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무더위 잊게 하는 미스터리..'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외 3권

윤시내 2015. 8. 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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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윤시내 기자 = 계속되는 무더위에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 몸은 보양식으로 달랜다지만 마음 달래기는 쉽지 않다. 이럴 때 찾게 되는 것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미미여사'라는 별명으로 국내에서도 인기몰이 중인 일본 미스터리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새로운 작품이 출간됐다. '누군가'(2002), '이름 없는 독'(2006) 이후 7년 만에 돌아온 행복한 탐정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이다.

전작에서 위험에 빠진 재벌가 딸을 구해준 인연으로 결혼까지 하게 된 소심한 편집자 '스기무라 사부로'가 주인공이다. 사부로는 카리스마 있는 사립탐정이 아닌 평범한 회사원답게 뺑소니·환경오염 등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풀어갔다.

결혼 이후 대기업 총수인 장인의 회사에서 사보 만드는 일을 하던 사부로는 편집장과 함께 타지로 인터뷰를 나간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탄 버스. 승객은 예닐곱 명으로 한산하다. 그러던 중 한 노인 승객이 기사에게 다가간다. 사부로는 하차 정류장을 묻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노인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있었다. 기사를 협박해 버스를 납치한 노인은 승객 인질극을 벌인다. 요구 조건은 자신이 지목한 세 사람을 찾아 데려오라는 것. 인질이 돼 노인을 관찰하던 사부로는 이상한 점을 느낀다. 노인은 여느 인질범과는 다르게 온화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인질들에게는 사태가 끝난 후 사과의 의미로 거액의 위자료를 주겠다고 약속하며 협조를 요청했다. 심지어 노인은 자신이 요구한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 보다 대중들이 그들을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인질들은 노인의 정중한 태도와 빼어난 말솜씨에 빠져 점점 그에게 동조한다. 그러나 곧 특공대가 버스에 들이닥치고 노인은 자살하고 만다.

세 시간 남짓한 버스 납치극은 인질 전원 무사구출로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며칠 후 인질들 앞으로 거액의 돈이 담긴 소포가 배달된다. 노인이 말했던 위자료다. 죽은 노인은 어떻게 돈을 보냈을까, 아니 혈혈단신으로 가난하게 살았다고 밝혀진 노인이 어떻게 거액을 마련할 수 있었을까. 선뜻 돈을 가질 수 없었던 사부로와 다른 인질들은 이 돈에 얽힌 비밀을 추적하기로 한다. 남다르게 빼어났던 노인의 말솜씨와 노인이 요구했던 세 사람을 단서로 점점 사건의 실체에 근접해간다. 과연 노인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화차'(1992), '이유'(1999), '모방범'(2001) 등으로 '사회파 미스터리' 장르의 거장이라고 평가받는 저자가 이번엔 '다단계 사기'를 소재로 선택했다.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가 어떻게 다단계 사기와 연관됐는지, 그로 인해 피해자들이 어떤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미스터리와 엮어 풀어낸다.

저자는 "화장품, 건강 보조식품, 다이어트 식품을 취급하는 다단계 사기가 여전히 많다. '깨끗한 피부를 갖고 싶다' '건강해지고 싶다' 같은 우리 일상생활의 사소한 소망을 노리는 인간들이 싫었다. 생활에 밀착된 악랄하고 치사한 수법이 정말 싫었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 써보자고 생각했다"고 저술 의도를 밝혔다.

저자는 렘브란트의 그림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 책의 원제 또한 '베드로의 장렬'이다. 책 속에도 사부로가 이 그림을 떠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거짓말이 사람의 마음을 망가뜨리는 까닭은, 늦든 이르든 언젠가는 끝나기 때문이다. 거짓은 영원하지 않다. 사람은 그렇게 강해질 수 없다. 가능하면 올바르게 살고 싶다, 착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한 거짓말이라도 그 무거운 짐을 견딜 수 없게 되어 언젠가는 진실을 말하게 된다. 그렇다면 자신의 거짓말을 거짓말이라고 느끼지 않으며 거짓말의 무거운 짐을 지지 않는 사람 쪽이 차라리 행복하지 않을까."(512쪽)

사부로의 입을 빌린 저자의 말은 '거짓'과 '양심'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무거운 주제와 800쪽이 넘는 방대한 양에도 술술 읽혀 새삼 저자의 필력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단독으로 의미가 깊지만, 행복한 탐정 시리즈로서도 중대한 전환점이 된다. 결말에서 사부로가 내린 선택이 저자의 다음 작품에서 어떻게 풀릴지 기대된다. 864쪽, 1만8800원, 북스피어.

◇오사카 소년 탐정단…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재인 펴냄/ 344쪽/ 1만4800원

국내에도 팬이 많은 일본대표 추리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다. 형사나 천재 교수가 아닌 초등학교 미녀교사 다케우치 시노부가 주인공이다. 추리소설의 열렬한 팬인 시노부가 자신의 꼬마 제자들과 함께 오사카를 종횡무진 오가며, 놀라운 기지로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이야기다. 오사카가 고향인 저자답게 지역 명물 음식 '다코야키'를 소재로 쓰는 등 책 곳곳에 특유의 지역색을 잘 나타냈다. 국내판 또한 원작에서 사용한 관서지방(오사카가 소재한 일본 서부지역) 사투리를 잘 살려 번역했다. 다섯 가지 사건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했다. 유쾌한 분위기로 가볍게 읽기에 좋다. 시노부를 둘러싼 형사 '신도'와 엘리트 회사원 '혼다'의 사랑 경쟁에서 오는 재미는 덤이다. 일본에선 지난 2000년과 2012년 두 차례 TV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야경…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엘릭시르 펴냄/ 444쪽/ 1만5000원

작은 동네 파출소 경관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야경'), 옛 연인을 만나러 '자살명소'인 온천여관에 찾아갔다가 맞닥뜨린 비밀('사인숙'), 아름다운 어머니와 두 자매 사이에서 벌어지는 남모를 애정과 갈등의 선율('석류'), 험악한 환경의 해외로 파견된 비즈니스맨에게 닥친 혹독한 시련('만등'), 손님이 뜸한 고갯길의 휴게소에서 벌어지는 괴담 같은 사연('문지기'), 신세를 졌던 가게 여주인이 얽힌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진실('만원').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 숨어있는 여섯 가지 수수께끼 사건과 놀라운 진실을 담은 단편집이다. 각각의 이야기가 다채로우면서도 밀도 높게 진행된다. '고전부' 시리즈와 '소시민' 시리즈로 일본에서 가장 촉망받는 미스터리 작가가 된 저자가 자신의 특기인 일상 청춘 미스터리를 벗어나 야심 찬 도전을 했다.

◇13.67…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 664쪽/ 1만7000원

일본과 미국 작가들이 국내 미스터리 팬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가운데 주목할 만한 중화권 작가의 신작이 발표됐다. 홍콩 출신 저자가 자신의 고향을 배경으로 색다른 분위기의 추리물을 내놓았다. 이 책은 천재 수사관으로 칭송받으며 홍콩 경찰총부의 전설로 불렸지만, 현재는 암으로 투병 중인 '관전둬(關振鐸)'와 그의 오랜 파트너 '뤄샤오밍(駱小明)'이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았다. 제목은 2013년과 1967년을 가리키는데, 특이하게도 2013년부터 1967년까지 벌어진 여섯 건의 범죄사건을 시간의 역순으로 전개했다. 최근 사건이 이전에 벌어진 사건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구성이 독특하고 흥미롭다. 반전의 즐거움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홍콩의 변천사와 당시의 사회문제도 엿볼 수 있다. 2015년 타이베이 국제도서전에서 대상을 받았다.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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