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에서 돌아오는 길, 조카의 가능성을 보다

정대희 2015. 7. 31.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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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와 떠난 여행④ - 다시 부산으로] 4박 5일간의 여행, 끝을 향해

[오마이뉴스 정대희 기자]

조카와 4박 5일(7월 22일~26일)간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15년 전 조카 녀석이 태어날 때, 지금 이 순간이 오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다행히 조카는 무럭무럭 잘 자라 어느새 삼촌만큼 키가 커버렸습니다. 때가 되었으니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났습니다. 서울 촌놈과 시골 촌놈이 함께한 배낭여행기입니다. -기자 말-

▲ 물 위를 달리는 여객선 대마도와 부산을 오가는 여객선. 부산을 떠나 대마도로 입항할 때도, 정반대로 대마도를 떠나 부산으로 입항할 때도 탄 배다.
ⓒ 정대희
또다시 짐을 쌌습니다. 여행이란 게 이렇습니다. 짐을 풀고 싸는 행위의 반복입니다. 배낭을 채울수록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도 커집니다. 그래서 여행할 때는 짐을 가볍게 싸야 하나 봅니다. 짐 꾸리는 게 일이 안 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단출하게 떠나야 합니다.

첫 배낭여행을 떠난 조카 녀석이 이런 여행 팁을 알 수는 없죠. 그렇게 짐을 "최대한 적게 싸서 와"라고 했는데, 가방이 '빵빵'합니다. 4박 5일간의 일정에 4벌의 옷을 싸서 왔으니 당연히 '빵빵'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배낭을 짊어지고 꽤 걸어야 할 것 같은데, 조카 녀석이 잘 견딜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푹푹 찌는 날씨... 빵빵한 가방 멘 조카는 "헉헉"

▲ 맑은 날, 해맑은 표정 대마도 이즈하라의 누문. 이곳을 통과해 걸어올라가면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가 세워진 곳에 닫게 된다.
ⓒ 정대희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2박 3일간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25일 오후 다시 부산으로 되돌아갑니다. 대마도를 떠난다는 아쉬운 마음에 아침부터 조카 녀석과 게스트하우스를 떠나 이즈하라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푹푹 찌는 날씨가 발걸음을 더디게 합니다. 이즈하라에 온다면, 누구나 한 번쯤 먹어본다는 그 햄버거 가게에서 요기를 채우고 나왔는데, 벌써 허기가 느껴집니다. 겨우 한 시간 남짓 지났는데 말이죠.

배가 두둑할 땐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대마도 역사민속자료관에 들러 이런저런 전시품을 둘러보고 가네이시성터로 향하는 누문을 지나 '이 왕조 종가결혼봉축기념비(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에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기념비 앞에서 조카 녀석은 "기념비 주변에 무궁화 꽃은 누가 심었을까"라고 질문도 던졌습니다.

하지만 반쇼인(대마도 지배세력인 소씨가문의 묘원)의 132개에 달하는 계단을 오르면서 기력이 쇠하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덥고 찌는 날씨에 땀을 비 오듯 쏟아냈는데, 그때 '밥심'도 몸에서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조카 녀석도 혀를 내밀고 낑낑거립니다. 매표소에서 배낭을 맡아주겠다고 한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조카 녀석은 유독 땀이 많았습니다. 머리가 금세 축축하게 젖었습니다. 손으로 털어내며, 말려보나 그때뿐입니다. 어깨에 멘 배낭도 무거운지 자꾸만 앉을 궁리만 합니다. 내색하진 않지만, 얼굴에 힘든 기색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때마침 "벌써 배고프다"란 말이 제 입에서 자꾸 흘러나왔습니다.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이즈하라 도심을 관통하는 수로 옆 작은 식당 문을 열었습니다. 시원한 공기가 뺨에 온몸에 와 닿습니다. 조카 녀석의 안경에는 뿌옇게 서리가 낍니다.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사진기 꺼내 든 조카 "삼촌, 대마도서 일들이 머릿속에 스쳐"

▲ 키작은 문 대마도 이즈하라의 어느 골목길에서 마주한 키 작은 문. 삼촌은 어린 아이가 된 것처럼 무릎을 구부렸다. 이게 다 한적한 풍경 때문이다.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 정대희
주문한 우동이 나왔습니다. 조카 녀석이 밥상머리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오늘에서야 자신만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부산에서도 대마도에 온 첫날도 삼촌이 사진을 찍을 때마다 늘 구경만 하더니 오늘은 직접 사진을 찍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자기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것일까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흐뭇합니다.

물론, 아직 녀석이 찍은 사진은 엉망진창입니다. 찍은 사진이 보이는 만큼 잘 나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고 자책도 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찍고, 또 찍습니다. 게임을 하는 것 빼고는 기계를 다루는 게 영 젬병인 녀석인데, 기특합니다.

시골 촌놈인 삼촌만큼의 감성은 아니지만 서울 촌놈도 드디어 감성이 돋기 시작한 것일까요? 문득, 골목길을 거닐다 조카 녀석이 "삼촌 갑자기 대마도서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에 스쳐. 떠날 때가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아쉽다"며 뜬금없이 감성 돋는 말을 내뱉기도 합니다. 푹푹 찌는 날씨에 힘은 들었지만, 유적지를 가고 골목길을 둘러보길 잘한 듯합니다.

점심 무렵이 지나자 날씨가 더 가혹해졌습니다. "서울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다"는 누나(조카 녀석의 엄마)의 한국 날씨 소식이 부럽기만 합니다. 살기 위해 카페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이즈하라에서 유일하게 본 카페입니다. 히타카츠에서처럼 한국인들로 북적거립니다. 더위를 식혀줄 차가운 음료를 조카 녀석이 주문했습니다.

'쫌생이' 조카 녀석, 알고 보니 '헤픈 놈'

▲ 고장난 오토바이 위에서 대마도 이즈하라의 한 골목에 있던 고장난 오토바이 위에서 조카 녀석이 폭주족(?)이 된 것 마냥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정대희
사실, 조카 녀석이 적극적으로 변하면서 혜택을 누린 것은 저입니다. 식당에 가서 주문할 필요도 계산해야 할 귀찮은 일들이 줄어들었습니다. 조카 녀석이 알아서 다 해주니 편안하게 먹고 마시면 됐습니다. 다만, 돈 계산할 때마다 "이제 얼마밖에 안 남았어"라고 반복하는 쫌생이 조카 녀석의 한탄(?)만 들어주면 됐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쫌생이'같은 모습도 조카의 변화 중 하나였습니다. 누나(조카 녀석이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는 의외였습니다. 조카 녀석은 돈만 손에 쥐면 그대로 써버리는 '헤픈 놈'이었다고 합니다. 조카 녀석이 달라 보였습니다.

예정된 시간대로 이즈하라 항에서 배가 출항했습니다. 이젠 다시 부산으로 돌아갑니다. 아쉬운 마음에 여객선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대마도를 바라보며, 조카 녀석과 함께 2박 3일간 여행을 돌이켜봤습니다.

다시 부산입니다. 떠날 때처럼 돌아올 때도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가 가장 먼저 반깁니다. 숙소도 여행 첫날 묵은 게스트하우스로 예약했습니다. 달라진 것은 조카 녀석의 행동입니다. 숙박 집 주인 앞에서 우물 쭈물거리던 녀석이 대마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땐, 적극적으로 여행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변한 조카의 모습에 숙박 집 주인도 "뭔가 달라졌어요"라고 의아해했습니다. 돌아오는 여객선 안에서 "조카야, 다음에 대마도로 가족여행 오면 네가 안내할 수 있겠느냐"하고 물었더니 "그럼 물론이지,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라고 대답한 의기양양했던 모습도 귀띔을 해줬습니다.

하루 전만 해도 "내가 어떻게 해"라며, 꽁무니를 빼던 녀석이었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집주인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신기해합니다. 저도 불과 며칠 만에 변한 조카 녀석이 신기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 여행의 끝을 향해... 4박 5일간 배낭여행의 마지막 여행지는 부산 감천문화마을이었다.
ⓒ 정대희
오늘 밤,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카 녀석은 도미토리 방에 머물렀고 저는 투숙객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거실에 머물렀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아마도 조카 녀석은 게임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 게임이냐"고 타박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알아서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줄 아는 녀석이 되었으니까요.

물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여행이 조카 녀석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지는 않는다는 것을. 다시 또, 시간이 흐르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긴 배낭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러니 어찌 이토록 짧은 여행 한 번으로 조카 녀석의 모든 게 한 번에 바뀌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또 압니다. 이 여행이 녀석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작은 씨앗을 품게 했다는 것을. 언젠가 그 씨앗이 자라 가지를 뻗고 열매가 열리리라는 것을. 그게 무엇이든 이 조카 녀석이 '용기와 도전'이 필요할 때, 이 여행이 그 두려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을. 홀로 긴 배낭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젠 온전히 녀석의 몫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조카 녀석이 지금보다 더 멋있고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조카 녀석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길 바라며, 조카와 떠난 여행기를 끝마칩니다. 고맙습니다.
▲ 부산 감천문화마을에서 마지막 여행지 부산 감천문화마을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는 조카 녀석
ⓒ 정대희
조카의 일기
오늘은 대마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아쉽다. 그래도 남은 일정을 즐겨야지. 아침에 숙소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었다. 주문하고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앞 옆 테이블에 엄청나게 예쁜 여자애가 앉아 있었다. 매우 예뻐서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어휴~ 아직도 기억나네.

암튼 밥을 먹고 어제 가보지 못한 유명한 곳들에 갔다. 일본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발전을 많이 한 나라 같았다. 옛것을 보전하면서 도시를 건설하는 게, 우리나라와는 달랐다.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3일 만에 온 게스트하우스에는 독일 인형과 한국인 형이 다른 곳으로 떠난 후였다. 그래도 미국인 2명이 왔으니, 잘해보고 싶다.

오늘의 느낌 : 아름다웠던 대마도 안녕. 다음에 보자. 여행의 마지막 밤. 끝까지 재밌게 지내고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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