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은 무슨 뜻일까

고제규·김은지·김연희·신한슬·이상원 기자 2015. 7. 3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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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한 임 아무개 국정원 직원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다. 아내, 두 딸과 함께 온 가족이 집 근처 교회에 다녔다. 그는 집사를 맡아 교회 활동도 열심히 했다. 한 교인은 '교회를 오래 다녀 임 집사가 국정원 직원인 줄은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자살 소식을 듣고 가장 의아해하는 이들이 바로 이 교회 교인들이다. 독실한 신자들 사이에서 자살은 가장 금기시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교인은 '금기시하는 자살을 한 데는,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이유가 뭔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만 한다'라고 말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원인으로 가장 먼저 국정원 감찰설이 꼽혔다. 국정원 감찰은 검찰 수사보다 더 철저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조사실로 불리는 취조실에서 강도 높은 감찰을 받는다. 7월19일 국정원 출신이자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은 '사람들이 (임씨에게) '어떻게 했느냐' 묻고 감찰도 들어오고 하니까 많은 압박을 느낀 것 같다'라고 밝혔다. 파문이 일자, 이 의원은 '(감찰실은) 전화로 몇 마디 물어본 것밖에 없다더라'며 부인했다. 국정원도 임 직원이 사건 초기부터 대응 보고서를 쓰느라 그를 감찰할 시간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정원 감찰실이 움직였다는 게 정설이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The 5163 Army'라고 찍힌 계약서가 언론에 보도되는 상황에서 감찰실이 팔짱 끼고 있지는 않는다. 감찰실이 상황 파악에 들어간 것은 맞다'라고 말했다. 감찰을 했든, 감찰이 임박했든 임 직원이 자료를 삭제한 게 부담이 되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해킹팀 계약서에 찍힌 두 개의 국정원 직인

그런데 <시사IN>은 임 직원이 유서에서 밝힌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았다. 바로 계약서에 찍힌 국정원 직인이다. 유출된 국정원과 이탈리아 해킹팀이 주고받은 계약서에는 두 종류의 직인이 찍혀 있다. 빨간색으로 된 '제5163부대장인'이라는 한글 직인과 파란색으로 된 'The 5163 Army Div. The Government of ROK(아래 왼쪽 사진)'라는 영문 직인이다.

<시사IN>은 탐문 취재 끝에 해킹팀과 국정원 계약을 중개한 ㄴ사 근처 한 도장집에서 영문 직인의 필름 도안을 찾았다. 계약서에 쓰인 직인과 똑같았다. 이 내용을 지난 7월23일 온라인을 통해 '해킹팀 계약서에 찍힌 국정원 도장의 비밀'이라고 보도했다. 이 기사를 본 사정기관의 관계자는 '영문 직인뿐 아니라 빨간색 한글 직인도 공식 직인이 아닌 것 같다. 국정원 직인은 외부로 나갈 때 쓰임새를 까다롭게 검증한다'라고 말했다. 임 직원이 국정원 내부에 계약서 존재를 알리지 않고 '업무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임의로 도장을 찍어 보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유출된 해킹팀 이메일을 보면, 2014년 2월4일 ㄴ사 허 아무개 대표는 '또 다른 고객이 관심을 나타냈는데, 현재 쓰고 있는 고객(국정원)의 다른 부서이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안의 다른 부서와 계약을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계약은 성사되지 못했다. 해킹팀 본사가 최종 사용자가 정부 기구임을 입증하는 자료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국정원 내 또 다른 '고객'은 계약서 등이 나중에 국정원이 드러나는 빌미가 될까 봐 계약을 포기했다.

2012년 1월 첫 계약 때부터 임 직원이 속한 부서도 국정원이 드러날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ㄴ사를 전면에 내세우려 했다. 해킹팀은 이때도 민간에 RCS를 판매할 수 없다며 정부 기구가 최종 사용자라는 걸 입증하는 서류를 요청했다. 이번에 유출된 계약서가 그것이다.

임 직원은 ㄴ사 허 아무개 대표와의 연락 창구였다. '임 선생'이나 가명인 '임동석(계약서에도 가명으로 임동석이 쓰였다)'으로 불렸다. 국정원은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계약서를 본사에 보냈다. 임 직원은 2014년 11월27일 계약을 갱신할 때도 처음에는 빨간 한글 도장이 찍힌 계약서를 보냈다. 그랬다가 ㄴ사 허 대표에게 'The 5163 Army'라는 영문 직인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허 아무개 대표는 취재진이 찾은 도장집에서 직인을 만들었다. 임 직원은 허 대표가 만들어준 직인을 계약서에 찍고 본인이 직접 서명했다. 허 대표에게 이 계약서를 해킹팀 본사에 보내고, 먼저 보낸 빨간 직인이 찍힌 계약서는 폐기해달라고 요청했다. 해킹팀 본사는 폐기하지 않고 보관했고, 이번에 계약서가 모두 유출된 것이다.

임 직원이 국정원 직인을 임의로 쓰고 계약서를 해킹팀에 보냈는지, 해당 부서 단장이나 국장 등 윗선의 묵인으로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다. 국정원 감찰실은 계약서 직인의 진위 여부를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다. 계약서에 쓰인 직인이 공식 직인인지에 대해 국정원은 '확인해줄 수 없다'라는 답변만 보내왔다.

고제규·김은지·김연희·신한슬·이상원 기자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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