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섬 아줌마가 한번에 5백 걸었다는데..'사설경마' 그 세계

임재성 2015. 8. 3.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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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짜릿하게, 더 화려하게…”

각종 수법을 동원한 '불법 도박 게임'들이 넘쳐나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인터넷 사설 경마'는 온라인 불법 도박의 '조상' 격입니다. 그런데 아직 이 '사설 경마'는 건재합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 베팅 금액 ‘828억 원’

경기도 부천 오정경찰서 사이버팀. 불법 사설 경마 '서버' 운영자를 만났습니다. 요즘 같은 불황에 '828억 원'이 오가는 게임. 이 운영자는 순수익이 몇천만 원 안 된다고 항변했습니다. 자신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두 달 새 번 '몇 천만 원'은 모두 '수수료'였습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말하는 요즘. 828억 원이 오가는 불법 경마 도박 업체에는 속칭 '알바생'들까지 고용돼 있었습니다.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던 형제였습니다. 어려워서, 일당 7만 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했습니다. 회원들은 '달님'같은 별명으로 통했습니다. 직접 대면도 없습니다. 다만 '대포 전화'를 통해 '대포 통장'으로 입금했다는 전달만 받았다고 했습니다. 넉 달동안 일 하면서 이른 아침부터 돈을 송금했다는 도박꾼들을 보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참담함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 현대판 ‘봉이 김선달’, 불법 도박 서버 운영자

최근 경찰이 검거에 주력하고 있는 '서버 운영자'는 말 그대로 현대판 '봉이 김선달'입니다. 도박 프로그램을 운용할 수 있는 서버만 임대하면 됩니다. 실제 경마장의 경기는 진행됩니다. 수백, 수천 개 사이트에서 던져지는 마권을 받습니다. 승자에게는 수수료를 받고 돈을 내주고, 패자들이 건 나머지 돈 역시 자신의 몫이 됩니다. 이조차도 계산은 서버 속 '프로그램'이 알아서 해줍니다. 판을 깔아주고, 들어오는 돈을 계산하고, 자신의 몫을 받게 됩니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던 '봉이 김선달'의 영업방식입니다.

■ ‘섬 아줌마’까지 중독시킨 ‘불법 사설경마’

8천만 원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섬 생활이 무료했던 즈음, 우연히 불법 경마 사이트를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비밀 사이트'에 입장하는 것 자체로도 '쾌감'이었답니다. 심심풀이 5만 원짜리 도박은 계속 커졌습니다. 한 번에 5백만 원을 배팅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돈을 딴 적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실험까지 해봤답니다. 10마리의 경주마 중 한 마리만 빼고 돈을 걸면, 걸지 않았던 경주마가 이기더랍니다.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후회'만 남았었다고 했습니다.

■ 불법 경마 도박의 ‘먹이사슬’

불법 경마 도박은 먹이사슬 구조로 돼 있습니다. 가장 위쪽인 머리에는 유령 같은 '서버 프로그램' 공급자들이 있습니다. 도박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거죠. 그 밑에 이번에 검거됐던 '서버 운영자'들이 있습니다. 다시 그 아래 회원들을 모으고, 경마 중계를 해주는 '사이트' 관리자들이 있습니다. 돈을 내는 도박 회원들은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 위치합니다.

경찰과 한국마사회는 오랜 기간 '서버 운영자'들과 '사이트 관리자'들을 검거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검거된 관련자들은 575명, 지난해에는 두 배 가까운 1,269명이 적발됐습니다. 그리고 올 상반기에만 지난해 전체 검거인원과 맞먹는 1,253명이 붙잡혔습니다. 그러나 먹이사슬의 '최상위', '프로그램 공급자'들은 잡히고 있지 않습니다. 취재를 통해 이들이 붙잡히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중국이나 필리핀 등 해외에서 해외 개발 인력을 고용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탕주의에 빠진 도박꾼들에, 쉽게 돈을 벌자는 서버 운영자들, 잡을 수 없는 '유령 개발자'들까지, 이들로 인해 아무도 승자가 될 수 없는 우리나라 불법 사행산업 규모는 매년 늘어 95조 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임재성기자 ( newsis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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