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기능식품 불편한 진실]'밥심' 못 믿어 쓴 돈 4조6300억.. 몸 좀 좋아졌습니까

박주연 기자 2015. 7. 3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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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연구들 종합 '메타분석' 결과 "시간·돈 낭비".. '영양제는 부작용 없다'는 상식도 깨져.. '무용론'에 힘 실려

“비타민C와 오메가3 주세요. 또 기력 회복에 좋은 다른 제품은 뭐가 있나요?”

직장인 김수미씨(43)는 지난해 초부터 미국 유명 브랜드의 건강기능식품 6가지를 먹고 있다. 40대에 들어선 뒤 부쩍 체력이 떨어지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제품 선택은 TV에 나오는 의사들의 추천과 홈쇼핑 광고를 참고했다. 김씨가 건강기능식품 6종류를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30만원이 넘는다. 1~3개월마다 구매해야 해 월급쟁이한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하지만 건강을 위한 투자이니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그의 믿음엔 변함이 없을까. 그는 “돈도 돈이지만 평생 이런 걸 먹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피로감이 사라진 느낌도 없다”면서 “지금은 그냥 의사들이 거짓말을 할 리 없다는 생각과 안 먹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 먹고 있다”고 말했다.

주부 곽정희씨(35)는 건강기능식품 애호가다. 자신은 오메가3와 비타민C를 먹고, 남편에게는 마늘즙과 비타민C, 자양강장제를 챙겨준다.

세 살 된 아들에겐 어린이용 종합비타민제와 유산균 제품, 오메가3를 먹인다. 곽씨는 “오메가3는 아이의 두뇌 발달에 좋다고 해서, 비타민C 보충제는 아이가 야채를 잘 안 먹어 영양분이 부족할 것 같아 먹인다”며 “비타민C는 수용성이라 어차피 소변으로 전부 빠져나가 많이 먹여도 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천문학적 규모의 건강기능식품 시장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3년 현재 시장규모(생산실적+수입실적-수출실적)가 1조7920억원으로 전년(1조7039억원) 대비 5.1% 커졌다고 밝혔다. 2009년(1조1600억원)과 비교하면 55%나 늘어난 수치다. 소비자 구매가로 따지면 시장규모는 이보다 훨씬 크다. 180여개 회원사를 둔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가 추산한 2013년 시장규모는 4조6300억원에 이른다. 이 협회가 지난해 서울 및 5대 광역시의 20~69세 남녀 1600만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6.7%가 2013년에 건강기능식품을 한 번 이상 구입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20대 미만과 70대 이상을 포함하면 국민 절반 이상이 건강기능식품을 먹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식약처 허가를 받은 건강기능식품 원료는 243종, 품목은 1만4282종이다. 건강기능식품 소매점은 10만개에 육박한다. 성미경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평균수명이 늘고 노년까지 건강하게 살려는 욕구가 커지면서 국민들이 건강기능식품을 지나치게 섭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 ‘메타분석’ 결과로 힘 실리는 ‘무용론’

시판 중인 합성 비타민제, 칼슘제 등 건강기능식품의 효능과 안전성은 믿을 만할까. 논란은 여전하다. 하지만 최근들어 의학계를 중심으로 효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부각되고 있다. ‘무용론’ 맨 앞줄에 선 명승권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암관리정책학과 교수는 “비타민C, 종합비타민제, 홍삼, 오메가3, 글루코사민, 프로바이오틱스 등은 99% 효과가 없다”고 단언한다.

건강기능식품 무용론자들은 국제적 권위의 의학 학술지들에 실린 ‘메타분석’ 결과를 강력한 근거로 제시한다. 메타분석은 의학계에서 신빙성이 가장 높은 연구방법으로 여긴다. 명 교수는 “지금까지 발표된 메타분석 결과로 볼 때 건강기능식품을 먹는 건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천연 항산화제와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채소를 많이 먹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혈관질환 발병률이 낮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이는 수많은 연구결과로 증명됐다. 그러나 합성 비타민 또는 합성 항산화제 효과는 임상시험마다 결과가 다르다. 2007년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실렸다. 종합비타민제에 든 베타카로틴, 비타민A, 비타민E가 건강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사망률을 높이며, 비타민C와 셀레늄은 사망률을 낮추지도 높이지도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16년간 발표된 68편의 임상시험(연구 대상자 23만명)을 메타분석한 결과였다. 박병주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자연식품을 섭취해 얻은 영양소들은 몸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이지만, 보충제들이 천연식품과 화학구조가 같다고 해서 효과까지 같다고 말할 순 없다”고 말했다. 원료 추출 과정에서 영양소가 파괴될 수도 있고 제품화 과정에서 투입되는 성분들로 인해 부작용이 유발될 가능성 등이 있다는 설명이다.

체내에 부족한 영양소를 채우기 위해 보충제를 투여하는 경우도 수치는 올라가지만 궁극적 효과를 가져오는지 알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오승원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가령 비타민D가 부족한 사람이 비타민D 보충제를 복용하면 수치는 올라간다. 하지만 비타민D 부족으로 생길 수 있는 골절 위험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영양제는 부작용이 없다는 믿음 역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과거엔 칼슘 보충제를 먹으면 골다공증과 골절이 덜 생기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칼슘제 섭취가 심혈관질환 발생률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오면서 ‘상식’이 흔들리고 있다.

■ “확실히 몸이 좋아졌다” 플라시보 효과?

비타민C 보충제나 홍삼 등을 먹은 후 몸이 좋아졌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건강기능식품 무용론을 주장하는 의학자들은 이를 “플라시보(위약) 효과”로 설명한다. 약효가 전혀 없는 거짓 약을 진짜 약으로 가장해 환자에게 복용케 했을 때 병이 나을 것이라는 환자의 긍정적 믿음 덕분에 실제로 병세가 호전되는 심리적 효과라는 것이다.

질병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의학계에선 위약으로 20~30%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2006년 의학학술지 ‘뉴잉글랜드 의학저널(NEJM)’에 이를 뒷받침하는 보고서가 실렸다. 하버드 의대 연구팀이 40여명의 천식 환자들을 상대로 위약과 실제 치료제의 효과를 비교한 연구결과였다. 천식환자에게 실제로 처방해주는 진짜 흡입제(알부테롤), 가짜 흡입제(위약), 가짜 침 치료를 차례로 받게 한 뒤 환자가 느끼는 증상척도(주관적 지표)와 폐기능 검사(객관적 지표)를 치료 전후에 각각 측정했다. 측정결과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 증상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진짜 흡입제를 썼을 때 증상이 50% 좋아졌다고 느꼈고, 가짜 흡입제나 가짜 침 치료를 했을 때에도 45% 좋아졌다고 느꼈다.

■ 한국인 식단, 보충제 필요할 만큼 부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식이보충제가 필요할 만큼 영양상태가 나쁜 걸까.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2013 국민건강통계-국민건강영양조사’를 보면 전통적으로 한국인에게 부족한 칼슘과 칼륨을 제외하면 그렇지 않다. 비타민A와 비타민B1(티아민), 비타민B2(리보플라민)는 음식을 통해 섭취한 양이 권장량을 초과하고 있다. 비타민C도 남자는 96.8%, 여자는 100.2% 섭취하고 있다. 다만 10~30대 젊은층의 비타민C 섭취는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승원 교수는 “만약 비타민C가 부족하면 과일과 채소를 조금 더 신경써서 먹으면 된다. 특정 비타민 보충제들이 과일과 채소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 메타분석(meta-analysis)같은 주제로 시행된 개별 임상시험 연구 결과들을 모아 통계적으로 종합분석해 그 결과를 수치로 제시하는 연구방법. 다른 결과가 나온 임상시험도 종합분석 대상에 포함된다. 의학계에서 가장 신빙성 높은 연구방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최근엔 임상시험뿐 아니라 개별 관찰연구들을 종합분석한 것도 메타분석이라 한다.
▲ 건강기능식품2002년 8월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공포로 공식화한 용어. 이 법이 시행되기 전엔 여러 기능식품이 건강보조식품, 건강식품, 기능식품 등 다양한 이름으로 판매됐다. 식약처에서 원료의 기능성과 안전성을 평가해 허가하며 제품 겉에 ‘건강기능식품’ 문구나 인증마크가 있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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