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장 탄원서 보도에.."왜 읽어보지 않냐" 호통

김민중 기자 2015. 8.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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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여담]동성혼 찬·반 탄원서 대결, 법관 흔들기보다 '사법권' 존중 필요

[머니투데이 김민중 기자] [[취재여담]동성혼 찬·반 탄원서 대결, 법관 흔들기보다 '사법권' 존중 필요]

"과거 군부독재 시절엔 위의 눈치를 봤겠지만, 요즘 판사들은 여론을 살핍니다."

지난 1일 만난 서울 모 지방법원 소속 판사의 얘기입니다.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껏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 역시 '세상 사람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까' 하는 생각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겠지요. 여론의 관심이 많은 사건에 대해서는 법관들도 신중해지기 마련입니다.

현재 서울서부지법이 심리 중인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국내 첫 '동성혼 인정 소송'도 예외가 아닙니다. 찬·반 양측의 첨예한 대립과 세간의 관심을 고려하면 서부지법 이기택 법원장의 부담은 상당해 보입니다.

동성혼 재판과 관련, 최근 서부지법을 가장 곤란하게 만드는 일 중 한 가지는 탄원서입니다. "동성혼 인정하라", "동성혼 인정하지 말라" 요청하는 탄원서가 하루에만 1000통 넘게 들어오고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들어온 탄원서를 쌓아놓으면 높이 약 10미터, 무게 약 470킬로그램에 달한다고 합니다. 과거 법조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탄원서의 홍수가 서부지법에 밀려오고 있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빗발치는 탄원서 탓에 법원 업무가 마비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음에도 서부지법에 매일 도착하는 탄원서의 개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수북이 쌓여 있는 탄원서 뭉치의 사진이 보도된 후 오히려 "왜 쌓아두고 보지 않느냐"는 민원인들의 독촉전화가 더해지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탄원서를 보내는 것도 모자라 "어서 보라"고 요구하는 열정적 시민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최근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반대 탄원서를 최대한 많이 보내 찬성 탄원서 수를 월등히 압질러야 한다', '법원이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법원이 최근 접수하고 있는 탄원서 중엔 '동성혼 반대' 비중이 높다고 합니다. 찬·반 탄원서 대결에서 반대 쪽이 우위를 점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정도 분량의 탄원서라면 찬·반 의견을 막론하고 시민들의 경각심을 재판부에 전달하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듯 보입니다. 같은 내용에 이름만 다른 '판박이' 탄원서도 수백 장씩 접수됐다고 합니다. 모든 시민의 탄원서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법원의 한정된 인력과 수행해야 할 업무들을 고려하면 과연 모든 탄원서를 일일이 들춰보는 게 효율적일까요.

혹여 법관의 판단이 여론에 흔들린다면 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법관의 판단은 오롯이 '법과 양심'에 따른 것이어야 합니다. 사법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견제하고 감시할 필요는 있지만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는 것은 3권 분립의 기본입니다. 흔들기보다는 눈여겨보며 법관의 신중한 판단을 기다리는 게 성숙한 시민의식에 걸맞은 행동일 것입니다.

탄원서 행렬이 멈추기를 바랍니다. 또 탄원서 보내기를 자제하자는 주장이 동성혼 찬·반 중 어느 한 편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탄원서 발송 자체가 잘못이라는 게 아닙니다.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는 권리겠지요. 다만 특정 사안에 대한 여론의 뜨거운 관심 탓에 '마비'된 법원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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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중 기자 mi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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