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저균도 태아주검도 '택배'로..위험에 노출된 택배기사들

입력 2015. 7. 30. 20:20 수정 2015. 7. 3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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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취급 주의'만 있고 '안전 주의'는 없어요"

택배노동자 배현수(34)씨는 자신이 나르는 하루 200개의 택배상자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잘 모른다. 지난달 태아의 주검이 택배로 배송되고, 지난 5월에는 주한미군이 탄저균을 택배로 반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배씨는 "택배를 보내는 화주에게 상품명 등을 적도록 하지만 꼬치꼬치 캐묻거나 상자를 뜯어보지는 못한다"고 했다. 그는 "물건을 살살 다뤄달라는 '취급 주의' 스티커는 있어도 택배기사나 시민 안전을 위한 '안전 주의' 스티커는 없다. 배송 물건을 속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위험한 물건도 얼마든지 보내고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작년 택배물량 16억2300만개"뭔지 몰라 불안할 때 많아"위험물품 거를 방법·규정 없어

한국통합물류협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 택배 물량은 16억2300만개(운송장 기준)에 이르렀다. 해마다 1억개 이상 늘어나는 추세다.

이 수많은 택배상자 중 하나가 페덱스코리아 택배 트럭에 실려 주한미군 오산기지로 배송됐다. 페덱스코리아 택배노동자들이 속해 있는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21일 페덱스코리아를 생화학무기법·감염예방법 위반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고발했다. 정찬무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본부 정책국장은 30일 "택배노동자들과 시민들은 택배상자 속에 탄저균이 들어 있는 줄도 모른 채 그대로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고 했다.

탄저균처럼 아주 위험한 배송물은 아니더라도, 택배노동자들은 상자 속 '보이지 않는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고 말한다. 16년째 택배 일을 해온 손아무개(49)씨는 "몇 년에 한 번씩 택배 창고나 트럭에서 화재가 난다. 휘발성 강한 스프레이 등 배송이 금지된 가연성물질로 인해 불이 난 것"이라고 했다. 같은 일을 하는 김아무개(46)씨는 "의료 관련 물품의 경우 '전염성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차원에서 품목을 구체적으로 적어달라고 요구하지만, 대충 적어도 관행적으로 배송이 되다 보니 제대로 적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혈청 등 국내외를 오가는 바이오 물품의 경우 안에 무슨 물건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어 불안할 때가 많다"고 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택배표준약관은 '운송물이 위험·위법한 물건일 경우 운송물 수탁을 거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화주가 상품을 속이면 이를 걸러내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 대형 택배회사 관계자는 "고객이 위험물품 포함 여부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경우 접수 자체를 하지 않지만, 만약 속이고 물건을 보낸다면 냄새나 흔들었을 때 나는 소리 등을 통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 보낼 때 상태 그대로 배송하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기 때문에 안전을 이유로 물건을 함부로 열어볼 수도 없다"고 했다.

박현근 국토교통부 물류사업과 사무관은 "사후적으로 위험물품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상법에 따라 택배회사가 계약 위반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는 있다"면서도 "고객이 정체를 속인 위험한 택배 물품을 사전에 거를 수 있는 방법과 규정은 현재 마련돼 있지 않다"고 했다.

방준호 최우리 김규남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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