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생명의 존엄성과 종교적 자유 충돌"..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

신효령 입력 2015. 8. 3. 13:50 수정 2015. 8. 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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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난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죽기 전에 한 번은 대단하고 열정적인 연애를 하고 싶어.(중략) 열락, 흥분으로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경험. 기억은 해? 마지막으로 한 번 시도해보고 싶다고. 당신은 원하지 않는다 해도, 아니, 어쩌면 당신도 원할지 모르지. 피오나는 믿기 힘든 눈으로 남편을 빤히 쳐다보았다."(12~13쪽)

'속죄'로 유명한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67)의 소설 '칠드런 액트'가 국내 번역출간됐다.

이야기는 가사부 판사인 피오나가 결혼생활의 위기를 맞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늘 자상했던 남편이 결혼생활에 무기력함을 느꼈다며 다른 여성과의 새출발을 선언한다.

오랜 세월 다른 사람들의 가정사를 지켜보고 조언해주던 피오나 자신 역시 그들과 똑같은 상황에 놓이자 충격에 빠진다.

남편 문제로도 머리가 복잡한데, 법원으로부터 긴급한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17세 소년 애덤에게 강제로 수혈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는 병원의 청구였다.

아이의 부모는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고 아이 역시 같은 생각이라고 말한다. 영국의 법은 자신의 치료를 거부하는 것을 개인의 기본권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의사가 환자를 본인 의사에 반해 치료하는 행위는 형법상 폭행죄에 해당한다.

소년은 자기 결정권이 생기는 18세 생일까지 꼭 3개월을 남겨두고 있지만 3일 내로 수혈을 받지않으면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다. 피오나는 아이가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무엇이 진정 그를 위한 길인지 파악하기 위해 직접 병원을 찾아간다.

그녀는 어두운 병실에서 애덤을 마주하게 되고, 이 만남으로 비롯된 연쇄적인 사건들은 모두의 미래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칠드런 액트'는 1989년 제정된 영국 아동법에서 제목을 따온 것으로, 이 법은 법정이 미성년자와 관련 사건을 판결할 때 아동 복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호흡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지만 아이의 어둡고 엄숙한 표정은 속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건 상관없었다. 하루 종일 이보다 더 평온한 순간은 없었으니까. 별로 대단한 주장도 아니었다. 평온이랄 것까지는 없다면 느긋함 정도라 해도 좋았다. 처리를 기다리는 사건의 압박, 긴급을 요하는 결정, 촌각을 다투는 병의 진행에 대한 고문의사의 소견 등은 그녀가 외부공기를 차단한 반그늘의 병실에 앉아 소년을 바라보며 그의 말을 기다리는 이 순간만큼은 저만치 뒤로 물러나 있었다. 이 곳에 오기로 한 결정은 옳았다."(140쪽)

"피오나는 이야기하는 소년을 보며 그동안 얼마나 변했는지 뜯어보았다. 이제 마르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날씬한 체격, 튼튼해진 어깨와 팔, 갸름하고 섬세한 얼굴은 그대로였고, 광대뼈의 갈색 점은 건강한 젊음이 만들어낸 가무잡잡한 얼굴색에 가려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눈 밑 자주색 그늘은 흔적만 남아 있었다. 입술은 도톰하고 촉촉했고, 눈은 이곳 불빛에서는 너무 까매서 색깔을 알 수 없었다."(215쪽)

작가는 영국 언론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소설의 배경이 된 고등법원 가사부에서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관심사, 즉 사랑과 결혼 그리고 그 두 가지 모두의 종말, 싸움을 통한 재산분할, 아이들의 운명에 대한 신랄한 다툼, 부모의 폭력과 방임, 유산, 질병과 치료, 결혼생활의 파탄을 더욱 복잡하게 하는 종교적 혹은 도덕적 분쟁 등을 다루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판사는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부모가 의견일치를 보지 못할 때 법정은 마지못해 '사법부의 합리적 부모' 역할을 맡아야 한다. 가사부의 판결문에는 무수한 개인의 드라마와 복잡한 도덕의 문제가 담겨 있다. 그것은 소설의 영역이다. 비록 운 좋은 소설가와 달리 판사는 실제 인간세계에 묶여있고 반드시 판결을 내려야 하는 처지이지만"이라고 덧붙였다. 민은영 옮김, 296쪽, 1만3500원, 한겨레출판.

sno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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