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탐정'이 보험 사기 잡는다

2015. 8. 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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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보험사기조사팀(SIU) 동행 르포

지난달 초 어느 주말 오전 9시18분. 2014년식 재규어 XF 2.2D 차량 소유주로부터 사고 신고가 접수됐다. 오르막길 운전 중 차량이 미끄러져서 주택 담벼락에 부딪혀 뒷유리창이 다 깨져 나가는 등 차량 뒷부분이 파손됐다는 내용이었다. 지난달 14일 오후 보험사기 조사관 김아무개(44) 삼성화재 보험조사파트 팀장은 서울 성수동의 한 정비업체로 옮겨진 사고차량과 마주했다. 사고차량은 트렁크가 크게 파손된 상태였다. 트렁크 오른쪽 부분에는 기다란 구조물에 부딪힌 흔적이 남았다. 담벼락 모서리나 전봇대 등에 충돌한 것으로 추정됐다.

보험 가입자는 30대 남성 운전자 ㄱ씨. 수상한 구석이 느껴졌다. 김 팀장의 경험상 남성 운전자가 술을 마시지 않고 낸 단독사고치고는 파손 상태가 심각했다. 운전자 좌석은 운전대 쪽으로 바짝 당겨진 상태였다. 그는 몸집이 작은 남성 직원을 시켜 차에 타게 했다. 직원은 사고차량에 몸을 구겨 불편하게 타고 내렸다. 김 팀장은 "보통 남성 운전자는 좌석을 바짝 당겨서 운전하지 않는다. 좌석 상태를 보면 체구가 작은 여성이 운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가장 미심쩍은 건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에 사고 당일의 기록만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ㄱ씨는 '1인 한정특약'으로 보험을 가입한 상태였다. 다시 말해 ㄱ씨가 운전하다가 사고를 냈을 경우에만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ㄱ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사고를 냈을 가능성, 아침 일찍 사고 접수가 된 것을 봤을 때 음주운전 중 사고를 낸 뒤에 뒤늦게 사고 접수를 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외제차 단독사고의 경우 상대적으로 보험사기 확률이 더 높죠." 이날 정비업체 현장에서 <한겨레>와 만난 김 팀장이 말했다.

경제사정 힘들면 사기 급증

그는 삼성화재 보험사기특별조사팀(SIU·Special Investigation Unit) 소속, 7년차 경력의 베테랑 보험사기 조사관이다. 삼성화재는 1996년 5월 보험업계 최초로 보험사기를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팀인 에스아이유를 만들었다. 당시 삼성화재는 전직 경찰관 5명을 보험사기 조사관으로 영입하면서 기존 보상파트에서 부수적으로 처리하는 보험사기 조사 업무를 '보상조정파트'라는 사기 조사 전담조직을 만들어 따로 분리해 냈다. 2013년부터는 명칭이 '보험조사파트'로 바뀌었다. 에스아이유는 크게 자동차 관련 보험사기와 신체 관련 보험사기 두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그 가운데 김 팀장은 자동차 보험사기 쪽에서 현재 삼성화재 중앙·강북·강서외제차 센터와 인천·경기 고양 외제차센터를 담당하고 있다. 삼성화재에 가입된 외제차 사고 가운데 인천과 서울 강북에서 일어난 보험사기 의심 건은 모두 그의 손을 거친다. 그가 다루는 사건은 해마다 700~800건에 이른다.

경제사정 어려워지자 보험사기 급증사기 지능화, 전문 경력자 채용 SIU 구성조사관, 손보 350여명, 생보 150여명증거·증인 없는 곳에서 범행 빈발사고 유사상황 직접 연출해 증거 잡아이름·얼굴 드러나면 사기범이 알아채"사기는 선량한 가입자 보험료 올려"

보험사기 범죄는 에스아이유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늘 있어왔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들어서 조직폭력배 등이 고의적으로 신체를 손상시켜 막대한 장애보험금을 타내는 식의 보험사기 범죄가 급격하게 늘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는 경제사정이 어려워 자동차 보험사기를 통해 보험금을 타내려는 사람이 부쩍 증가했다. 일선 보험사들은 대책 마련에 고심했고, 삼성화재를 시작으로 메리츠화재, 현대해상, 롯데손해보험, 케이비(KB)손해보험 등 손보업계 중심으로 보험사기 조사 전담팀을 조직했다. 이종규 삼성화재 보험조사파트장은 "보험사기가 보험사의 손해율(가입자로부터 받은 보험료 대비 가입자에게 지급한 보험금 비율)을 악화시켰다. 자동차 보험사기가 늘어나면서 그간 보상 담당자들이 해오던 것 이상의 전문적인 조사 경력이 필요해 에스아이유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생보업계도 2002년 10월 삼성생명을 시작으로 알리안츠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엔에이치(NH)농협생명 등이 에스아이유를 조직했다. 현재는 손보업계 350여명, 생보업계 150여명 등 모두 500여명의 에스아이유 조사관이 있다.

정황증거를 잡아라

사기 의심 사고를 처음 인지하는 쪽은 대개 보상부서 직원이다. 운전자의 연락을 받고 제일 먼저 출동하는 담당자가 현장을 확인하고, 운전자에게 사고 개요를 물어 일차적으로 사기 여부를 판단한다. 만일 사고 현장 상황이 고객의 설명과 부자연스러운 경우 보상 담당자가 에스아이유에 조사를 의뢰한다. 에스아이유는 보상 담당자의 보고 내용을 감식한 뒤, 사기 소지가 높은 건에 대해서 직접 조사에 나선다.

사고 현장에 나가기 전 조사관들은 먼저 사고차량의 상태를 살핀다. 현장에서는 부근에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있는지 확인하고, 피해자 및 견인차 기사 등 목격자와 면담한다. 단독사고의 경우 차량이 부딪힌 구조물 등에서 사고의 흔적을 살피는 일도 잊지 않는다. 최종적으로는 운전자의 주장대로 사고가 일어날 개연성에 대해 검증 작업도 거친다. 지난해 12월 최고급 세단 벤츠 S600 차량이 한밤중에 올림픽대로로 진입하다가 교각을 들이받은 사고가 발생했다. 주변에 목격자나 폐회로텔레비전은 없었다.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은 지워진 상태였다. 수상한 정황은 또 있었다. 2013년 8월 전남 여수시에서 사고차량의 이전 소유자가 바닷물에 빠지는 사고를 냈던 내역이다. 운전자는 침수된 벤츠 차량을 2000여만원에 구입해 수리해 타고 다니다 다시 사고가 난 상태였다.

운전자는 졸음운전을 하다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고 현장으로 가는 길은 에스(S)자형 도로에 과속 방지 요철이 빽빽이 설치됐다. 김 팀장이 직접 운전해보니 요철을 지나면서 차가 들썩들썩하고 도로가 굴곡져 졸음운전으로는 도저히 통과할 수 없는 구간이었다. 경찰에 이 사고를 수사 의뢰했고, 경찰 수사 결과 보험사기로 적발됐다. 당시 사고차량의 보상 기준 가격은 6000여만원이었다. 전손처리(사고 발생 시 자동차 값을 보상받고 폐차 처분하는 것)하면 차량 구입 가격보다 3배 넘는 돈을 받을 수 있어 운전자는 이를 노리고 고의 사고를 저질렀다. 보험사기는 범죄의 특성상 주로 증거와 증인이 없는 곳에서 범행이 일어나 명확한 증거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런 경우 정황증거가 결정적이어서 직접 사고 상황과 유사한 상황을 연출해 실험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말로 설명 어렵지만 촉 느껴져"

김 팀장의 하루 일과는 서울과 인천 곳곳을 누비며 보험사기 의심 현장을 확인하고, 고객을 만나 사건 정황에 대한 진술을 듣는 것으로 빽빽하게 채워진다. 현장에 나가 증거자료를 모으고, 경찰서에 나가 이를 제출하며 보험사를 대신해 수사의뢰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서류가방에는 줄자와 돋보기, 증거를 채취하기 위한 면봉과 비닐봉지가 늘 들어 있다. "고객들이 괜히 오해할 수 있어요." 김 팀장은 한사코 신원을 밝히기 꺼렸다. 이름과 얼굴을 밝힐 경우, 나중에 현장에서 만난 고객들이 자신을 보고 보험사기 의심자로 지목된 것을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사하다 보니, 범죄자에게서는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촉이 느껴져요. 사고야 늘 일어나지만, 보험금을 노린 사고는 운전자에게서 묘한 기운이 느껴지죠." 김 팀장은 경찰 출신 조사관이다. 16년간의 경찰 생활 대부분을 형사계에서 근무했다.

손보협회와 생보협회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에스아이유 조사관 가운데 검찰조사관, 간호사, 의무기록사, 교통안전공단의 교통사고 조사원, 보험사 자체 직원 등 다양한 출신이 존재하지만 경찰 출신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현대해상이 전체 46명으로 가장 많고, 케이비손해보험 30명, 삼성화재 24명, 한화손해보험 25명, 동부화재 23명이다. 손보사의 경우 보통 경찰 출신 에스아이유 조사관이 60% 이상이다. 이종규 파트장은 "예전에는 교통사고 조사 전문가로서 교통조사계에서 오래 근무한 경찰들을 주로 채용했다가, 점차 보험사기가 지능화하면서 최근에는 수사 경험이 있는 형·수사 경력 경찰들을 주로 채용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보험약관 허점도 SIU가 사전검토

그러나 경찰 출신 에스아이유 조사관이 늘어나는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에스아이유는 수사 권한이 없기 때문에 수사기관 출신의 조사관을 채용해 불법적으로 수사기록이나 고객의 개인정보를 빼내거나 현직 경찰들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4년 보험사기 적발 현황'을 보면, 지난해 보험사 에스아이유에서 자체 적발한 보험사기 규모는 4433억원으로, 전체 5997억원의 73.9%다. 이는 2013년 자체 적발액(4051억원)에 비해 9.4% 증가했다. 경찰 등 수사기관과 공조해 적발한 규모는 738억원, 금감원과 공조해 적발한 규모는 826억원으로 2013년에 비해 각각 18.4%, 60.6% 늘었다. 최근에는 에스아이유의 역할이 넓어져 상품 개발 단계에도 참여한다. 개발중인 보험상품의 약관을 에스아이유에서 사전검토해, 보험사기가 일어날 허점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보험사기는 불필요한 보험금이 새나가게 해, 결국 선량한 가입자의 보험료만 올라가게 합니다. 보험사기가 만연하면 보험산업 자체의 지속성도 무너질 수밖에 없죠. 지금 이 순간에도 보험사기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김 팀장의 말이다.

이재욱 기자 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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