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료 못내 직원 내보내고 공장 줄여 이전 .. 이런 불황은 처음"

민석기,김제관,안병준,김정범 2015. 8. 3.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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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가동률 3개월만에 절반 밑으로최악 내수에 '울며 겨자먹기 수출'도해고 급증따라 퇴직연금 해지도 속출

◆ 위기의 中企 현장진단 ◆

경기도 시화공단에 있는 한 중소기업 공장에서 직원들이 한쪽에 쌓여 있는 자재를 옮기기 위해 협의하고 있다. 공단 내 중소기업들은 최근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재고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1500여 개의 중소기업이 밀집해 있는 부산 녹산국가산업단지. 이곳에 입주한 성일터빈의 우타관 대표는 얼마 전 필리핀 출장을 다녀왔다. 내수 불황을 견디다 못해 필리핀 수출을 타진하기 위해서였다. 우 대표는 "중소기업들의 공장가동률이 줄어 우리가 생산하는 발전 관련 부품의 국내 수요가 올 들어 30% 이상 급감했다"고 귀띔했다. 녹산공단에서 풍력발전 부품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자유형 단조기업 태웅의 허욱 상무는 "인근의 여러 협력업체들이 부도났을 정도로 지독한 내수 불황은 처음"이라며 "7월 들어 국내 영업은 거의 접고 수출에 올인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같은 녹산공단에 있는 현진소재도 선박용 엔진부품을 만드는 자회사 용현BM이 대규모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팔아치우는 등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전국 공단의 중소기업들이 불황의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다. 한 가지 악재만 마주쳐도 버티기 힘든 곳이 중소기업인데 대형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내수 경기에 대기업들의 실적부진까지 겹치면서 요즘 공단에서는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힘든 상황"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 임차인 못 구한 빈 공장 수두룩

안산 반월공단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D사는 최근 공단 용지를 팔고 지방으로 내려갔다. 이 회사 대표는 "경기침체로 일감이 줄어들어 공장 가동률이 절반 밑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수도권 공장 유지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며 "인근에 임대인이 떠난 공장들도 새로운 주인을 찾지 못해 비어 있는 곳이 많다"고 밝혔다.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인테리어 자재 제조업체 E사 대표는 요즘 일거리가 떨어져 잔업을 대폭 줄였다. 만약 이 상태가 지속되면 E사 역시 공장 축소 또는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 그는 "올해 5월까지만 해도 일이 바빠 토요일까지 100% 근무를 했지만 현재는 부분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며 "남동공단 내 대부분 공장들이 토요일에도 근무하는 체제였는데 이제는 업종 관계없이 토요일에 쉬는 회사가 대부분"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경기권을 떠나 지방에 자리 잡아도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천안에 소재한 전자부품 제조업체 F사 대표는 "LCD가 잘나갈 때 주요 부품을 납품하면서 한때 매출이 2000억원을 넘겼지만 중국·베트남 등 해외 저가 부품들과 경쟁하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속절없이 떨어졌다"며 "천안공장이 바쁘게 돌아갈 때는 700명 가까이 직원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3분의 1 수준인 200여 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 대기업 실적 쇼크로 협력사 울상

최근 들어 중소기업들을 특히 힘들게 하는 것은 대기업 실적 악화다. 경기 침체나 엔저처럼 오래 지속된 악재에도 잘 선방한 대기업 덕택에 중소 협력사들은 생존에는 위협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기류가 변하고 있다. 한 협력사 대표는 "힘든 상황에서도 대기업들은 뛰어난 관리 능력을 앞세워 성장을 지속해왔다"며 "그러나 2분기 들어 삼성전자와 현대차 같은 대기업들도 실적이 나빠지면서 협력사들은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상황이 어려운 조선과 IT부품·장비, 자동차 부품 분야 중소기업들의 피해는 심각하다. 남동공단에서 규모가 크다고 알려진 인쇄회로기판(PCB) 전문 제조업체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이 지역 전자부품 업종 기업가들 사이에서는 "예전에 겪었던 그 어느 경제위기때보다 더 어렵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남동공단에서 산업용 나이프를 제조하고 있는 G사 대표는 "남동공단에는 3000개 이상의 기업들이 5인 이하 사업장인데 최근 원도급업체로부터 받는 물량이 줄어들어 사실상 휴업에 들어간 곳이 적지 않다"며 "외주를 주던 물량을 직접 가공하는 원도급업체가 늘면서 영세 사업장에 직격탄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퇴직연금 해지도 속출

국내 원도급업체에 의존하지 않고 해외에서 판로를 개척한 일부 중소기업은 사정이 조금 더 낫지만 일본에 주로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은 피해가 크다. 사출금형 제품을 일본에 95% 이상 수출하는 G사는 상황은 심각하지만 뾰족한 대응방안이 없어 고민이 깊다. 이 회사 대표는 "지속되는 엔저 때문에 채산성이 뚝 떨어졌다"며 "경기는 어렵고 인건비는 매년 오르는 상황에서 원가를 줄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데 여의치 않아 인력을 감축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중소기업들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는 현상은 공단 내 은행들의 퇴직연금 해약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반월공단의 기계 제조업체 H사 대표는 "공장 임대가 곳곳에서 빠져나가면서 해고가 늘어나자 기업이 퇴직연금을 내지 못해 자동 해지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보통 중소기업이 대출금 이자를 못 갚게 되는 상황을 경기 악화의 신호로 보지만 대출금 이자는 끝까지 버티면서 내는 반면 퇴직연금은 근로자 소득이 끊기면 바로 자동 해지되기 때문에 현재 경기 상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해 중소기업 상황이 어려워져 퇴직연금 해약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가 뚜렷하다"고 전했다.

[민석기 기자 / 김제관 기자 / 안병준 기자 /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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