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트럼펫 유망주들 쑥쑥 자라줘 큰 보람"

송은아 입력 2015. 8. 2.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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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트럼펫 연주자 바티, 한국 찾는 이유

2013년 8월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작지만 야심 찬 사업을 시작했다. 트럼펫 전공 학생 8명을 모아 강좌를 만들었다. 유독 취약한 국내 교향악단의 금관 파트를 끌어올리려는 계획이었다. 국내 금관 연주는 오랜 세월 관객에게 불만의 대상이었다. 서울시향은 강사로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자를 섭외했다. 막중한 책임을 짊어진 이는 라디오프랑스필하모닉 트럼펫 수석인 알렉상드르 바티(32·사진). 강좌 이름은 ‘바티 브라스 아카데미’였다. 서울시향 트럼펫 수석을 겸임하는 그는 이후 한 달에 한 번꼴로 한국을 찾는다.

2년이 지난 현재 이 강좌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김현호군은 금관 연주자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 합격했다. 오사카 국제음악콩쿠르 중등부 1위, 부산음악콩쿠르 중등부 1위, KBS교향악단 트럼펫 부수석 오디션 합격 등 희소식이 연이어 들렸다. 최근 세종문화회관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바티와 만났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기대 이상의 결과가 빠르게 나와 기분이 정말 좋다”며 “서울시향 동료들의 조언 등으로 한국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알렉상드르 바티는 5년간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연주한 경험에 대해 “한국에서는 공연 후 환호성이 정말 크다”며 “에너지 넘치는 반응이 반갑고 정말 좋다”고 말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학생 나이가 11살부터 23살까지 다양해요. 나이 많은 학생의 연주 후에 다른 학생들에게 어땠냐고 물어보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잘했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유럽에서는 자기 의견을 말하거든요. 한국에서 나이가 중요한 걸 몰랐어요. 문화적 차이를 알고 나니 이런 질문으로 시간을 버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죠.”

그가 본 한국 학생의 특징은 연장자가 자발적으로 어린 학생들을 보살피는 문화다. 유럽에서는 없는 일이라 한다. 또 한국 학생은 연습 시간이 유독 길었다. 2년 내내 바꾸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는 “전 집에서 거의 연습하지 않고, 연습실에서 핸드폰을 꺼놓고 온 신경을 집중한다”며 “집에서 산만하게 5시간 하느니 집중해서 2시간 하는 게 양질의 연습인데 이를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펫에서 휴식은 정말 중요해요. 2시간 쉼 없이 연습하는 것도 많은 거예요. 연습을 너무 많이 하면 입 주변 근육이 망가지는 부작용이 문제예요. 팔이 부러지면 안 써야 하듯이 근육이 힘들면 10분만 연습해야 하는데, 학생들이 그렇게 못하더라고요. 트럼펫 연주자들은 입 주변 근육이 상하면 아프기보다 그저 연주가 잘 안 될 뿐이에요. ‘소리가 안 좋네, 좀 더 연습하면 괜찮아지려나’하니 더 악화돼죠.”

그는 아카데미에 참여하지 못하는 트럼펫 유망주들을 위해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 하나는 ‘자연스럽게 연주하는 법을 배워라’이다. 그는 “악기와 싸우듯하지 마라”며 “자연스럽게 호흡하고 멜로디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노래 부르는 것처럼 연주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바티는 2008년부터 라디오프랑스필에서 일하고 있다. 서울시향에는 2010년 합류했다. 2009년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2011년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트럼펫 수석도 역임했다. 비행기를 집 삼아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이 음악인의 숙명이지만 세계적 수준의 연주자가 유럽과 한국을 정기적으로 오가기는 쉽지 않다. 아카데미를 계속해온 이유를 물었다.

“3년 전인가, 서울시향이 말러 교향곡 9번을 연주한 날이었어요. 공연이 끝나면 가끔 마에스트로(정명훈 지휘자)와 식사해요. 그날 연주가 잘돼서 기분이 정말 좋았죠. 웃는 얼굴로 있는데 마에스트로가 ‘네가 잘하는 거야 잘 알지. 내가 생각한 건 그게 아니다. 네 한국에서의 미션은 10, 20년 장기로 봤을 때 좋은 트럼펫 주자가 나오게 하는 거다’라고 말하더군요.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임무인 거죠. ‘네가 정말 잘하는데, 한국에서는 더 잘하길 바란다’는 얘기를 듣고 지금까지 한 것 같아요.”

그는 라디오프랑스필에서 정명훈 감독과 처음 만났다. 지난 6월 정 감독이 라디오프랑스필 예술감독에서 물러나 명예 음악감독으로 위촉됐다. 바티에게 정 지휘자와 프랑스에서 ‘직장 상사’로서 관계가 끝났으니 상황이 바뀐 것 아니냐고 묻자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정 지휘자를 직장 상사로 느끼지 않았어요. 제가 그에게 배운 걸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프랑스에서 그의 계약이 끝난 지금 오히려 (몇 년 전보다) 그를 더 존경하게 됐어요. 그만큼 더 오랫동안 그에게 배웠으니까요. 게다가 갑자기 강좌를 그만둘 수는 없어요. 학생들에게 정말 ‘큰, 큰’ 책임감을 느껴요.”

바티는 정명훈이 서울시향의 실력 향상을 위해 영입한 ‘외국인 수석’ 중 한 명이다. 일부에서는 언제든 떠날 이들이 서울시향의 기초 체력에 보탬이 될지 의문을 제기한다. 바티는 이런 시각에 대해 “서울시향은 세계적 악단이 되려는 원대한 계획이 있다”며 “저도 그 계획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여기 있는 한, 서울시향이 발전하려는 한 저도 있을 거예요. 중도에 그만둘 수는 없어요. 아카데미에 느끼는 책임감과 같아요. 물론 시향이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좋은 지휘자가 필요 없다고 하면 제가 머물 이유가 없죠. 한국 금관 연주의 미래도 밝게 봐요. 그런 믿음이 없으면 제가 이걸 계속하기 힘들 거예요. 시작할 때보다 확신이 강해졌어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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