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북한 군인에게 찜 쪄 먹힐 뻔한 사연

전수진 입력 2015. 8. 1. 00:02 수정 2015. 8. 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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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br>정치국제부문 기자

2004년 11월 금강산 여행 중 북한 군인이 내게 “에미나이를 찜 쪄 먹갔어”라고 했다. 그의 요청으로 노사연의 ‘만남’을 불렀을 뿐인데, 아무리 노래를 못했어도 그렇지 억울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는 자신이 상대보다 더 낫다고 생각할 때 쓰는, 욕설과 거리가 먼 평범한 표현이었다. 실향민 출신 외증조모도 즐겨 썼던 말이라는 걸 알고는 혼자 머쓱했다. 괜히 지레 겁을 먹고 외금강 절경도 제대로 못 봤으니 후회막심이다.

 외교·통일기자로서 북한 매체를 접하면 남북의 유사성보다는 차이점이 눈에 띈다. 남측의 오징어가 북측에선 낙지가 되고, 남쪽의 외래어 ‘데이터베이스’를 북쪽에선 ‘자료 기지’로, 스킨로션은 ‘살결물’로 부른다. 이런 창의적 표현에는 무릎을 치지만 최근 수위와 빈도가 부쩍 높아진 북한의 대남 비방을 보면 가슴을 치게 된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남측 국가원수를 향해 “입을 용접해 버려야 한다”(북한 전국연합근로단체 대변인)고 한 그 입부터 용접해 버리고 싶을 정도다. 시대착오적인 여성 비하 발언도 단골로 등장한다. 그나마 노동신문도 이젠 밑천이 떨어진 듯 “혀를 낼름거리는 독사” 정도만 되풀이하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문제는 북한의 이런 레토릭이 공감은커녕 남측의 피로감만 쌓는다는 점이다. 정부 일각에선 “북한의 비방을 받지 않은 당국자는 무능력자”라는 농담까지 나온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북한은 더 센 수위의 표현을 찾으며 스스로의 품격만 깎아내리고 있다.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가능하면 유머를 섞어 상대방을 제압하는 게 외교적 설전(舌戰)의 기본이다. 북한과 같은 듯 다른 길을 가는 이란은 세련된 싸움의 기술을 수차례 선보인 바 있는데 가장 최근엔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이 멋진 한 방을 날렸다. 이란 핵협상이 한창이던 지난 5월, 자신을 비난한 미국 공화당 의원에게 “지금 필요한 건 남자랍시고 으스대면서 남을 비방하는 게 아니라 신중한 외교”라며 그 의원에게 “최근 아들을 낳았다고 들었다. 축하하며 가족의 평화를 기원한다”고 했다. 욕설도 비방도 없었다. 이 설전의 완벽한 승자는 자리프 장관이다.

 보름 후면 분단된 지 70년이다. 남북이 총칼을 거두고, 설전도 그치는 날은 언제 오려나. 북한은 막말보다 자리프의 우아한 말솜씨를 배웠으면 한다. 나 또한 금강산에 다시 간다면 11년 전 그 북한 군인을 찾아 “내가 선생을 찜 쪄 먹겠어요”라고 복수(?)할 생각이다. 그전에 히든싱어·복면가왕을 보며 노래의 기술부터 갈고닦아야겠지만….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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