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경기 살아나자 청년 구인난.. 활기 찾은 '사토리 세대'

박석원 2015. 8. 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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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인력 부족 분야 수두룩… 취업 호황, 대졸자 원하면 97%가 취업 가능

한국 젊은이들에게도 기회, 알바나 정사원 보수 차이 크지 않아

"한국 젊은이 영어 잘하고 적극적, 비즈니스·서비스 진출 고려할 만"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오테마치(大手町)의 한 기업에서 사내 데이터베이스 업무를 맡고 있는 마에다 토모요(前田知世ㆍ26)씨는 "컴퓨터 관련 경력이 전혀 없는데도 취업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쿄의 중심 지요다(千代田)구. 지난 31일 오테마치(大手町)의 한 빌딩에서 마에다 토모요(前田知世ㆍ26)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모니터 화면을 보고 있다. 사내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는 업무다. 컴퓨터에 능통하냐고 물었더니 관련지식이 거의 없지만 일하는데 지장이 없다며 환하게 웃는다.

"원래 신주쿠 카페에서 계산과 음식 나르는 일은 물론 주방에서 파스타와 빵 굽는 조리 일을 했습니다. 연휴 때도 근무하는 바람에 친구 만날 시간도 없었죠. 그런데 관련 업무 경험도 없는데 지금 회사에 취업할 수 있게 돼 정말 만족합니다."

그녀는 지난해 카페에서 주 6일간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일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해서 얼마를 벌었을까. 시급이 1,100엔이었다고 하니 하루 최대 13시간씩 일했다면 35만엔(330만원)에 이른다. 그런데 지금의 회사로 옮긴 이후 주 5일 오후 6시30분에 '칼 퇴근'하면서 받는 시급이 1,000엔. 그녀는 "수입이 줄었지만 복장이나 액세서리 착용도 자유롭고 일도 안정적"이라며 "컴퓨터에 대한 미경험자도 받아줘 무척 놀랐다"고 말했다. 카페에서 일하던 그녀가 어렵지 않게 사무직으로 전직할 수 있었던 건 요즘 일본 기업들이 젊은 직원을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흔한 사례 중 하나다.

애 늙은이 '사토리 세대'에게 닥친 취업호항

어렸을 때부터 장기불황 속에 자라난 현재 20대에서 30대 초반 일본 젊은이들은 '사토리(애 늙은이 같은 달관) 세대'로 불려진다. 직업을 구하기 어렵고 미래가 불확실하다 보니 욕심도 없고 소비도 하지 않아 일본 경제에 오히려 부담이 된다는 평까지 받았다.

하지만 최근 일본 경기가 살아나면서 사토리 세대 사이에서 '내 인생을 찾는다'며 의욕 넘치는 '열혈층'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구직환경이 숨통을 틔우면서 젊은이들의 활력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미용학교 출신인 마에다는 "전에는 사무직을 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고 무경험자는 지원도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주변 친구들을 봐도 직장을 골라서 가는 상황"이라고 만족스러워했다. 옆자리에 앉은 선배 후쿠자와 토모유치(福澤朋之)씨는 "마에다가 어려운 업무가 생겨도 성격이 긍정적이라 열심히 일한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일본의 취업시장이 우리와 가장 다른 점은 '파견회사'란 존재다. 파견회사는 기업에 인력을 공급해주는 일종의 직업소개소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구직자가 특정 기업에 취업하더라도 중계해준 파견회사 소속 신분인 경우가 많다. 파견직원이 파견회사에 소속돼 지속적으로 관리된다

일본 최대규모의 파견회사 담당자들을 만나 젊은 층 취직 현황을 들어봤다.

도쿄 미나토구(港區) 하마마쓰쵸(浜松町)에 있는 맨파워그룹(ManpowerGroup)은 연매출 950억엔이며, 미국에 본사(매출 2조엔)를 둔 글로벌 인재파견회사다. 다무라 키와(田村紀和) 과장은 "지금 일본은 인력이 부족한 분야가 수두룩하다"며 "정보통신(IT), 건축ㆍ토목, 레스토랑 같은 요식업, 간병 및 보건의료 같은 분야는 젊은 인력 수요가 매우 많아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령화 사회라 요양시설의 일손부족이 심각하고 토목이나 건축은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둬 수요가 높다"며 "일본에서 대학졸자는 취업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면 96.7%가량 취업이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취업률이 70% 이하였다"고 말했다.

지요다구 마루노우치에 있는 템프스텝은 매출 2,000억엔의 대표적 인재파견회사다. 마사키 신지(正木?二) 영업이사는 "정보통신과 기술직 분야에서 절대적으로 인재가 부족하다, 이에 따라 보수도 20%에서 40%가량 치솟을 정도"라며 "구직자가 2,3개 회사 중 골라서 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마사키 이사는 "무리한 업무환경에 직원을 혹사시키는 '블랙기업'들이 특히 서비스 업종에서 많이 나타났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서비스 업종을 기피한다"며 "아베노믹스로 은행이 돈을 풀고 올림픽 유치에다 동일본대지진에 따른 복구사업까지 진행돼 건설분야의 인력수요가 크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대졸 초임이 471만원 '취업 대박'

이런 구인난이 이어지면서 파격적 대우로 취직하는 '취업 대박'소식이 곳곳에서 들린다. 올 4월 오사카(大阪)의 부동산회사가 명문대생 2명을 데려가 화제가 됐다. 일본상업개발이란 중소기업이 게이오대(慶應大) 문학부, 와세다대(早?田大) 스포츠과학부 출신 2명을 초임 50만엔(약 471만원) 조건으로 뽑은 것이다. 아무리 명문대생이라 하더라도 대졸 초임 평균이 20만~22만엔 수준인걸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회사는 홍보효과를 톡톡히 봤다. 중소기업도 대기업을 능가하는 대우가 보장된다는 증거로 회자되고 있다.

구인난이 심각해지면서 부작용도 속출한다. 지금 일본에선 기업이 졸업예정자에게 채용을 약속하는 대신 다른 회사 취직을 포기토록 종용하는 '오와하라'(オワハラ)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끝내라'는 뜻의 '오와레'(終われ)와 '해러스먼트'(괴롭힘ㆍharassment)를 결합한 신조어다. 합격 후 다른 회사에 응시하면 합격을 취소한다고 압박하거나, 입사내정자 합숙을 실시해 구직활동을 방해하는 것이다.

전공을 따지지 않고, 또 대학 레벨을 가르던 관행도 변하고 있다. 맨파워그룹의 다카노 타카유키(高野隆行) 집행임원은 "요즘 명문대보다 한 단계 낮은 '마치(MARCH)'라 불리는 5개 대학 출신들이 뜨는 추세"라며 "개성을 중시하는 풍조도 있고 기업들이 뽑아 보니 능력도 증명돼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MARCH는 메이지대(明治大), 아오야마대(靑山大), 릿교대(立?大), 주오대(中央大), 호세대(法政大)의 영문 머릿글자로 만든 조어다.

또 다카노씨는 "과거보다 정직원이 되는 기간이 굉장히 짧아졌다"며 "정직원이 되려면 2, 3년 이 걸렸으나, 이젠 3, 4개월 정도 근무태도를 보고 결정하거나 6개월~1년 내 정직원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영어 잘하고 Yes, No 확실한 한국 젊은이, 일본취업 노려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대우 격차가 한국보다 덜하다는 것 외에도 아르바이트나 정사원의 보수 차이도 크지 않다는 게 지금 일본 고용시장의 특징이다. 최대 아르바이트 미디어인 '안(an)'의 우에도 타츠야(上土達哉) 편집장은 "일본에서도 취직했다는 것은 정사원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관동이나 수도권의 파견직 평균시급이 1,032엔 정도"라며 "주5일 근무하면 대략 20만~25만엔은 벌 수 있으니 여유롭지 않더라도 생활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물론 여전히 들어가기 어려운 분야는 남아있다. 우에도씨는 "인기직종인 언론과 종합상사, 은행 및 금융은 여전히 취업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취업분야 전문가들은 한국 젊은 인력에 대한 관심도 표현했다. 맨파워그룹 다카노 임원은 "한국 젊은이는 일본과 달리 영어를 잘하는 게 특징"이라며 "일본의 관광산업이 호황이지만 영어구사가 가능한 인력이 모자란다, 내가 한국 젊은이라면 일본을 비롯한 해외 서비스산업에 진출해 활약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우에도 편집장은 "한국학생은 진취적인데다 기획력이 있고 긍정적이며 우수한 사람들이 많아 해외로 눈을 돌리면 좋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인은 상대방 의사를 존중하고 신경 쓰느라 확실하게 말을 못하는데 비즈니스 할 때는 한국인처럼 '예스, 노'가 확실한 성격이 좋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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