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에 업고 '막가는' 아베.. 지지율 급락

전혜원 기자 2015. 7. 31. 10:2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이 7월16일 중의원(하원) 본회의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안보 관련 법안 11개를 강행 처리했다. 야당 의원들이 퇴장한 상황에서다. 법안이 최종 통과되면 동맹국이 공격받은 경우 자위대가 무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집단적 자위권). 자위대의 해외 활동 범위도 사실상 무제한으로 확대된다. 과거에 이뤄진 자위대 국외 파견이 제한적인 수준이라면, 집단적 자위권 법제화는 그 수준을 벗어난다. 일본 자위대의 성격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만에 가장 크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원래 아베 총리의 정치적 신념은 개헌이다. 1947년부터 시행된 일본 헌법 제9조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구히 포기한다'라고 규정했다.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이 헌법은 전쟁을 일으킨 데 대한 속죄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이를 개정해서 일본이 외국처럼 군대를 보유하고 무력을 행사하는 '보통 국가'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아베의 숙원이었다. 하지만 개헌은 의회 양원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고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넘어야 할 벽이 만만치 않다. 아베 총리의 오랜 믿음과 달리 여론은 개헌에 신중하다.

2012년 12월 재집권한 아베 총리는 우회로를 택했다. 지난해 7월, 아베 내각은 각의(국무회의) 결정으로 헌법 해석을 변경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허용되지 않는다'라는, 1972년 이래 40년 넘게 유지돼온 정부 견해를 '집단적 자위권은 허용된다'로 바꿨다. 같은 정부 견해 중에서 '필요 최소한도의 자위권 행사는 헌법상 인정된다'고 한 부분을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근거로 확대 해석했다.

이번에 중의원을 통과한 법안은 이 방침을 반영한 후속 조치에 가깝다. 표결을 앞둔 참의원(상원) 역시 자민당-공명당 연립 여당이 다수다. 중의원보다는 쉽지 않지만, 이변이 없는 한 큰 수정 없이 통과될 거라는 전망이 많다. 이를 두고 미국 <뉴욕 타임스>는 7월20일자 사설에서 '민주적 지도자는 주요 정책 계획을 지지하도록 유권자를 설득하고, 변화가 널리 수용되도록 절차를 따를 때 더 성공적이다. 아베 총리의 전략은 정석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사실상의 '해석 개헌'은 역풍을 불렀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인 6월4일 열린 중의원 헌법심사회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한 헌법학자 3명 전원이 '법안은 위헌'이라고 지적하면서 법안의 정당성에 큰 타격을 받았다. 자민당이 추천한 하세베 야스오 교수(와세다 대학)조차 위헌 의견을 밝힌 게 자민당으로서는 특히 뼈아픈 대목이다. '안전보장 관련 법안에 반대하는 학자의 모임'에는 연구자 1만2000여 명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 마스카와 도시히데 씨도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일 헌법학자 '한국인들이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은…' 참조).

분노하는 건 학자만이 아니다. 법안이 중의원 소위를 통과한 7월15일 도쿄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시민 6만명(주최 측 발표)이 항의 집회를 열었다. 전국 각지에서 수천, 수만명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아베 정치를 용서하지 않는다'라고 붓글씨로 쓴 포스터를 준비해서 들었다. 이 구호는 안보 법안 반대 시위의 상징이 됐다. 특히 젊은 층의 참여가 눈에 띈다고 일본 언론은 보도했다( '민주주의란 이것이다'외치는 일본 청년들 기사). 아베 내각 지지율은 40% 아래로 급락했다.

일본의 더 큰 군사적 역할 바라온 미국

사정이 이런데도 아베 정권이 법안을 밀어붙이는 데는 국제정치의 방정식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우선 미국이 지지한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7월16일 자위대가 해외 전투에 개입할 권한을 주는 이번 법안이 '펜타곤(미국 국방부)이 수년간 원해온 것이며, 미국 방위산업체에 굉장히 좋은 뉴스다'라고 썼다.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정책을 내세워 중국 견제에 나선 미국은 일본이 미국의 대리자로서 더 큰 군사적 역할을 해주기를 수년 전부터 바랐다.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확대해 '보통 국가'로 돌아가려는 일본과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일본은 동중국해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두고 중국과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월 아베 총리의 방미는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지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다. 방미 기간에 미국과 일본 정부는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18년 만에 개정하는 데 합의했다. 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군사 협력 지역을 종전의 '일본 주변'에서 '전 세계'로 넓힌 게 핵심이다. 미국을 겨냥한 탄도미사일을 자위대가 요격할 수 있는 등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방침도 담겼다. 또 '필요할 경우 섬 탈환 작전을 실시하며 미군은 자위대를 지원한다'는, 사실상 센카쿠 열도 문제를 겨냥한 내용이 포함됐다. 합의 뒤 미국 의회 연설에서 아베 총리는 올여름까지 안보 관련 법안을 정비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직 법안이 제출되지도 않은 단계에 합의를 하고 약속까지 한 것이다.

법안은 일단 중의원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 화춘잉 대변인은 '전후 역사상 유례가 없는 행동이다. 중국의 주권과 안보 이익을 훼손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말라'라며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한국 외교부는 다소 유보적인 공식 의견을 냈다. 법안이 강행 처리된 7월16일 유창호 외교부 공보담당관은 '한반도 안보, 우리의 국익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사항은 우리의 요청 또는 동의가 없는 한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확고하고 일관된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동맹국인 미국이 지지하는 법안이지만,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역할이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안은 참의원(상원)으로 갔다. 일본법상 60일 이내에 참의원이 가결하지 않으면 중의원이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재가결할 수 있다. 그러면 법안이 최종 통과된다. 이번 일본 정기국회는 9월27일 끝난다. 일본 언론 다수는 헌법과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점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가 필요하다면, 국민에게 설명하고 국민투표를 포함한 헌법 개정 수속을 밟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로서 피해 지나갈 수 없는 절차다. 이것을 무시하면 법치국가의 기반이 무너진다.'(<아사히 신문> 7월16일자 사설)

절차뿐 아니라 내용도 비판받는다. 아베 내각이 지난해 7월 각의에서 결정한 '집단적 자위권 사용 시 무력행사의 신 3요건'(△가까운 나라가 공격당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을 때 △다른 수단이 없을 때 △필요 최소한도의 실력 행사에 그친다)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넓어 자위대와 일본 국민의 위험이 오히려 커질 것이라는 우려다. 인구 감소에 따른 '징병제 전환' 가능성도 시민들의 불안감을 더한다.

이번 강행 처리 과정을 보면서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1960년 기시 전 총리가 추진한) 미·일 안보조약의 개정 필요성을 일본인 다수가 받아들이는 데 25년에서 30년이 걸렸다'라며 대중이 궁극적으로는 안보 관련 법안을 지지할 거라는 믿음을 <이코노미스트>에 드러냈다. 자위대가 냉전에 깊이 관여할 수 있게 하는 방향의 미·일 안보조약 개정은 기시 노부스케 총리 때도 야당 없이 집권 여당이 강행 처리했다. 시민들이 격렬히 반대하고 도쿄 대학 학생 간바 미치코 씨가 사망했다. 이 때문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일이 취소되기도 했다. 기시 내각은 개정 강행 두 달 만에 총사퇴했다.

평화헌법에서 '집단 자위권' 법안까지

1947년 5월

일본 헌법 시행(헌법 제9조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구히 포기한다')

1950년 8월

경찰예비대(자위대의 전신) 설치

1954년 7월

자위대 발족·방위청 설립

1960년 6월

기시 노부스케(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 당시 총리, 주일 미군이 공격받으면 자위대가 관여할 수 있는 내용 포함한 미·일 안보조약 개정. 일본 시민 '안보투쟁'으로 저항

2006년 9월

아베 총리, 집권(헌법 해석 변경 및 개헌 의사 표명)

2012년 12월

아베 총리, 재집권

2014년 7월1일

아베 내각,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 방침 각의 결정(헌법 해석 변경)

2015년 4월

미국·일본 정부, 새로운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채택. 아베 총리, 미국 의회 연설에서 안보 관련 법안들 여름까지 정비 약속

5월15일

아베 내각, 집단 자위권 용인 결정을 반영한 11개 안보 법률 제·개정안 각의 결정

6월4일

중의원 헌법심사회에서 헌법학자 3명 전원 집단 자위권 법안 위헌 표명

7월15일

연립 여당, 집단 자위권 법안 중의원 특별위원회(소위)에서 강행 처리

7월16일

연립 여당, 집단 자위권 법안 중의원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

전혜원 기자 / woni@sisain.co.kr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Live - [ 시사IN 구독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