표기된 '혼합비율'을 살펴보면 '양조간장 7%, 산분해간장 93%'임을 알 수 있다. 진간장 이름을 약간 변형한 프리미엄급 진간장은 혼합비율이 '양조간장 20%, 산분해간장 80%'다. 양조간장 비율이 높아질수록 가격도 함께 올라간다. '양조간장이 불과 1~3% 섞인 것만으로도 혼합간장이라는 명칭을 쓸 수 있게 한 것은 문제다. 소비자를 현혹시킬 우려가 있다'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실제로 간장 사용 실태를 접한 어린이집 원장 상당수는 '혼합간장이 산분해간장으로 만들어지는 줄 몰랐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가 하면 비현실적인 급·간식비 또한 혼합간장 등 값싼 식재료의 사용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미순 참보육을 위한 보육연대 운영위원장은 '현재 표준 보육비용에 의한 급·간식비는 아동 1인당 일일 1750원이다(유치원 2150원). 교직원 식사 비용이나 급식 시설과 관련된 비용은 여기 포함되지 않는다. 이래서야 아이들에게 양질의 급·간식을 제공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구의원 출신인 서정순 서울 서대문구청 정책보좌관은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의 경우 먹을거리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전 세계적으로도 영·유아 급식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추세임에 비해 영·유아 급식이 여전히 안전급식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 또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에서 식품 완전표시제 캠페인을 이끌고 있는 오귀복 팀장은 '간장 병에 붙은 성분표시만 잘 봐도 내가 고른 간장이 무슨 간장인지, 산분해간장과 양조간장이 어떤 비율로 혼합돼 있는지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현명한 소비자라면 '전통 방식으로 만든~' 따위 광고 문구에 현혹되기보다 식품에 표기된 성분표시를 직접 꼼꼼히 따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은남 기자 /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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