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최국 팬 열 받게 만드는 묘한 대회, 동아시안컵

김태석 2015. 7. 3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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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 김태석의 축구 한잔

개인적으로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동아시안컵은 월드컵 만큼이나 각별한 대회다. 국제 대회 취재라는 걸 처음으로 경험한 계기였고, 운 좋게도 세 번 연속 현장에서 대회를 지켜볼 수 있었다. 비록 찜통 같다는 중국 우한(武漢)에서 벌어지는 이번 대회를 현장에서 볼 수 없어 아쉽긴 해도, 이 대회가 어떤 성격을 지니고 팬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끌어내는지 잘 알고 있다.

동아시안컵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라이벌전 시리즈다. 한 번 그르치면, 팀 분위기가 자칫 손쓸 수 없는 지경에 놓이게 된다. 특히 안방에서 라이벌전을 연거푸 맞이하게 되는 개최국이 받는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가장 최근 세 대회에서 개최국이 곤혹스런 상황에 처했던 현장 얘기를 전하고자 한다. 동아시아 국가 간 친선을 도모하고 국가대표팀 전력 강화를 위한 실험의 장이라는 개념에서 접근해야 하는 대회이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 2008년 중국 대회: 절망과 분노에 휩싸인 중국 관중

중국 충칭(重慶)에서 열린 2008년 대회는 중국인들의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가중시켰다. 이 대회에서 중국은 3전 1승 2패로 3위에 머물렀다. 객관적 전력상 한국·일본에 뒤진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세 경기 모두 중국 팬들의 속을 긁어 놓았다. 첫 경기 한국전에서는 한때 2-1로 앞서가는 경기를 연출하다 박주영의 그림 같은 프리킥과 곽태휘의 강력한 왼발 슈팅에 연거푸 골문을 열어 주며 2-3으로 역전패당했다. 두 번째 일본전에서는 거친 몸싸움을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맞붙었으나 야마세 고지에게 내준 선제 실점을 만회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중국 팬들은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 상대 한국엔 나름 선전했다고 자위하는 모습이었지만, 두 번째 일본전 이후에는 억눌렀던 불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본디 중국은 일본전에서는 팽팽한 호각세를 보인 데다 멤버 구성상 정예와 2군의 대결이었다는 점이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는 하필 경기가 벌어지는 시점이 2008년 중국 농약 만두 파동이 터진 직후라, 양국 간 국민 감정이 최악으로 치달을 때였다. 이 때문에 한국 취재진 사이에서는 두 팀의 대결을 두고 '만두 더비'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경기에서 0-1로 패하자, 중국 팬들은 대표팀 버스를 막고 시위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성난 군중의 목소리는 곧바로 열린 한국과 북한의 맞대결이 벌어지는 경기장 안까지 들릴 정도로 거셌다.

심적 부담에 짓눌린 중국은 마지막 북한전에서 3-1로 이기며 체면치레했지만, 역시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못했다. 북한 공격수 정대세가 심판을 손가락질하며 웃는 장면도 나왔을 정도로 노골적이다시피 한 홈 어드밴티지에 의한 승리였기 때문이다.

▲ 2010년 일본 대회: 오카다 재팬의 수모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벌어져 한국과 일본이 국내파 선수들의 기량 점검에 모든 집중력을 쏟은 대회였다. 공히 실험에 주력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팬들, 특히 안방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일본팬들의 반응은 매우 나빴다. 대회에 참가한 최약체 홍콩전은 논외로 치는 분위기였다. 실질적으로는 한국, 중국, 일본의 삼국지와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는데, 일본은 이 중에서 가장 허약한 모습을 보였다.

첫판 중국전에서 무기력하게 0-0 무승부를 거두더니, 두 번째 홍콩전에서는 한국(5-0승)보다 적은 3골 차 승리에 그쳤다. 그리고 일본 축구 성지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한국전에서는 툴리오 다나카가 퇴장당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다 1-3으로 완패하고 말았다. 당시 일본 팬들은 한국전에서 정말 패하길 바랐다. 한국에 짐으로써 오카다 감독을 경질할 빌미로 삼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는데, 정말로 졌다.

일본은 이 대회에서 1승 1무 1패 전적으로 3위에 그쳤고, 홈팬들의 시위가 빗발쳤다. 아예 한국전에서 질 거라고 예상했다는 듯 "오카다 불합격. 결단하라, 축구협회(岡田不合格 決断協会)"라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대회가 끝난 후에는 팬들의 항의 전화로 일본축구협회가 곤혹스런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당시 오카다 다케시 일본 감독은 이때 정말 경질될 뻔했다. 그 정도로 최악의 분위기였다.

2013년 한국 대회: 성지에서 당한 쓰라린 패배

홍명보호가 출전했던 2013년 대회 역시 동아시안컵 개최국 수난사에 포함된다. 최강희 감독이 물러나고 위기의 대표팀을 수습하겠다는 일성으로 지휘봉을 잡은 홍 감독은 K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을 중심으로 동아시안컵에 출전했다. 그런데 세 차례 경기에서 2무 1패라는 좋지 못한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호주와 중국을 연거푸 상대한 처음 두 경기에서는 아무리 두들겨도 골문이 열리지 않는 실로 이상한 경기를 펼쳤다. 경기를 주도하고도 골 결정력 부재로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연이어 놓친 것이다. 그리고 일본을 상대한 세 번째 대결에서 1-2로 패한 것이다. 2011년 8월 삿포로에서 경험한 참패 이후 2년 만에 A대표팀 간 맞대결이었기에 복수전을 펼쳐야 한다는 열망이 드높았던 데다, 경기 장소가 한국 축구 성지라 불리는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이었기에 대단히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그런데 역시 경기를 주도하고도 골 결정력 부재 때문에 1-2로 분패했다. 그나마 다행스런 점은 홍명보호는 갓 출범한 대표팀이었기에 앞서 언급한 중국과 일본에 비해 홈팬들의 비판에서 다소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만 경기 외적 이슈 때문에 대회가 끝난 후 대단히 시끄러웠다. 한 일본 팬이 전범기를 휘날리는 일이 빚어졌다. 한국 국가대표팀 서포터스 붉은 악마는 안중근 의사와 이순신 장군이 그려진 대형 통천을 걸다 정치적 퍼포먼스를 금지한다는 주최 측의 저지에 아예 응원을 포기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 때문에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벌어지는 한·일전에서 오로지 일본 서포터스의 응원만 들리는 기묘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말 많고 잡음이 많았던 건 한국 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뜻이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사진=베스트 일레븐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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