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의 어머니.. 이젠 나이 든 노인처럼 사람들에게 구박받는 신세

한국일보 2015. 8. 2.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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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 만물상] <15> 서울화력발전소

서울시내에 있는 유일한 발전소, 생활에 꼭 필요한 에너지 생산

요즘 생활필수품인 냉장고와 에어컨이 만들어내는 냉기의 근원은 아이러니하게도 프로메테우스의 선물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준 불은 먼 역사의 길과 복잡한 메커니즘의 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냉기를 만드는 지경에까지 왔다. 불이 가진 열에너지는 발전소의 보일러에서 고압의 증기를 만들고 그 증기는 터빈을 돌려 운동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터빈은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들어낸다. 전기는 온갖 곳으로 보내져 다른 에너지의 꼴로 천변만화해 다양한 일들을 해낸다. 이제 인간은 물, 불, 바람을 제어하는 대지의 지배자가 되어 자연의 많은 능력들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됐다. 여름에 겨울의 냉기를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동력의 근원을 만들어내는 곳이 발전소다.

한국 최초의 화력발전소

그 근원을 보기 위해 서울시내에 있는 유일한 발전소인 서울화력발전소를 찾아갔다. 사실 이 발전소는 사람들에게 당인리발전소라고 더 알려져 있는데 1969년에 서울화력발전소로 바뀐 지 오래다. 당인리라는 지명은 서울에서 사라졌고 지금의 주소는 서울 마포구 토정로다. 낯선 길 이름만큼이나 서울화력발전소는 우리에게 애매한 표상으로 남아 있다. 당인리와 토정로라는 두 개의 지명 사이에, 생활에 꼭 필요한 에너지의 근원과 쫓아내고 싶은 미움의 대상 사이에 애매하게 위치해 있다.

인근 주민들은 발전소의 이전을 계속 요구해 왔다. 요즘 사람들은 땅값 올라가는 것에는 관심이 있어도 산업이니 생산이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을뿐더러 집 근처에 공장 같은 시설이 있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이든 어머니를 구박하듯이 에너지의 어머니인 발전소를 구박한다. 그러면서도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된장과 고추장은 열심히 먹는 것처럼 발전소가 만들어내는 전기는 열심히 쓴다. 1930년에 생긴 당인리발전소는 한국 최초의 화력발전소지만 주민들은 그런 역사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하고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을 막는 거창한 것만 역사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산업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생겨서 어떤 변천을 거쳤는가도 중요한 역사다. 모든 것이 빨리 생기고 빨리 사라지는 한국에서는 1930년에 만든 시설 중 계속 쓰이는 것이 거의 없는데, 서울화력발전소는 꽤 오래된 소중한 산업역사의 증인 아닌가.

발전소의 핵심인 터빈과 발전기. 뒤에 두 개의 귀같은 것이 붙어 있는 것이 터빈이고 앞에 있는 반원형의 통 속에 발전기가 들어 있다. 이영준 교수 제공

옛날에 쓰던 터빈 날개. 이영준 교수 제공

20세기 초 뉴욕에 세워진 발전소. 코일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이영준 교수 제공

증기가 터빈 돌려 전기 생산

발전소의 공간은 사실 어머니 품 같이 포근하지는 않다. 터빈이 들어 있는 거대한 건물은 살벌한 공장을 연상시킨다. 산업의 현장 중에 포근한 곳은 없다. 19세기 후반 에디슨이 뉴욕에 세운 발전소의 터빈은 별명이 코끼리였다고 하는데 서울발전소의 터빈도 코끼리를 닮았다. 둔중하고 거대하다. 물론 그 안에는 열역학과 유체역학이 극도의 고차원의 경지에서 발현되고 있는 수많은 터빈날개들이 있다. 그 날개의 모습은 제트 엔진에 들어 있는 터빈 날개와 흡사한 모양이다. 티타늄으로 된 수많은 날카로운 날개들을 증기압이 거쳐 지나갈 때 터빈은 고속으로 회전하며 발전기를 돌린다. 터빈의 겉모습은 거대하고 둔중한 모습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터빈 날개는 극도로 섬세하고 정교하다. 서울화력발전소를 찾아갔을 때 터빈 날개를 볼 수는 없었다. 두텁고 튼튼한 뚜껑에 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발전소의 핵심이자 비밀은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제트 엔진의 속을 많이 들여다 본 필자로서는 그것을 닮았다고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터빈이 돌아갈 때 제트 엔진의 소리와 흡사한 고음의 소음이 난다고 하니 발전소의 터빈과 제트 엔진이 흡사한 구조라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발전소 마당에 나오니 녹슨 터빈 날개가 전시돼 있었다. 녹이 슬어 있는 것으로 보아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오늘날의 것과는 시대가 많이 먼 것으로 보였다. 이 터빈 날개가 언제 때 것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정확한 용량을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전기를 만들어내는 터빈의 날개 치고는 아주 작았다. 날개 하나의 길이가 채 5㎝도 돼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작은 날개가 수십 개 붙어서 팬 하나를 만들고, 팬들은 크고 작은 직경의 것이 여러 개가 있으므로 그 팬들을 통과하는 증기압은 마침내 거대한 발전기를 돌리는 힘을 만들어낸다. 지금 쓰이는 4, 5호기는 각각 137㎿, 250㎿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화력발전소의 불을 만들어내는 연료는 무엇일까? 서울화력발전소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한다. LNG보다 값이 싼 무연탄을 쓰는 발전소도 있다. 그런데 서울화력발전소를 가보고 알게 된 사실은 이 발전소가 항상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도 터빈이 돌아가지 않아서 조용했었다. 만일 터빈이 돌아가고 있었다면 고음의 소음이 엄청나다는데, 귀는 괴로웠겠지만 엄청난 소음이 품은 숭고미를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발전소는 연료비가 적게 드는 것부터 돌리고 LNG 같이 비싼 연료를 쓰는 곳은 예비로 놔뒀다가 전력 예비율이 떨어졌을 때만 돌리기 때문에 서울발전소의 터빈은 돌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전력수요 최고인 때는 추운 날

사실 필자가 어린 시절이던 1970년대에는 정전이 참 많았다. 하도 자주 정전이 되니까 아무도 놀라지도 않았고 그저 오늘도 불 나갔네 하면서 초를 꺼내서 켜고는 일상사를 계속 할 뿐이었다. 산업시설은 정전이 되면 분명히 피해를 입을 텐데 당시는 정전에 의한 산업피해에 대한 말은 언론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잠깐의 정전으로 반도체 공장이 수백억원의 피해를 봤다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최근의 큰 정전으로는 2011년의 9?15 정전이 있다. 아마도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하게 이름이 있는 정전일 텐데, 9월 15일은 여전히 덥다. 전력의 배분을 담당하는 전력거래소가 이날 전력수요를 맞추지 못해 예비전력이 400만㎾ 아래로 떨어져 정전사태가 온 것이다. 보통 추석 때까지는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날이 많다는 것을 전력거래소는 몰랐던 모양이다. 그날 이후로 주요 산업시설에서는 전기가 나갔을 때를 대비하는 비상전원장치(UPS?Uninterrupted Power Source)를 쓰게 됐다. 이날의 정전이 전국적인 패닉을 몰고 왔다는 것은 그간 전력수급이 큰 탈 없이 잘 되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은 전력사용의 패턴이 변했다. 전에는 여름 무더위가 한창일 때 전력수요가 최고에 이르렀지만 전기난방을 많이 쓰는 요즘은 겨울 제일 추울 때 전력수요가 극에 달한다.

에디슨-테슬라의 전류전쟁

발전소라는 것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세계 최초의 공공 발전소는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1882년 런던에 세운 것이다. 그는 같은 해 뉴욕에도 발전소를 세운다. 당시는 공공을 위한 전력 수급체계가 미국에서 막 생겨날 때였는데, 당시 에디슨을 둘러싼 얘기는 흥미롭고 복잡하고도 추잡하다. 에디슨은 위대한 발명가이자 정력적인 경영자였다. 하지만 경영자로서의 에디슨은 야비한 구석이 많았다. 전기공학의 천재인 니콜라 테슬라가 인류의 역사를 크게 뒤바꿔 놓은 교류 모터를 발명했지만 그는 테슬라에게 제대로 보상을 해주지 않았고, 이에 실망한 테슬라는 미국 전력 기업 웨스팅하우스에 들어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적대적인 관계가 됐다.

에디슨과 테슬라는 오늘날 전류전쟁으로 알려진 직류와 교류의 전쟁을 벌이게 된다. 에디슨의 발전기는 직류를 쓰고 있었는데, 직류의 단점은 전압을 높이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전력을 멀리 보내려면 전력 손실을 막기 위해 전압을 높여야 한다. 오늘날 고압송전선은 74만5,000볼트라는 특고압을 쓴다. 에디슨의 발전소는 직류의 손실 때문에 집이나 공장에서 멀리 세울 수 없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수많은 발전소를 세워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교류는 전압을 높이기 쉬우므로 발전소를 멀리 세울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웨스팅하우스의 교류방식이 발전기에 널리 채택돼 오늘날 보편화된다. 역사는 에디슨의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에디슨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온갖 야비한 일들을 벌여 교류가 위험하다는 것을 대중에게 알리려 했다. 공개실험에서 개에게 교류 전류를 흘려 죽게 했는데 정확한 과학적 데이터도 없이 개가 죽을 때까지 무작정 전류를 흘려 보내는 식이었다. 수많은 개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한 것도 모자라, 조련사를 밟아 죽인 코끼리를 교류로 죽이는 장면을 언론플레이를 통해 대중에게 퍼트린다. 나중에는 전기의자에서의 사형집행도 교류를 쓰도록 물밑작업을 벌여 교류가 사람을 죽이는 위험한 전기라는 사실을 끝까지 퍼트리려 했다. 오늘날 교류가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에디슨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야비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다.

서울화력발전소의 터빈은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히 서 있다. 2016년이면 지금의 4, 5호 발전기는 30년의 수명이 다해 폐지되고 그 옆 지하에 지금 짓고 있는 복합화력 1, 2호 발전기가 가동된다. 지금 터빈이 들어 있는 거대한 공간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때가 되면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발전소가 될까?

이영준·계원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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