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의 설탕'보다 더 큰 문제는 말이죠

2015. 7. 3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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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음식문화 담당 박미향입니다. '친기자'에서 또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번처럼 '십상시 만두' 먹으러 중국집이라도 갔느냐고요?(<한겨레> 2014년 12월6일치 2면) 아닙니다. 요즘 방송계는 '쿡방'(요리하는 방송)이 대세인가 봅니다. 지금 쿡방계의 지존은 연륜 있는 셰프가 아니라 외식업체 대표인 '더 본 코리아'의 백종원씨입니다. 그가 진행하는 <집밥 백선생>은 시청률 6%대로 고공행진 중이고, 포털에는 그의 레시피가 범람합니다.

백종원, 확실히 매력남이지요. <집밥 백선생>에서 확신에 찬 어조로 요리 문외한들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면, 첫 데이트에서 여성들을 반하게 하는 남자 같습니다. 중년 남성들을 부엌으로 불러들이고, 요리는 쉽고 재밌는 것이라고 설파해 다양한 연령대의 팬을 확보했습니다. 그의 음식과 입담, 그와 관련한 논쟁들이 에스엔에스(SNS)에 도배되면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력으로 예능계를 평정해버렸습니다. 논쟁은 논쟁을 낳고, 이런 현상은 그의 인기를 유지시켜주는 단단한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설탕이 대표적이죠. 과거 설탕은 건강에 해롭다거나 미각을 해친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오죽하면 설탕 매출이 매실청 담그는 계절에만 반짝 올랐다가 추락한다는 설탕 제조업체들의 볼멘소리가 있을 정도였죠. 이제는 상황이 조금 달라지고 있습니다. 설탕을 많이 사용하는 인기남, '슈거보이'(Sugar Boy) 백종원씨 덕분이죠. 그는 과감하고 당당하게 설탕을 부어넣습니다. 된장찌개에도 부을 정도이니 그의 설탕 사랑은 알 만합니다. 논쟁이 과열되다 보니 설탕의 유해성을 주장하면 '반백파'(반백종원파)로, 옹호하면 '친백파'로 분류될 지경입니다.

설탕은 좋을까요? 나쁠까요? '엄마가 좋니, 아빠가 좋니?' 비슷한 질문입니다. 문제는 양입니다. 과잉 섭취가 우리 몸에 해로운 것이지, 체내에서 에너지원으로 바뀌는 설탕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맛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도 단맛은 중요합니다. <맛이란 무엇인가> 등을 펴낸 식품공학자 최낙언씨는 스트레스로 인한 과잉 섭취가 비만의 주범이지 설탕 때문이 아니라고 합니다. 요리는 창조의 영역입니다. 조리하는 이가 적당히 조절해 넣으면 그만인 걸 두고, 백종원씨와 연결시켜 논쟁을 벌이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백종원씨는 살아온 대로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뿐입니다. 그는 자신의 책 <돈 버는 식당, 비법은 있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음식점의 음식과 집에서 만드는 음식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양념의 과감한 가감에 있다. 즉, 음식점 음식은 약간은 자극적이라는 것이다. 음식이 맵거나 짜거나 달다고 말이 나오는 것은 오히려 괜찮다. 단, 싱거운 것이 문제다. 양념이 싱거우면 음식이 싱겁다는 것보다 먼저 맛이 없다고 느낀다." 그는 강한 양념으로 성공한 외식사업가입니다. 그렇다고 그를 모질게 탓할 이유는 없습니다. 자신의 방법을 소신껏 보여주었고, 특유의 매력과 결합해 인기를 얻었을 뿐이니까요. 오히려 눈여겨서 봐야 할 것은 백 선생이 사용하는 무수한 조연들입니다. 무대에는 엄청난 제품들이 깔려 있습니다, 상표가 그대로 드러난 채 클로즈업되어 방송됩니다.

피피엘(PPL·간접광고)이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요리프로그램에서 이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난 적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테이프를 붙여 상표를 가리거나 아예 그릇에 재료를 부어 노출하지 않는 식의 센스를 발휘했죠. <집밥 백선생>은 씨제이이앤엠(CJ E&M)이 운영하는 채널 티브이엔에서 방송됩니다. 씨제이이앤엠은 씨제이제일제당의 계열사입니다. 거대 식품회사가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거느리며 스타를 제조하면서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미처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식탁이 타인의 전략적 작전에 조금씩 말려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분 말입니다. 백종원씨도 덕을 봤습니다. 최근 그의 얼굴을 큼지막하게 단 간판을 내세운 '빽다방'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설탕은 1953년 지금 씨제이제일제당의 전신인 제일제당이 대량생산하면서부터 이 땅에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국내 조리 관련 고서적인 <음식디미방>이나 <산가요록>을 살펴보면, 주로 참기름이나 간장 등이 양념이었습니다. 약과나 다식 정도에 꿀이 사용된 것으로 기록되었고요. 한식의 원형에는 단맛이 적다는 얘기입니다. 설탕 논쟁은 이제 충분히 했으니, 피피엘 논쟁 한번 진지하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

박미향 문화부 esc팀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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