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깊이보기] 새 지도자 추대한 탈레반의 앞날은

남지원 기자 2015. 7. 3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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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지도자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가 2년 전 사망했다는 것을 인정한 탈레반이 새 지도자로 조직의 2인자였던 물라 아크타르 모하마드 만수르를 추대했다. 후계자 선정까지 상당한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됐지만, 탈레반 지도부는 회의에 돌입한 지 사흘 만에 새 지도자를 지명했다.

과거 BBC 카메라에 포착된 물라 오마르의 생전 모습

■‘리더십 위기’ 빠진 탈레반 어디로 갈까

만수르는 오마르 생전 탈레반의 2인자였다. 비교적 유명하지는 않은 인물이지만, 탈레반 창립멤버 중 한 사람이고 오마르의 측근이었다. 그는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할 때 항공부 장관을 지냈고, 미국이 침공한 후 다른 많은 지도자들처럼 파키스탄으로 달아났다. 2010년 오마르의 대리인으로 임명됐으며 최근 수년간 탈레반 지도부인 퀘타 슈라를 이끌어왔다. 오마르처럼 정확한 출생시기나 가족관계 등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탈레반 내부에서도 실용주의자, 온건파로 분류되며 아프간 정부와의 평화협상에도 적극적이다.

만수르의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다. 오마르는 단순한 정치적·군사적 지도자가 아니라 탈레반의 정신적 지주이자 종교적 지도자였다. 탈레반 조직원들뿐만 아니라 파키스탄탈레반(TPP), 알카에다,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등 이웃나라 무장단체들도 오마르를 존경했다. 2001년 아프간 수도 카불을 빼앗기고 지도부가 모두 도피한 뒤에도 탈레반이 무너지지 않은 것은 상당부분 오마르의 카리스마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만수르에게 동일한 존경을 표시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미 승계를 둘러싸고 탈레반 조직의 분열상이 노출되고 있다. 탈레반 내 대표적인 만수르 반대파는 헬만드 지역을 권력기반으로 하는 고위 지휘관 물라 압둘 카윰 자키르다. 자키르는 오마르의 장남인 무하마드 야쿠브를 새 지도자로 추대하려 했다. 가디언은 “새 지도자를 선정하는 회의에서 야쿠브가 화가 나서 회의장을 박차고 나섰다”고 전했다. 앞으로도 자키르와 야쿠브는 만수르를 상대로 치열한 권력투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금은 평화협상 국면이다. 탈레반 내부는 평화협상을 둘러싸고 이미 사분오열돼 있었다. 상당수 지휘관들이 “협상보다는 전투를 통해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반대 목소리가 거셌던 탓이다. 탈레반보다 더욱 잔혹하고 더욱 근본주의적인 성향의 이슬람국가(IS)로 넘어간 강경파들도 있다. 영적 지도자 오마르가 죽은 이 마당에 승계와 평화협상을 둘러싸고 탈레반이 사분오열되면 조직 전체가 큰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탈레반이 흔들리면 반사이익을 보는 것은 IS가 될 가능성이 크다. IS는 이미 아프간에서 기약없는 싸움에 지친 탈레반 조직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지난 4월 아프간 서부 도시 잘랄라바드에서는 IS 소행으로 추정되는 테러가 발생해 수십명이 숨졌다. 아프간 정부 수석고문관 오마르 사마드는 “탈레반의 일부 조직원들이 이미 IS에 충성맹세를 하고 있는데, 오마르가 없어졌기 때문에 더 많은 조직원들이 IS에 가담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칫 IS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이 이라크나 시리아처럼 변할 수도 있는 셈이다. 지난해부터 진행중인 미군의 아프간 완전철군 계획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평화협상은 어디로 갈까

뉴욕타임스는 “진짜 문제는 탈레반 와해가 아니라 평화협상 와해”라고 진단했다. 31일로 예정됐던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2차 평화회담은 무기한 연기됐다. 앞서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은 지난 7일 파키스탄 휴양도시 무리에서 파키스탄 정부의 중재로 첫 평화회담을 했다. 양측이 평화공존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이후 14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 회담 후 탈레반은 오마르 명의로 평화협상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이 성명은 탈레반 내부 평화협상 불만세력을 다독이는 데 주효했다.

하지만 평화협상이 시작되자마자 오마르 사망이 확인되면서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오마르가 2년 전 사망했다면 지난달 성명은 탈레반 지도부가 오마르의 권위를 빌려 평화협상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한 것이 된다. 평화협상이 일정부분 정당성을 잃고, 평화협상에 반대하는 세력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아프가니스탄 정치평론가 하룬 미르는 워싱턴포스트에 “탈레반은 더욱 쪼개질 것이고 아프간 정부는 누구와 협상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새 지도자 만수르의 실용주의적 성향으로 오히려 평화협상이 탄력을 받을 거라는 시각도 있다. 알자지라는 “회담이 연기됐지만 만수르가 협상에 적극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아프간 정부는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보고 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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