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놀이터에서 놀지마".. 외부 어린이 내쫓는 아파트

이민석 기자 입력 2015. 7. 30. 03:00 수정 2015. 7. 3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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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검사 불합격 놀이터 747곳.. 비용 이유로 폐쇄된 채 방치 아이들, 옆 단지 갔다가 봉변 "애들한테 너무한다" 지적에 "외부인 막는 건 권리" 반론

"자꾸 '아파트 주민 맞느냐'고 물어봐요. 아니라고 하면 쫓겨나니까 '여기 산다'고 거짓말해요."

여름방학이 한창인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A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난 박모(10)군은 이곳에서 600m 떨어진 B아파트에 산다. B아파트 놀이터는 지난 1월 안전 검사에서 불합격해 임시 폐쇄됐고 반년째 방치돼 있다. 며칠 전 A아파트에 사는 초등학생들이 "여기서 본 적 없는데 왜 여기 왔느냐"고 박군에게 따진 일도 있지만 박군은 앞으로도 이 놀이터에 오겠다고 했다. 박군은 "방학이라 놀 곳이 없는데 여기선 신나게 놀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안전 검사에서 불합격한 전국 놀이터 1985곳이 임시 폐쇄된 지 6개월이 지났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747곳은 여전히 보수가 되지 않아 폐쇄된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자 이 놀이터들의 재개장만 기다리던 초등학생들이 집 근처 다른 아파트 놀이터를 찾아다니면서 입주민과 외부인 간 '놀이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곳곳에서 아파트 입주민들과 외부 아파트 주민들 간 말다툼이 벌어진다. 입주민들은 "우리가 낸 관리비로 운영되는 놀이터인데 외부인들이 몰려오니 정상적 생활이 힘들다"고 한다. 반면 놀이터가 폐쇄돼 인근 아파트 놀이터를 찾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애들이 놀 곳이 없는데 쫓아내는 건 야박한 것 같다"는 입장이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아이들을 붙잡고 '입주민 맞느냐'고 물어야 할 지경"이라 했다.

박군이 사는 아파트 놀이터가 폐쇄된 건 2008년 시행된 '어린이놀이시설안전관리법' 때문이다. 법은 놀이터를 설치할 때 검사를 받고 이후 2년에 한 번씩 정기 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검사 기관과 예산 부족으로 법 시행일이 늦춰졌지만 올해 초 정부가 대대적인 놀이터 안전 점검에 나서면서 지난 1월 27일 안전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놀이터 2000여곳이 일제히 문을 닫았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C아파트에 사는 이모(11)양은 "갑자기 인근 아파트 3~4개 놀이터가 문을 닫아 놀 곳이 없어졌다"며 "얼마 전 다른 아파트 단지에 있는 '멀쩡한' 놀이터를 발견해 친구들과 같이 놀러 가곤 하는데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놀이터 전쟁'은 주로 지은 지 오래돼 재건축 대상인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나타난다. 서울에서 이용 금지된 놀이터는 서초구(46개·17%), 강남구(24개·10%), 노원구(22개·9%) 순으로 많다. 노후 아파트 단지가 많은 지역이다. 놀이터 보수 비용은 공공시설인 경우 지자체, 민간 시설이면 관리 주체인 아파트 측이 부담해야 한다. 지자체에 예산이 없거나 영세 주택이 관리하는 민간 놀이터일 경우엔 비용 부담 때문에 보수가 쉽지 않다. 노원구 관계자는 "수리 비용이 적게는 5000만원에서 8000만원까지 드는데 그 비용을 부담하긴 쉽지 않다"고 했다. 재건축 대상이라는 이유로 수리를 미루는 곳도 많다.

한 달 전 '놀이터가 폐쇄돼 놀 곳 없는 애가 근처 아파트 놀이터에 갔다가 쫓겨났다는 소리를 듣고 서러웠다'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와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너무 인심이 박하다'는 댓글부터 '입주민들이 외부 아이들 노는 소음까지 들으라는 거냐'는 의견 등 댓글 수백개가 달렸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놀이터 수리·보수를 장기간 하지 않는 아파트는 지자체 등 관리 감독 기관을 통해 '개선 계획서'를 의무적으로 내게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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