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제주도로 간 도시남자들

윤예나 기자 2015. 8. 1.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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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혜 지음|즐거운 상상|244쪽|1만4000원

소박하면서도 넉넉한 ‘시골’ 인심. 아토피 같은 도시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오염 없는 환경. 자급자족하며 누릴 수 있는 마음 편한 삶. 자연 속 낭만을 꿈꾸는 도시인은 늘어만 간다.

서울 토박이 교사였던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마흔 살이 되던 해에 남편과 두 아이를 이끌고 제주도로 향했다. 온 가족이 새로운 땅에서 ‘제2의 인생’을 무난히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굳게 믿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제주도 교사로 전근한 저자,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아이들은 괜찮았다. 그러나 운영하던 일식당을 그만두고 새 인생을 선언한 남편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2년 동안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정육가공회사, 급식 조리원, 감귤 농사꾼, 생선 경매업자, 옥돔 판매업자, 장애인협회 간사, 초콜릿 배송, 귤 택배까지.

저자는 블로그를 열고 남편을 응원하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남편의 다양한 직업 경험담을 쓰면서 그를 위로하고 힘든 마음을 다독이려는 시도였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뜨거운 반응이 왔다. 제주도로 이주한 도시 남자들의 ‘폭풍 공감’ 댓글이었다.

남편처럼 고군분투해온 그들의 댓글을 보면서 저자는 제주에 이주한 도시 남자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경쟁 사회에서 벗어나 제주로 이주한 남자들의 로망이 현실과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리기 위한” 취재였다.

저자는 도시에서 자신이 하던 일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제주로 온 12명의 도시 남자를 인터뷰했다. 그야말로 물러날 곳이 없기에 실패해서는 안 되는 남자들이었다.

시스템 엔지니어는 돌담 쌓는 기술자가 됐고, 해외영업 파트에서 일하던 직장인은 제주도에서 관광버스 기사로 살아간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영업관리 사원이던 남자는 중장비 4종 자격증을 따서 내려와 중장비 기사로 일하고 있다.

책에는 ‘세련된 사무직’ 남자들이 제주도에 정착하면서 겪었던 갖가지 시행착오, 지금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상세하게 실렸다. 저자가 오기 전에 했던 일과 제주도에 오기 위해 준비한 건 무엇인지, 지금 직업은 왜 선택했는지, 현재 수입은 과거와 비교해 어떤지, 그리고 제주에서 ‘가장’으로 사는 고단함, 그럼에도 제주가 좋은 이유까지 꼼꼼하게 인터뷰했다.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이야기 덕분에 지금 제주도의 산업 상황까지 알 수 있다. 가령 중장비 기사로 일하는 이주노씨는 제주도에 집과 건물이 계속 들어서고 있지만 건설 인력은 여전히 부족할 정도로 건설 경기가 호황이라거나, 인테리어와 보수공사, 벽화, 컬러리스트 수요가 매우 높아 미대생 벽화 그리기 아르바이트 보수도 짭짤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가 하면 여행작가 양성 학교를 운영하는 사진작가 이겸씨는 “교육 사업에 뛰어들려면 ‘흔하지 않으면서도 돈 내고서라도 꼭 배우고 싶은 아이템’ 찾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무료 강좌가 많은 제주도에서는 배우려는 수요가 서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층이 한정적이기에 비슷한 내용으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설명이 따른다.

귀농을 꿈꿨던 저자의 남편은 ‘다시는 식당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서울을 떠났지만, 갖가지 일을 전전한 끝에 결국 퓨전일식당을 열었다. ‘낭만의 섬’으로 정착하는 일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는 메시지를 따뜻한 방법으로 전하는 책이다.

책 속에는 깨알 같은 ‘제주 이민자’들의 팁도 실렸다. ‘제주도에서 운전 관련 일을 할 때 알아둘 것’부터 ‘제주도에 살면서 집 구하기’에 이르기까지, 몸으로 부딪쳐가며 얻은 노하우를 정리했다. 제주 정착의 꿈을 꾸는 도시인이 참고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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