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혜의 풋볼프리즘] 무리뉴 vs 벵거 : 누가 퍼거슨이 될 것인가

이은혜 입력 2015. 8. 3. 18:09 수정 2015. 8. 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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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언론들의 놀라운 '기사 타이틀 선정' 능력을 보면서 혀를 내두르곤 할 때가 있습니다. 단 하나의 단어에 정확함, 예리함, 약간의 냉소와 강한 독설 그리고 깊은 이면에 어떤 측은함까지 담아내는 번뜩임. 'HOW CHILDISH'는 2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데일리미러>지가 2015 잉글리시 FA 커뮤니티실드 경기 직후 뽑은 기사 제목이었습니다.

2일 경기에 나선 리그 우승팀 첼시의 감독 주제 무리뉴가 1963년생, FA컵 우승팀 아스날의 감독 벵거가 1949년생. 우리로 치면 53살, 67살의 어르신들이니 두 분도 어느덧 '꽃중년'을 넘어선 나이가 됐습니다. 그런데 시즌 개막 전초전부터 언론들에게 '초딩입니까!'하고 디스를 당하신 겁니다.

실시간 TV 중계나 모바일 영상을 통해 문제의 장면을 이미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경기 직후 두 감독이 보여준 싸늘한 태도를 보면 사실 '초딩이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법도 합니다. 이 날 경기는 아스날이 채임벌린의 골로 1-0 승리를 챙겼는데, 우승팀 자격으로 시상식을 마치고 내려오는 벵거 감독을 싹 무시하고 돌아서는 준우승팀 첼시 무리뉴 감독의 태도가 정말 가관(?)이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끝까지 기다렸다 아스날의 모든 선수에게 일일이 우승 축하인사를 전한 무리뉴 감독은 벵거 감독이 내려오자 휑하니 터널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준우승 메달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관중석의 '초딩'아이에게 던져주고요. 그것도 굳이 현장 중계 카메라 앞에서 그 모든 행동을 선보이는 '초딩급' 위치선정 능력까지 과시해 차라리 고도의 계산된 움직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을 정도였습니다.

익히 알려진 대로 두 감독의 앙숙 관계는 하루 이틀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벵거 감독이 아스널의 지휘봉을 잡은 것은 1996년, 올해로 재임 20주년을 맞습니다. 무리뉴 감독이 첼시에 온 것은 2004년. 부임한 지는 10년도 전이지만 첼시 재임기간은 올해로 모두 합쳐 7년째입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5년 간 첼시를 떠나있었으니 경력에서는 벵거 감독보다 한참 후배입니다. 그런데도 무리뉴는 '빛의 속도'로 맨유를 이끌던 퍼거슨과 앙숙이 되었고, 벵거와는 적이 되었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 무리뉴, 벵거 만큼 아니 그보다 더 EPL팬들을 설레게 했던 이름입니다. 사실 그 어떤 선수보다 해외축구 팬들을 설레게 했던 감독의 이름이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퍼거슨 퇴임 이후 팀 리빌딩에 몇 년 째 혼란을 겪고 있으면서 EPL이 던진 가장 큰 '공허함' 중의 하나는 해체된 빅4도, 희미해진 우승 타이틀 경쟁 구도도, '맨유 vs 000'가 더 이상 빅매치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아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커뮤니티실드에서 벌어졌던 무리뉴와 벵거 감독의 '초딩스러운' 충돌장면을 보며 그 순간 떠오른 건, 바로 퍼거슨을 대체할 명장. 위대한 감독의 존재였습니다. 매주 EPL을 시끄럽게 만들던 위대한 감독, 그 아이러니한 존재의 재등장. 흔히들 전설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꼬장'과 '유치함'마저 오랜 세월 쌓이면 내공이 되어, 마치 영화 같은 승부를 만들어 내는 '광기'에 한 몫을 하는 것은, 위대한 감독들이 가진 사소하지만 매우 중요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11명의 선수가 하나의 '팀'이 되어 승패를 가르는 축구는 단체종목이라는 사실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그런 축구가 한 개인에 의해 짜릿한 전율을 일으키는 대목이 있습니다. 교묘한 심리전, 예상치 못한 선발명단, 허를 찌르는 전술, 절묘한 교체카드 그리고 각각의 개성을 가진 선수 개개인을 통솔하는 강한 카리스마. 축구라는 단체종목에서 이 모든 것을 허락받은 단 하나의 존재는 '감독'뿐입니다.

맨유를 25년 동안 이끌었던 퍼거슨 감독은 수 많은 시간을 쌓아 전설이 된 명장입니다. 무리뉴와 벵거 감독은 지금 프리미어리그에서, 아니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수 많은 감독들 중에서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업적에 다가갈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과 능력 그리고 실제로 업적도 가지고 있는 단 두 사람의 감독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평소 냉철하기로 유명한 무리뉴와 벵거, 벵거와 무리뉴 이 두 사람의 감독이 정작 서로를 만나기만 하면 더욱 승부에 혈안이 되고, 때로는 이성마저도 제어할 수 없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퍼거슨이 그의 감독시절 축구팬들에게 종종 헤어드라이어, 껌거슨과 같은 '유치한' 별명으로 기억되곤 했던 것처럼요.

피를 말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끝내 아이처럼 흥분하는 위대한 감독들의 모습이, 그라운드 밖 팬들과 언론에게는 늘 또 다른 이야기 거리를 제공해 왔습니다. 물론 2015-16 시즌을 앞둔 첼시와 아스날이 한때 세계 축구계를 호령했던 클럽 맨유와 위대한 감독 퍼거슨이 구현했던 '그 시대'에 근접했는지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다만 벵거와 무리뉴 감독 두 사람에게는 2015-16 시즌이 '위대한 감독으로 가는 길' 즉, 퍼거슨이 떠난 프리미어리그에서 또 다른 감독사(史)의 한 페이지를 차지 할 수 있는, 매우 결정적인 시즌이 될 시기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지난 시즌 FA컵 우승으로 크게 숨통이 트이기는 했지만 언제나 리그 4위권, 챔피언스리그 16강 안팎이 아스날의 시즌 말미 '현실'이라면 벵거 감독은 정말로 2017년 이후를 장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포르투갈, 잉글랜드,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까지. 유럽 4개 리그에서 4개의 클럽팀을 이끌며 가질 수 있는 모든 리그 우승 타이틀과 FA컵, 컵대회 우승 타이틀을 가졌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호날두와 함께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UEFA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을 가지지 못했던 무리뉴. 그는 첼시에서도 아직 UEFA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만약 이번 시즌에도 챔스를 그저 '독설무대'로 활용하는데 그친다면 로만 구단주는 슬며시 샬케04에 전화를 걸어 디 마테오 감독의 안부를 물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많은 영국 언론들은 무리뉴 감독이 몇 주 안에 2017년까지인 첼시와의 계약기간을 2년 더 연장하는데 조만간 공식적으로 합의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요. 비록 첼시가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 골키퍼 체흐를 아스널에 팔고, 생각보다 많은 선수를 보강하지 못했지만 말이죠.

무패우승 이후 10년을 긴축재정으로 버틴 벵거 감독의 아스날이 가장 취약했던 골키퍼에 첼시로부터 체흐를 영입하는 '신의 한 수'로 새 역사를 쓸 수 있을까요? 어쩌면 앞으로의 10년을 내다 보고 노장 체흐를 적의 심장부에 내준 것일 지도 모르는 무리뉴 감독. 그가 첼시를 다시 승승장구로 이끌며 그토록 원하던 UEFA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될까요?

이전까지 13번을 만나 한 번도 무리뉴를 이겨보지 못하던 벵거 감독은 첼시의 골키퍼를 데려오고, 무리뉴가 평소 즐겨 사용하곤 하던 극단적인 전술로 드디어 처음으로 첼시를 꺾었습니다. 명장의 반열로 향하고 있는 두 감독의 싸움은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어느쪽이 됐든 훗날 이 싸움의 승자가 된 감독을 기다리고 있는 기사의 제목은 'NEXT FERGUSON' 같은 종류가 될 가능성이 꽤 커 보입니다.

[사진 = SBS스포츠 중계화면]

(SBS스포츠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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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 youhir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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