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유럽 점령한 독일 '제4 제국' 여나

2015. 8. 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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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그리스에 '유로존 축출' 위협

3차 구제금융 협상 밀어붙여

유럽의 부채위기 이면엔유로존 최대수혜 독일의 흑자"금융위기로 독일의 지배 시작"히틀러의 '제3제국' 이은"제4제국 출현" 비판 줄이어

2012년 7월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북해의 독일령 섬 질트에서 휴가 중인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을 만났다. 그리스 부채 위기가 화제였다. 쇼이블레는 이 위기를 가이트너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보고 있었다.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축출하는 것이 타당하고, 심지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유럽에는 많다고 그는 말했다. … 독일은 그리스의 탈퇴로 유로존이 필요로 하는 자금 지원을 더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동시에,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을 공포에 빠뜨려, 더 많이 주권을 포기하고 더 강력한 금융재정 통합으로 이끌 충격적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리스를 불 질러버려 만든 더 믿음직한 방화선으로 더 강력한 유럽을 건설하기가 쉬울 것이란 주장이었다."

가이트너가 회고록 <스트레스 테스트: 금융위기에 대한 회고>에서 밝힌 일화다. 쇼이블레 주장의 요체는 그리스를 희생시켜 독일이 강력히 장악하는 유럽연합을 구축하겠다는 것이었다.

■ '제4제국'의 출현?

유럽에 다시 독일의 그늘이 드리운다. 그리스에 유로존 축출을 위협하며 3차 구제금융 협상안을 밀어붙인 독일의 일방통행을 놓고 아돌프 히틀러의 '제3제국'에 이은 '제4제국'의 출현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이미 지난 3월 '제4제국'이라는 기사에서 부채위기 이후 유럽에 장악력을 높이는 독일을 우려하는 유럽인들의 시각을 전했다. 반나치 투사였던 마놀리스 글레조스(93) 그리스 시리자당 소속 유럽연합 의원은 "나치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가 독일 밑에 있는 미래의 유럽을 그린 선전문 '2000년'이 틀린 건 단지 10년 차이일 뿐"이라며 "2010년 금융위기로 독일의 지배는 시작됐다"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얼굴 사진에 히틀러의 콧수염을 붙인 포스터는 금융위기 이후 그리스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제는 흔하다. 이탈리아의 원로 언론인 비토리오 펠트리와 젠나로 산줄리아노는 지난해 출판한 <제4제국: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진압했나>라는 책에서 유로화가 독일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이탈리아에서 이런 견해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을 지낸 로마노 프로디 같은 주류 정치인도 공유한다. 프로디는 <레스프레소>에 "최근 브뤼셀에서는 오직 한 나라만이 방향을 결정한다. 독일은 다른 나라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도덕률을 가르치기로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유럽연합에서 독일의 파트너인 프랑스에서도 이런 비판의 목소리는 다르지 않다. 아르노 몽트부르 전 산업혁신장관은 2011년 "비스마르크는 독일의 공국들을 통일해 유럽, 특히 프랑스를 지배했다"며 "놀랍게도 유사한 방법으로 앙겔라 메르켈은 독일 보수파들이 고수하는 경제금융 질서를 유럽에 강요하면서 자신들의 국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 그리스 부채 위기 이면엔 독일의 '흑자 위기'

이들 주장의 공통점은 히틀러가 유럽을 탱크로 밀어붙였다면, 지금의 독일은 돈으로 점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 부채의 이면에는 독일의 천문학적인 경상수지 흑자가 있다. 독일의 흑자는 국내총생산(GDP)의 8%에 이르는 2330억유로(2550억달러)이다. 독일은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흑자 국가가 됐다. 유로존 출범 이후 급증한 독일의 이런 흑자가 바로 현재 그리스 등의 부채 위기의 주범이라는 지적이다.

독일 흑자는 유로존이 출범한 2000년 전후에 견줘 현재 4배나 늘었다. 늘어나는 독일 흑자는 자본수출로 다시 독일을 빠져나갔다. 독일 은행들이 남유럽 국가들에 돈을 빌려줘서, 이들이 다시 독일 제품을 사게 했다. 2000~2007년 독일에 대한 그리스의 무역적자는 30억유로에서 55억유로, 이탈리아는 96억유로에서 196억유로, 스페인은 110억유로에서 272억유로, 포르투갈은 10억유로에서 42억유로로 늘었다. 부채 위기를 겪는 이들 나라는 게으른 '돼지들'(PIGS)이라고 폄하된다. 하지만 독일 무역흑자는 이들 돼지들의 몸에서 나온 고기였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의 경제보좌관이었던 필리프 르그랭 런던정경대 교수는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의 기고 '유로존의 독일 문제'에서 "금융위기 전부터 독일의 엄청난 흑자는 남유럽 국가들과 아일랜드에 대한 독일 은행들의 무책임한 대출을 추동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은 독일 경상수지의 기록적인 증가가 유로존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했다. 적정 수준보다도 6%포인트나 높다고 지적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독일의 기록적인 무역흑자는 유로에 그리스보다도 더 큰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마저도 자신의 블로그에서 유럽 위기의 원인 중 하나는 "유로존 내 국가들 사이의 고도의 불균형"이라며 "독일의 무역흑자는 무역적자 국가들의 부담으로 모두 전가됐다"고 지적했다. 버냉키는 독일은 유로로 큰 혜택을 봤다며, 유로는 독일 경제에 비해 통화가치가 낮아 독일의 수출경쟁력을 촉진했다고 분석했다. 독일 수출도 유로존 출범으로 크게 진작됐다.

■ 흑자로 추동된 독일 외교의 변화

유로존 출범의 최대 수혜자는 독일이고, 그 수혜가 유럽 위기의 원인이라는 데는 그리스의 시리자 좌파 경제학자부터 연준 의장을 지낸 버냉키라는 미국의 주류 경제학자까지 모두가 동의한다. 독일의 친유럽연합 경제학자인 헨리크 엔덜라인 사민당 경제고문은 <슈피겔>에서 "유로 도입 뒤 우리는 경쟁력을 키우는 것 외에는 선택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에 따르면, 유로 도입 뒤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3~4%로 유지한 것도 영향을 줬다. 남유럽 국가들에 이런 금리 수준은 너무 낮아서 임금과 물가의 급등을 초래했다. 반면, 독일에 이 금리는 너무 높아서 임금을 억제해서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독일의 성장, 자신감, 그 결과 힘을 길렀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브뤼셀의 유럽연합 본부에서 독일의 성공 비결을 '도덕 선생님'처럼 다른 나라들에 가르쳤다. 메르켈이 동의하지 않는 정책은 통과되지 않았다. 2차대전의 전범국이라는 원죄에 매인 독일이 항상 다른 유럽 국가들에 보이던 낮은 자세는 2008년 유럽 위기가 몰아치면서 바뀌었다. "독일에 새로운 어조가 생겼다. 더 이상 외교의 고상한 관습을 준수하지 않는 것이다. 귓속말, 제안, 암시는 고함과 호통으로 대체됐다." <슈피겔>이 묘사한 독일의 행태다.

유럽 위기가 발생하자, 독일은 유로존 출범 이후 자신들의 성공 비결인 비용절감과 구조개혁을 다른 나라들에 강요했다. 당시 폴란드 총리였던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메르켈에게 "왜 당신은 분열을 조장해야만 하느냐"고 항의했다. 1년이 지나지 않아 메르켈은 이런 저항을 진압했다. 메르켈은 유럽연합 회원국의 재정기준을 더 엄격히 하는 재정협약 등을 통과시켰다. 이를 지키지 않는 회원국은 독일이 2003~2005년에 통과시킨 자국의 구조개혁 모델을 따라야 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베를린으로부터 유럽 전체에 가해지는 압력을 마키아벨리즘에 빗대 '메르키아벨리즘'이라고 지칭했다.

독일의 유럽 정책은 메르켈에 의해 극적으로 바뀌었다. 전임 헬무트 콜 총리 이전에는 독일은 중요한 협상을 할 때면 모든 비용을 치러서라도 고립을 피하려고 했다. 메르켈 총리는, 특히 유럽 부채위기 이후에는 이런 접근을 거부했다. "유럽연합에서 나는 혼자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나는 옳다." 메르켈이 그리스 구제금융에서 국제통화기금 역할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했던 말이라고 <슈피겔>은 전했다. 메르켈은 나중에 "유럽에서 독일은 세계에서 미국과 같은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지도 세력이다"라고 말했다.

■ '유럽의 독일'에서 '독일의 유럽'으로

독일 통일 직전 프랑스 대통령궁의 한 고위 관리는 "우리는 핵무기를 갖고 있으나, 독일은 도이치 마르크를 갖고 있다"며 독일의 경제력을 우려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 한가운데의 독일이라는 거인은 곧 다시 정치적 우위를 추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도 그렇게 믿었다.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는 독일이 과거의 자만, 즉 우월감으로 돌아갈 거라고 예견했다.

통일 독일은 처음에는 정치적 저자세를 유지했다. 미테랑은 유로가 독일의 핵무기인 마르크를 제거할 것으로 기대했고, 그래서 유로는 도입됐다. 하지만 유로는 유로존 회원국의 운명을 묶어버렸고, 독일에 이들을 지배할 힘을 줬다.

"7월12~13일 그리스에 대한 긴 협상의 밤 동안, 유럽연합의 근본에 금이 갔다. 그때 이후로, 유럽인들은 다른 종류의 유럽연합에 살고 있다. 그날 밤 바뀐 것은 유럽인들이 2차 대전 이후에 알던 독일이었다… 독일은 서구로의 통합과 유럽화를 포용하며 신뢰를 구축했다… 독일이 21세기에 추구할 길, 즉 '유럽의 독일'이냐 '독일의 유럽'이냐는 지난 2세기 동안 독일의 외교정책의 중심에 있던 역사적 문제였다. 그리고 브뤼셀의 그 긴 밤 동안 이 문제에 답이 나왔다. 유럽의 독일을 압도하는 독일의 유럽이었다."

독일 녹색당 지도자인 요슈카 피셔 전 외무장관 겸 부총리는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기고한 '추악한 독일인의 귀환'에서 양차 세계대전 원인인 '독일의 유럽' 정책이 부활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독일에서 제1제국은 중세의 신성로마제국이다. 제2제국은 오토 폰 비스마르크 재상의 프로이센이 통일한 첫 독일 통일국가다. 제3제국은 나치 독일이다. 19세기 중엽 이후 독일의 흥기는 유럽의 세력균형을 깨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독일은 '독일의 유럽'을 추구했다. 특히 동유럽 쪽으로 세력 확장을 꾀했다.

제2제국이 일어설 때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의 전통적 열강은 서로 식민지를 놓고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제국주의 투쟁을 벌이며 힘을 소진했다. 나치 독일이 일어설 때도 영국과 프랑스는 1차 대전의 후유증과 식민지에 과잉전개된 국력으로 힘을 소진했다. 소련은 볼셰비키 혁명에서 회복 중이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두번째 독일 통일국가가 탄생한 뒤 유럽은 부채 위기를 겪으며, 양차 대전 직전과 유사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통일 독일은 동유럽 쪽에 막강한 영향력을 회복 중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미 열강의 대열에서 탈락했다. 러시아는 과거의 소련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여준 미국의 무력함은 유럽 대륙에서 철수 중인 미국의 모습을 보여준 사건이다.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에서도 미국은 독일이 양보해야 한다며 불만만 표시했을 뿐, 제어하지 못했다.

피셔가 '추악한 독일인의 귀환'이라는 글을 발표한 지 하루 뒤인 지난달 24일 <슈피겔>은 '추악한 독일인은 돌아왔나?'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독일에서 번지는 인종주의와 극우파들의 난동에 관한 기사였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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