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도자'된 설기현 "운동? 하루 딱 한 번, 1시간 10분"

윤태석 2015. 7. 3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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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윤태석]

백두대간의 중심 강원도 태백. 성균관대 설기현(36) 감독대행과 함께 해발 855m로 한국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 '추전역'에 올랐다. 역 아래 풍경이 장관이다. 장맛비의 영향을 받은 구름이 산허리를 둘러 근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태백에서 멀지 않은 정선이 고향이라 강원 지리에 익숙한 설 감독대행도 "이런 곳이 있었느냐"며 감탄했다.

설 감독은 지난 3월 깜짝 은퇴를 선언한 뒤 성균관대 지휘봉을 잡아 큰 주목을 받았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곧바로 대학 지도자로 가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대학팀을 지도하려면 1급 지도자 자격증이 필요한데 설 감독은 2급 자격증만 있는 상태라 아직은 감독대행 신분이다. 얼마 전 1급 코스를 마쳐 곧 자격증이 나온다. 그는 성균관대 부임 후 지난 4개월 동안 독특한 지도 철학을 보여줬다. '운동은 하루 1시간 10분 이내' '주말은 무조건 휴식' '아침은 먹고 싶은 사람만 먹는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만년 중위권이던 성균관대는 최근 가파른 상승세다. 지난 6월 전국체전 선발전에서 강호 경희대와 용인대를 연파하며 1위에 올라 경기도 대표로 10월 강릉 전국체전에 출전한다. 태백에서 열리고 있는 '제46회 전국추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도 준결승까지 오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29일 4강전에서 우승후보 고려대에 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지만 기대 이상의 선전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추전역에서 '선수'가 아닌 '지도자' 설기현과 마주앉았다

- 바로 옆 정선이 고향이죠.

"정확히 말하면 (정선군) 고한(읍)이에요. 초등학교 때 여름에 태백으로 전지훈련을 온 적이 있는데 날씨가 인상적이었어요. 하나도 안 덥고 기후 변화가 심했는데 지금도 똑같아요. 에어컨 없이도 여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에요."

태백과 정선은 대표적인 탄광촌으로 한국 경제 발전의 젖줄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고장은 설기현에게 아픔의 기억도 안겼다. '광부의 아들'이었던 그는 10살 때 아버지를 광산 사고로 여의었다. 어머니 김영자씨가 설기현을 포함한 4형제를 키워냈다. 김 씨는 포장마차, 막노동, 과일가게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설기현은 고생하신 어머니를 위해 2004년 벨기에 진출 때 받은 돈으로 강릉에 번듯한 아파트를 사드렸다.

- 어린 시절 형편이 넉넉치 않았죠.

"그 시절은 다 그랬죠 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께서 울면서 서둘러 가시던 모습이나 영안실 풍경…. 다 기억나요. 어머니가 대단하시죠. 강릉에 사시는 어머니가 오늘 처음으로 경기 보러 오셨는데 (고려대에) 졌어요. 너무 아쉬워요. 이기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 부임 후 처음 학생들 봤을 때 눈빛이 어떻던가요.

"잔뜩 기대하는 눈빛이요. 그 눈을 보며 '내가 뭔가를 해줘야 하는데' 걱정되더라고요. 학생들에게 처음 한 이야기는 '내 방식은 지금까지와 많이 다를거다. 운동도 많이 안 시킬거고 잘못해도 말로 고쳐나갈 거다'는 거였어요. 그러면서 '만약 이 방식이 실패해도 너희 탓하지 않겠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옳다는 걸 너희들이 증명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 그래서 그 전과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요.

"운동은 하루 딱 한 번, 1시간 10분을 넘지 않습니다. 개인 기술은 팀 훈련으로 향상시킬 수 없어요. 누구는 드리블, 누구는 헤딩이 부족한 데 어떻게 단체 훈련으로 극복합니까. 팀 훈련은 조직을 다듬는 시간이에요. 11명이 그라운드에서 할 역할을 짚어주는 거죠. 개인이 부족한 점은 제가 지적해주면 그 외 시간에 스스로 보강해야죠."

- 선수들이 익숙치 않았을 텐데 잘 따라오던가요.

"애들에게 '아침 먹기 싫으면 억지로 안 먹어도 좋다'고 했어요. 선수마다 스타일이 다르거든요. 어떤 선수는 아침을 먹어야 힘이 나지만 늦잠을 푹 자야 컨디션이 좋은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처음엔 애들이 눈치만 보더군요. '나에게 중요한 건 너희들이 운동장에 나갈 때 컨디션이다. 나머지 시간에 뭘 하든 상관없다'고 다시 말했죠. 서서히 바뀌어 가고있어요. 오늘도 경기 날이었는데 아침 먹을 때 3분의1 정도는 안 먹고 자더군요.(웃음)"

추계연맹전 예선을 1위로 통과한 성균관대는 조별리그 후 32강 토너먼트까지 이틀 간 휴식일이 있었다. 설 감독이 선수들에게 "너희 외박 갔다 올래"라고 묻자 모두 입을 떡 벌린채 다물지 못했다. 대회 기간 중 외박은 그 전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선수들에게 설 감독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고 한다.

- 어떤 경험담을 들려줬나요.

"대표선수 시절 외국인 감독님이 계실 때인데 월드컵 예선 원정에서 졌어요. 한국으로 돌아와 바로 홈경기를 치러야 하는데 4일 휴가를 주는 거에요. 깜짝 놀랐죠. 그런데 쉬면서 가족, 친구를 만나니 패배의 스트레스가 사라지더라고요. 반면 어떤 감독님은 한일전에서 패한 뒤 선수단을 집합시켜 한 달 동안 지방 전지훈련을 했어요. 그 전훈은 정말 '감옥'이었어요. 감옥에서 한 달을 지낸 선수들이 다음 경기에서 과연 잘 했을까요. 선수는 기계가 아닙니다. 육체적인 회복 못지 않게 정신적인 회복도 굉장히 중요해요."

- 그래서 주말은 무조건 휴식이고 운동도 하지말라고 한다면서요.

"U리그(대학리그)가 금요일 경기잖아요. 끝나면 주말은 무조건 휴가에요. 선수들에게 푹 쉬고 오라고 하는데 꼭 운동하는 녀석들이 있어요. 운동량이 많으면 정작 중요할 때 몸이 무거워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월요일 훈련 때 꼭 그런 녀석들이 보여 '주말에 운동했냐'고 물으면 '안 했다'고 시치미를 떼요. 계속 추궁하면 '조금만 했다'고 실토하죠. 애들에게 '너희 운동량이 적어서 경기를 뛸 때 체력이 부족하냐'고 물으니 그건 아니래요. '전에는 훈련 많이 했는데 이래도 되나' 그저 막연히 겁을 먹는거죠."

- 학생들과 대화도 많이 하나요.

"그럼요. 제가 예전에 로이 호지슨(설기현 풀럼 시절 감독) 감독과 많은 대화를 해서 즐거웠던 기억이 있어요. 이기든 지든 선수와 마주 앉아 축구 말고 사적인 이야기 많이 했거든요. 감독과 선수는 거리감이 있기 마련인데 많이 좁혀지더라고요. 저도 학생들과 축구 외적인 이야기 많이 하려고 해요. 그들의 고민도 듣고."

- 학생들은 뭘 가장 고민하나요.

"일반 대학생과 똑같아요. 역시 취업이죠.(웃음) '나도 너희 때는 특출하지 않았는데 이런 이런 부분에서 노력하니 유럽 진출 기회도 생기고 대표팀에도 뽑히더라' 이야기를 해주면 굉장히 좋아해요. 저를 보며 더 큰 꿈을 품는 거죠."

설기현 감독이 성균관대 사령탑을 맡을 당시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성균관대 출신이 아닌(설기현은 광운대 출신) 사람이 축구팀 감독이 되든 것에 대해 동문들의 반발이 거셌고 1급 자격증을 보유하지 않은 것도 지적을 받았다.

- 감독 맡을 때 이런 저런 말이 많았죠.

"저는 선수 때부터 평소 갖고 있는 철학을 펼치려면 대학 감독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성균관대에서 마침 좋은 제안을 주셔서 선수 은퇴라는 중대한 결심까지 하면서 수락한 건데 생각지도 않은 논란이 발생해 솔직히 당황스러웠죠. 하지만 그런 비판도 제가 수용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여기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할 것 같아요."

- 올 시즌 목표는요.

"성균관대가 여러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해요. 그에 걸맞게 축구팀에도 많은 지원을 해주십니다. 스포츠단 안응남 단장님이 많은 노력을 하시는데 관심에 걸맞는 축구팀을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올해가 가기 전 전국체전이나 U리그 왕중왕전에서 꼭 우승해 4학년 아이들에게 트로피를 안겨주고 싶어요."

태백=윤태석 기자 yoon.taeseok@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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