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300]'지지부진' 해킹정국, '국정원 디스'보다 필요한 것은

박소연 기자 2015. 8. 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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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진상조사'보다 '장외공방'에 머물러..野, 확실한 '증거'로 승부해야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the300]'진상조사'보다 '장외공방'에 머물러…野, 확실한 '증거'로 승부해야]

("RCS로 카톡 감청이 안 된다는 건 무슨 근거인가요?") "아무런 근거 없고 믿어달라고. 실시간 도청도 안 된다 믿어달라. 지금 저 안이 거의 교회에요 교회. 그냥 믿어달라."

지난달 27일, '해킹사건'으로 관심이 집중됐던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 현안보고.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회의 도중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회의장 밖에서 취재진에게 던진 이 말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야당으로서는 로그파일 등 핵심자료는 내놓지 않고 "직을 걸고 내국인 사찰은 없었다"고 단호히 말하는 국정원이 마치 종교단체처럼 보였을 터.

다음날부터 야당은 '국정원 디스'에 돌입했다. 신경민 정보위 야당 간사는 28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어제 정보위는 종교집회의 합창을 연상시켰다"며 "합창의 내용은 '믿어달라, 사찰은 없었다, 자료는 국정원이 우스워질까 내놓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디스'는 날로 진화했다. 신 의원은 31일 "합창대회 곡명으로 국정원은 '믿어줘', 여당은 '믿자믿자믿자', 검찰은 '별것 없다'를 준비할 것이다. 청와대는 전위음악으로 '침묵 합창'을, 일부 언론은 '맞장구'를 준비할 것"이라며 "또 한 번의 합창대회는 사절하겠다. 우리는 김추자의 '거짓말'을 준비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국정원 비판에는 이유가 있다. 국정원의 불법 해킹과 사찰의혹에 대한 진상조사를 위해 필수적인 자료 일체를 국정원이 쥐고 있는 데다 국정원은 대한민국에서 수사기관의 접근도 일부 제한되는 거의 유일한 '성역'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국정원과 관련된 적은 양의 정보조차 대부분 여당으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지난 정보위 전체회의 이후 야당의 행보는 실망스럽다. 정보위 의원들의 말에 따르면 회의에서 국정원은 '익명화'했을지언정 의혹에 대한 소명을 했다. 국정원은 이날 PPT자료에 문제의 IP 3개와 접속 기록이 일치하는 휴대전화 번호('010-xxx..')를 각각 띄운 뒤 "이 번호는 국정원 명의의 번호"라고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SKT 통신자료를 일부 공개, 해당 휴대전화와 접속시간까지 일치한다며 이중의 증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28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국정원 명의의 실험용 스마트폰 사용내역까지 제시하며 해당 스마트폰의 IP 사용 기록과 국내 SKT IP 사용 기록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밝혔다.

야당은 '010-xx...'라는 번호가 정말 국정원 소유인지, 국정원이 제시한 통신 사용내역이 해당 휴대전화 기록과 일치하는지 눈으로만 보고는 바로 검증할 수 없다고 했다. 한 야당 의원에 따르면 이날 숨진 국정원 직원 임모 과장이 삭제한 파일 중 국내실험용 31개의 대상은 보안상 '동그라미, 세모, 땡땡'으로 발표됐다고 한다. 야당으로선 의심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의혹을 캐기 위해 필요한 건 '디스'가 아니라 '증거'다. 회의장에서 당장 눈으로 검증이 어렵다면 이후 국정원 소유의 휴대전화 IP 사용기록이 SKT 해킹 의심 IP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근거를 찾아야 한다. 국정원의 '익명화된' 발표나 이것이 거짓일 거란 야당의 주장이나 확증이 없긴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날 이후 기자의 취재과정에서 야당 관계자들은 국정원 발표를 제대로 반박하지 못한 채 "(SKT IP 3회선은) 올해 6월 일인데 2012년부터 3년치도 소명해야 한다", "임 과장이 왜 죽었는지가 중요하다"는 우회적인 말만 했다.

이렇다보니 여당이 오히려 국정원 진상조사에 적극적인 형국이다. 여당은 29일 이례적으로 국정원을 개방해 국정원측 전문가와 여야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함께 '기술간담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이철우 정보위 여당 간사는 "왜 삭제파일 복구에 시간이 오래 걸렸는지 기계를 보며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로그파일은 민간인 전문가에게 공개할 수 없지만 추후 정보위원들 현장방문시 공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경민 야당 간사는 합의내용을 발표한 후 한 시간 만에 별도 기자회견을 열고 "자료제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참석하지않겠다"고 밝혔다. 로그기록과 삭제한 하드디스크 원본, 복원데이터 등 6가지 자료제출을 압박한 것인데 합의사항을 장외에서 무력화하는 것처럼 비춰져 현장기자들 사이에 논란이 일었다.

국정원을 상대로 진실을 캐내기는 어렵다. 의혹제기나 심증, 국정원 '디스'만으론 한계가 있었음을 봐왔다. 정청래 새정치연합 최고위원의 '국정원 직원 변사사건 7대 의혹'이나 전병헌 최고위원의 '마티즈 차량 바꿔치기 의혹'은 경찰의 해명에 막혀 파괴력을 보이지 못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방송을 통해 "(국내 사찰) 피해자가 있다"고 했지만 피해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야당은 9월 초 국정감사도 '해킹'으로 물들일 태세다. '특검'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여당은 "안보자해 행위 중단하라. 전문가 간담회와 정보위 현장검증으로 논란을 종식하자"며 기세등등하게 나오고 있다. 국민은 진실을 알고 싶다. 국정원의 부당함을 말하는 것으론 진실을 알 수 없다. 야당은 다소 제한됐더라도 간담회와 현장검증 등 진상조사에 나서 증거를 찾아야 한다. 지루한 공방만 이어간다면 민심도 피로감에 등을 돌릴 수 있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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