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ㄱ씨 차량은 경찰 손바닥 안에 있었다

입력 2015. 8. 1. 16:00 수정 2015. 8. 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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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경찰 불법 위치추적 의혹

▶ 국가정보원 해킹 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안보 목적이었는지 민간인 사찰용이었는지 불분명합니다. 아니, 목적이 무엇이었건 간에 불법을 저질렀기에 진상규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경찰이 위성위치추적장치(GPS)로 민간인을 내사해온 것이 새로 드러났습니다. 국정원도 개입한 정황이 있습니다. 지피에스는 수사기관이 공공연하게 써왔던 것이라고 합니다. 국민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민간인 사찰 논란이 일 것 같습니다. <한겨레>가 추적해보았습니다.

ㄱ(58)씨는 중국 랴오닝(요령)성의 한 도시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이다. 아내와 자식까지 모두 수년 전부터 중국으로 건너가 살고 있는데, 딸 하나만 서울에 남았다. ㄱ씨는 2013년 말 딸을 만나러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을 들렀다. 딸을 만나기 직전 ㄱ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낯선 남자였다. "조 과장이라고 합니다. 저도 이문동에 있는데 잠시 좀 보실까요."

황당했지만 ㄱ씨는 '조 과장'이라는 남성을 만나러 갔다.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알고 봤더니 국가정보원 직원이었어요. 제가 이문동에 있는 것을 어찌 알았는지 따져 물어도 별 대답을 안 하더라고요. 다만 저에게 '북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알고 있느냐. 사업하다 망해서 돈 떨어져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들 알고 있느냐. 조선족 노숙인 좀 연결해달라'고 했어요."

국가정보원이 대체 왜 찾아온 건지 ㄱ씨는 꺼림칙했다. 몇년 전 수입 관련 일을 하다 약사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은 적은 있지만 국정원과는 관련 없는 일이다.

<한겨레> 취재 결과 ㄱ씨는 이즈음 수사기관의 사찰을 당하고 있었다. ㄱ씨를 쫓은 건 해양경찰청(2014년 해체) 보안수사대였다. ㄱ씨의 사찰에는 위성위치추적장치(GPS)가 동원됐다. <한겨레>가 입수한 ㄱ씨에 대한 수사자료를 보면, 경찰은 ㄱ씨를 2013년 10월께부터 최소 3개월간 살폈다. 추적장치를 ㄱ씨의 차량에 설치하고 ㄱ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으로 찍었다.

영장 없이 활용했다면 불법

경찰은 중국 내 '민간인 협조자'를 동원했다. 이 민간인 협조자의 증언과 수사자료를 종합하면, 경찰은 협조자에게 ㄱ씨의 차량에 위성위치추적장치 설치를 지시하고 사진을 찍게 했다. 추적장치는 배터리 문제 때문에 주기적으로 교체했다. 경찰은 수거한 추적장치를 컴퓨터에 연결해 ㄱ씨의 동선을 확인했다. 협조자에게는 이메일로 직접 업무를 지시했다.

ㄱ씨의 위치 이동은 차량이 움직일 때마다 지도에 선이 그려지는 형태로 기록됐다. 차량 이동 시작시각과 멈춤시각이 초 단위까지 기록됐고 총 이동거리가 얼마인지 시간대별로 기록됐다. 예를 들어, ㄱ씨는 2013년 밤 9시7분44초 금수로(錦綬路)를 출발해 9시9분38초 인민대로(人民大街)를 거쳐 9시17분27초 은하로(銀河路)에 도착한 것으로 기록됐다. 이때 총 이동거리는 1.6㎞였다.

ㄱ씨 차량에 부착된 추적장치는 국내 ㅇ업체가 만든 제품이었다. 해당 제품은 측정 대상자의 위치를 3m 정도의 오차범위 내로 잡아낸다. 자동차가 이동하지 않으면 센서가 감지해 대기모드로 바뀌기 때문에 총 360시간가량 전원이 유지된다. 이 업체는 자사 누리집에 'GPS 전문기업'이라고 소개하며 이력에 '2010년 UTIS 사업 GPS 모듈 공급/경찰청'이라고 기재했다. 업체 관계자는 한겨레에 "주요 고객이 누구인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왜 ㄱ씨를 추적했을까. ㄱ씨는 중국인 동업자와 함께 무역업을 했다. 한국에서 식품 등을 수입해 중국에 파는 중개무역 사업이었다. 동업자인 중국인은 중국산 물품을 북한 쪽에 파는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경찰은 ㄱ씨가 직접 북한과 연계해 무역업을 하는 게 아닌지 의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경찰이 ㄱ씨의 동선에 관한 통신 추적을 관련 영장 신청 없이 장기간 진행했다면 불법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15조는 '당사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위치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위치추적장치를 통신기기로 보아 통신감청 영장을 받아 수사기관이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법률적 판단이 더 필요하다. 다만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수사·정보기관이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이 이를 심사하여 발부된 통신감청 영장을 집행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추후 당사자에게 감청 사실을 고지해야 한다.

ㄱ씨는 지난 29일 인터뷰에서 불쾌감을 표했다. ㄱ씨는 "나는 단순히 무역업자일 뿐인데 그렇게 장기간 사찰당했다는 것이 황당하다. 무서워서 잠도 못 잘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ㄱ씨에 대해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해 내사 종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ㄱ씨는 자신이 추적당했다는 사실을 수사기관으로부터 전혀 통보받은 바 없다고 한다.

중국 랴오닝성의 사업가 ㄱ씨대북무역 관련 대공 혐의로 내사경찰은 그의 차량엔 GPS 붙였고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봤다누구나 살 수 있는 58만원짜리자석처럼 자동차 구석에 붙여서휴대전화로 위치정보 전송업체 "경찰도 가끔 사간다"

ㄱ씨의 수사에는 국정원이 개입한 정황도 있다. ㄱ씨의 위치정보가 새어나갈 즈음, 국정원 직원이 서울에서 느닷없이 ㄱ씨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2013년 당시 중국에서 해양경찰청 보안수사대의 업무를 도운 민간인 협조자는 최근 <한겨레>와 만나 "지난해 1월 보안수사대 경찰과 국정원 직원을 함께 만났는데, 그때 국정원 직원이 '어려운 작업인데 그걸(사찰) 하고 계시냐. 훌륭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ㄱ씨 수사를 맡은 경찰은 인천 해양경찰청 보안계(현 인천 중부경찰서 보안과) 김아무개(45) 경위다. 김 경위는 ㄱ씨 사건 외에도 국정원과 함께 각종 공안수사를 해왔다.

이번 사건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수사기관의 위성위치추적장치 사용이 그동안 소문으로는 알려졌지만 실제 사용이 확인된 첫 사례라는 점이다. 불법으로 위치추적을 당한 피해자가 과연 ㄱ씨 한명에 그쳤을까. 전직 보안수사대 경찰은 30일 "대략 10년 전부터 위치추적장치를 보안수사 부서에서 써왔다. 주로 노동운동·학생운동을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영수증 첨부가 필요 없는 특수활동비로 구입한다. 국군기무사와 국정원도 위치추적장치를 사용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경위의 업무 지시를 받은 민간인 협조자는 "김 경위가 '위에서 허락받고 실행하는 것이고 과거부터 써왔던 장비'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30일 서울의 한 위치추적장치 판매업체를 찾았다. 이 업체에 주요 고객층이 누군지 묻자 직원은 "주로 (직원 차량의 위치를 확인해야 하는) 서비스 업체 등에서 다량 구입하는데 가끔 경찰도 사 간다. 3년 전 인천 쪽 경찰이 5개를 구입해 갔다"고 말했다. 가격은 58만원이었다.

직원에게 장치를 시연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업체가 판매하는 위성위치추적장치는 주먹만한 크기로 1㎏ 정도의 무게였다. 안에 자석이 박혀 있어 철문에 붙이니 단단하게 붙었다. 강하게 힘을 주어 당겨야 문에서 떨어졌다. 휴대전화에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장치 고유번호와 비밀번호를 누르자 장치가 현재 어느 지점에 있는지 지도와 함께 전화 화면에 표시됐다. 직원이 기기를 들고 다른 곳으로 걸어가자 1분 단위로 업데이트되며 위치가 확인됐다. 직원은 "지하로 들어가도 위치가 잡힌다"고 설명했다.

안보 목적 수사라도 법을 지켜야

이번 사건은 '국정원 해킹 사건'과 별도로 또다른 '민간인 사찰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은 영장 없이 현장에서 용의자를 미행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3개월가량 차량의 위치를 추적한 것이기에 압수수색 또는 통신감청 영장 같은 게 필요한 상황으로 봐야 한다.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고 민간인을 사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위성위치추적장치를 관련 영장을 발부받아 수사에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 경찰청 관계자는 "위치추적장치를 사용하기 위한 영장 신청은 국내에서 전례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서울지방법원의 한 형사사건 담당 판사는 "위치추적장치를 수사에 활용하는 것이 법률 위반인지는 좀더 검토가 필요하다. 다만 영장 없이 사용했다면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 경위가 소속된 인천지방경찰청은 30일 "(김 경위가) 해양경찰청 소속으로 근무할 때 벌어진 일이어서 우리가 답변할 사항이 아니다. 김 경위가 직접 해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김 경위에게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했으나, 그는 전화도 받지 않고 회신을 하지도 않았다.

진선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31일 "국정원이 내국인을 상대로 해킹을 한 것이 큰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수사기관이 또 한번 내국인을 불법 사찰한 것으로 확인된 사건이다. 안보 목적 수사라 하더라도 정해진 법과 원칙을 따라야 한다.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따져 묻겠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서의 한 간부급 경찰은 "수사기관이 법을 지키지 않으며 수사하는 것을 용인한다면 법치주의 국가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글·사진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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