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홍길동 저리가라? 2천여 관광객이 29만 되는 마법

박병준 2015. 8.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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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 담당자가 우리나라 인구를 센다면?

"우리나라 인구는 35억 명입니다."

믿을 사람 있을까요? 하지만 현실이 되는 곳이 있습니다. 수만 명이 수백만 명으로 불어나는 그곳. 홍길동의 분신술을 뺨치는 마법 같은 일이 매년 지역 축제장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 2,300명이 29만 명이 되는 계산법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름 축제가 된 보령머드축제부터 얘기해 보겠습니다. 주최 측은 매년 3백 만 명 이상이 머드축제장을 찾는다고 발표해왔습니다. 매년 우리나라 국민 17명 가운데 한 명은 찾는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제 주변엔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주말을 앞둔 지난달(7월) 24일, 금요일 오후인데도 머드축제장은 한산했습니다. 비가 내리고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 3km가 넘는 해변에는 거짓말 조금 보태 관광객을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 인근 주차장도 텅텅 비어 휴가철이라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이날 머드축제장 입장객 수는 2,321명. 하지만 보령시는 축제 관광객을 29만 5000명으로 공식 기록했습니다. 무려 126배. 어떻게 이런 집계가 가능했을까.

보령시 설명은 이렇습니다. "축제를 즐기러 온 모든 사람이 '머드 축제장'에 입장하는 것은 아니다. 축제장 밖에서 구경만 할 수도, 해변에서만 놀 수도 있다. 축제장 밖의 사람도 머드 관광객으로 봐야 한다." 이런 논리로 차량 통행량과 해변 면적 등을 대입한 계산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계산법에 따라 열흘간 입장한 4만 6300여 명은 3백20만 명으로 70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70배는 좀 심하다 싶어, 구체적인 계산 방식과 근거자료를 물었는데요. "근거자료는 남아있질 않는다"면서 "70배로 늘어날 수도 있는 거지 이런 계산이 틀렸다는 근거는 무엇이냐"고 반문했습니다.

7월 10일부터 열흘간 열린 부여 서동·연꽃축제는 어땠을까요. 주최 측인 부여군은 축제가 끝나기 무섭게 백만 명이 다녀갔다고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여긴 어떤 방법으로 집계했을까요?

"지난해는 축제를 나흘 동안 열었는데 25만 명이 다녀갔습니다. 올해는 축제 기간이 열흘인데 지난해보다 주변에 차가 더 막혔거든요. 그러니까 아마 백만 명은 왔을 겁니다."

부여군 담당 공무원의 설명입니다. 부여군 역시 관광객 숫자를 증명할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주장'인 셈이지요. 더 황당한 건 지난해 집계도 현장에서 사람을 센 것이 아니라 눈대중으로 한 추산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올해 백만 명의 관광객은 추산을 근거로 한 추산이었습니다.

▲ 관광객 숫자만 보면 ‘축제의 왕국’

두 축제만의 일일까요?

지자체 축제 담당 공무원들은 대부분의 다른 축제들이 다 비슷한 방식으로 관광객 통계를 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13년을 기준으로, 전국 40개 지역 대표축제에 다녀간 관광객 수를 더해보니 2천6백만 명. 인구의 절반이 축제장을 찾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는 연간 6백여 개쯤으로 추산됩니다. 40개 축제에 2천 6백만 명이 찾았을 정도니, 6백여 개 축제를 찾은 사람은 얼마나 될지 상상이 가시나요. 지자체가 각각 집계하는 관광객 수만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는 축제의 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 결국은 자치단체 ‘치적’

자치단체들이 상식과 어긋날 정도로 관광객을 부풀리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경제 효과 때문인데요. 관광객 숫자를 크게 잡아야, 수십에서 수백 억원대의 경제 효과가 났다고 선전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변수가 뻥 튀겨졌으니 경제효과 역시 허수일 뿐입니다.

보령시는 지난해 330만 명이 다녀간 머드축제로 6백54억 원, 부여군은 서동연꽃축제로 60억 원의 경제적 효과가 있었다고 발표했는데요. 취재진이 만난 보령과 부여지역 상인들은 자치단체의 경제효과 발표에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숫자 놀이일 뿐이라는 거죠.

주민들이야 어떻게 느끼든 자치단체들은 매년 이런 자료를 공식적으로 발표해 치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전국 40개 대표 축제의 지역경제 효과를 모두 더해보니 1조 5천9백 억 원에 달했는데요. 40개 축제에서 정말 이런 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하는지 의문입니다.

▲ “축제장 관광객 추산 기준 세워야”

부풀려진 관광객 수는 축제의 예산 배분 근거로도 일부 활용됩니다. 중앙정부와 광역자치단체는 기초단체가 조사한 축제의 파급효과 등을 감안해 축제 지원금을 내려주고 있는데요. 이런 예산 배분 방식이 관광객 부풀리기의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한 자치단체 공무원은 "옆 동네에선 작은 행사를 수 만 명으로 부풀려 지원금을 타내는데, 우리도 질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주최 측이 측정하는 셀프 조사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신뢰도 있는 관광객 수 측정 기준과 방식을 제시한 뒤 지원금을 집행해야 관광객 부풀리기를 방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언론도 반성해야”

뜬금없는 마무리지만 꼭 해야 할 말인데요. 지역축제의 관광객 부풀리기의 배경에는 언론이 있습니다. 자치단체가 배포한 뜬금없는 관광객 숫자를 검증 없이 그대로 보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 역시 자유롭지 못합니다. 지역 축제가 자치단체의 치적을 부풀리는 데 활용되지 않도록 제대로 된 감시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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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준기자 (lo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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