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아빠의 억울한 누명..'7번방의 선물'은 잔혹영화였다

2015. 7. 3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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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21] 노 땡큐!

영화 <7번방의 선물>은 배우 류승룡과 (아이코 어디서 나타난 이렇게 예쁜 소녀) 예승 역의 갈소원이 호연을 펼쳤다. 관객 1천만 명을 훌쩍 넘겼다. 영화 보는 내내 지나친 허구라 생각했다. 구치소에 어린이를 숨긴 설정 때문이 아니었다. 바보 아빠의 억울한 누명 때문이었다. 지금 세상이 어느 때인데, 저런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쓴다고. 경찰·검찰·법원은 그렇다 쳐도 언론도 있고 멀쩡한 변호사나 우리 같은 인권단체도 있는데… 말도 안 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4차례 자백한 진범이 잡혔는데도

일명 '약촌 오거리 택시 강도 살인사건'이라고 들어보셨는지. 2000년 8월10일 새벽 2시. 택시기사 유씨는 사납금도 훌쩍 넘게 번 운수 좋은 날,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 짜장면을 후루룩 마셨을 것이다. 손님이라 생각하고 경적 울리며 어떤 이를 태웠다. 약촌 오거리로 가자던 손님은 강도로 돌변했다. 유씨는 10여 군데 칼에 찔려 운명했다. 병원으로 달려갔던 아내는 "그 진동하던 피비린내를 무슨 말로 표현할지 저는 아직 모릅니다"라고 지금도 말한다. 범인으로 15살 소년이 체포됐다. 최성필(가명). 소년은 처음부터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며 절규했다. 그러나 모진 고문이 있고 나서 "죄송합니다. 내가 택시기사를 죽였습니다"라고 자백했고, 별다른 증거 없이 10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3년 뒤 진범 김모씨가 체포됐다. 그는 "나 때문에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최성필에게 미안하다"며 4차례 자백했다. 진범 아니면 불가능한 진술도 했다. 사건 당일 그를 숨겨준 친구 임모씨 진술도 이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검찰은 살인범을 풀어주었다. 자신들이 가둔 범인이 감옥에 있는데, 이를 번복하면 따라올 책임이 두려웠을 것이다. 결국 소년은 10년을 꼬박 채우고 감옥에서 나왔다. 이제 서른이 넘었다. 살인자라는 낙인을 안고 살았다. 그는 재심을 청구했다. 피해자 유가족도 재심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가는 2년 넘도록 대답이 없다. 공소시효는 곧 끝난다.

이 사건은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로 알려진 무기수 김신혜의 담당 변호사 박준영에 의해 세상으로 나왔다. 그때부터 함께 작업한 박상규 기자가 여론을 일구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우리 삶이 얼마나 허당인지, 국가란 도대체 무엇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이것이 나라인가'라는 낙망에 이르게 한다. 발밑에 숭숭 구멍 뚫린 체제와 제도를 깨닫게 한다. 두렵다, 그렇다 두려움이다. 15살 소년의 일생과 허기진 배로 살아보려 애썼던 한 가장과 그의 가정을, 국가는 매정히 버렸다.

휴먼드라마 아닌 잔혹영화

"전 제 자신을 포기했어요. 다음 생애에 태어나면 달라지겠죠." 몇 해 전 <한겨레21> 기획 연재 '인권 OTL' 중 '일터로 내몰린 이주·탈북 청소년들 이야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후 목소리가 잊혀진 적이 없었다. 포기하도록 내몰린 삶들. 오롯이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삶들. 최성필은 "계속 맞았어요. 울면서 내가 안 죽였다 애원해도 소용없었어요.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저를 때렸어요"라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넘어온 국가정보원 사찰 소문과 최성필의 울부짖음이 오버랩된다. 진범을 잡아야 한다. 예승이 바보 아빠 이야기는 휴먼드라마가 아니라 잔혹영화였다.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그렇다. 8월9일 공소시효 만료 전까지 시간이 얼마 없다. 하기는 인권운동가 박래군마저 감옥에 가두는 세상… 민주주의를 심폐 소생할 시간도 별로 남지 않았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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