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쉬고 또 쉬는 나라..일한 만큼 쉴 때가 된 나라

서경채 기자 2015. 7. 3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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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학교 방학은 리듬을 타듯 돌아온다. 대략 7주간 공부한 뒤 2주간 쉰다. 9월 초에 개학하고, 10월 중순에 첫 방학이 온다. 만성절(Toussaint) 방학이다. 가톨릭 전통이 강한 나라답게, 모든 성인들을 기념하는 만성절을 전후로 2주간 학교 문을 닫는다.

그 다음이 노엘(Noël), 즉 성탄절 방학이다. 성탄절과 새해 첫날을 묶어서 2주간 쉰다. 가족과 함께 성탄과 신년을 기념하라는 뜻이다. 그 다음에 겨울방학과 봄방학이 이어진다. 겨울방학은 2월부터 3월초 사이, 봄방학은 4월부터 5월 초 사이에 있다.

겨울방학과 봄방학은 프랑스 전역을 세 개 지역으로 나눠 순차적으로 방학을 보낸다. 겨울방학에는 주로 스키를 타고, 봄방학에는 여행을 가는 문화가 있는데, 스키장이나 유명 관광지에 한꺼번에 사람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방학 기간을 지역별로 나눈 것이다.

관광지는 손님을 적정 수준으로 받아 매출을 유지해 좋고, 손님은 예약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서 좋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있다. 진정한 바캉스(vacances), 즉 휴가가 시작된다. 여름방학은 6월 말 또는 7월 초에 시작한다.

우리로 치면 수능시험인 바칼로레아를 치르는 시기인 6월 중순부터 방학에 들어가기도 한다. 대략 계산해보니 프랑스 학생들은 16주를 쉰다. "공부할만하면 또 쉬고, 쉴 만 하면 또 공부한다". 전자는 부모 생각, 후자는 학생 마음일 것이다. 뭐가 맞는 말이지 모르겠지만 참 많이 쉰다.

긴 여름방학에도 숙제가 없다. 방학하는 날, 교사가 학생에게 하는 인사말은 그 동안 공부하느라 수고했으니 방학에 충분히 쉬고,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9월에 다시 만나자는 말뿐이다. 인생을 즐기라는 메시지다. 방학숙제를 하고 부족한 과목은 보충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굳이 공부를 해야겠다는 초등학생들은 서점이나 슈퍼마켓에서 파는 한 권짜리 '방학책'을 사서 본다. 필요한 공부는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지, 교사가 일률적으로 학생의 쉴 권리를 제한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른들도 바캉스에서 뒤지지 않는다. 프랑스인들은 6월 초부터 헤어질 때 인사말로 'Bonnes vacances!'(휴가 잘 보내세요!)라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여름이 시작됐으니 휴가를 잘 보내라고 미리 인사하는 것이다. 7, 8월이면 일상이 거의 마비된다. 식당, 부동산 중개업소, 소규모 자영업소들은 한달 씩 휴가를 가기도 한다.

1년에 11개월만 일하는 셈이다. 직장인들도 통상 여름에 3주간 휴가를 보낸다. 프랑스 경제가 좋지 않아 많이 줄었다고 하는데도 프랑스인 60%가 집을 떠난다. 프랑스에서 하루 이틀 쉬는 것은 바캉스 축에 끼지 못한다. 적어도 4일을 집이 아닌 곳에서 자야 바캉스라고 부른다.

이 정도 놀려면 사전에 준비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예산과 일정 등 모든 게 짜여 있어야 한다. 프랑스인들은 모든 계획이 바캉스에 맞춰 조정된다. 여행사도 1년 후 상품을 판다. 이렇게 예약해서 떠나니 바캉스 앞에서는 인생의 중대사도, 회사의 중요한 일도 그 다음으로 밀린다.

부모 장례식을 바캉스 마치고 한다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회사도 직원들에게 바캉스 날짜를 변경하라고 요구하지 못한다. 휴가는 여름뿐 아니다. 직장인은 겨울에 1주, 봄가을에 1주, 도합 5주 정도 휴가를 쓴다. 이 정도면 휴가는 개인사에 중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신성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프랑스가 마냥 부러운 것은 아니다. 이런 장기 휴가가 지속 가능하냐는 의문이 들고 있다. 프랑스 경제가 침체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대표 산업이자 고용 창출 능력이 큰 자동차, 원자력, 철도 산업이 세계 톱 클래스에서 밀려나 제조업 기반이 점차 부실해지고 있다. 실업률도 여전히 높다. 휴가를 즐길 재원이 계속 공급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이다.

오지랖 넓게 프랑스를 걱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식 휴가를 따라 하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 경제력에 맞춰 적정한 휴가를 즐기자는 것이다. 다국적 여행사 익스피디아의 통계를 보면 한국 직장인은 연간 8.6일 휴가를 쓴다고 한다. 조사 대상 25개국 가운데 꼴찌였다.

많이 일한다고 생산성이 높은 것도 아니었다, 2012년 OECD 조사에서 한국의 시간당 생산성은 28.9 달러로 최하위권이다.

프랑스는 59.5달러로 세계 7위를 기록했다. 한국 직장인들이 자리에만 앉아 있을 뿐 딴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게 경쟁력이라는 단순한 진리가 통하지 않고 있다. 휴가라는 말로 사용되는 프랑스어 바캉스는 "비우다, 자유로워진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휴가를 통해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고 새롭게 채울 빈 그릇을 만들어오라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휴가를 신성하고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이유이다. 바캉스라는 프랑스어만 따다 쓸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정신을 배워야 한다. 그러기에는 우리 휴가는 아직 너무 짧고, 눈치보기는 심하다.

서경채 기자 seokc@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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