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버스, 열 받은 건 외국인 여행자뿐

이근승 입력 2015. 7. 2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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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보통사람들 이야기 ⑧] 힐링이 필요했다. 우삼바라 여행

[오마이뉴스 이근승 기자]

2012년까지 봉사활동과 여행으로 보냈던 아프리카에서의 3년은 황홀했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화와 개인화되어 가는 우리에 대한 성찰이었고, 아직도 더불어 살아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환희였습니다.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들. 그 속으로 돌을 던집니다. 그곳은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 기자 말

▲ 지도 - 킬리만자로, 모시 그리고 우삼바라 킬리만자로 아랫동네인 모시에서 우삼바라까지 가는 길
ⓒ Nelles map
버스는 모시 시내를 벗어난다. 탄자니아에 도착한 지 다섯 달 만에 처음 떠나는 여행. 때는 부활절이라 열흘간의 방학이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낯선 아프리카 땅에 와서 그나마 잘 헤쳐나갔다. 집을 구하고 얼굴이 검은 사람들과 지지고 볶고, 목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힐링이 필요했다. 재판이 끝난 후 마음은 더 심산해져만 갔다. 그래서 야밤에 지도를 펴놓고 멍때리는데 '우삼바라'라는 산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우담바라'도 아닌 '우삼바라'이지만, 어쨌든 가슴 한켠은 뚫릴 듯 싶었다.

▲ 바오밥 나무 킬리만자로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풍부한 모시를 벗어나면 거대한 바오밥 나무 군락이 나타난다. 바오밥 나무는 아주 황량한 사바나 지역이 아니라, 반건조 지역에 산다.
ⓒ 이근승
▲ 황량한 사바나 평원 바오밥 나무 군락 다음으로 황량한 사바나 평원이 나타난다. 탄자니아 최고봉인 메루산(4565m)과 킬리만자로산(5895m)이 있는 아루샤와 모시는 일년중 우기가 두 번으로 녹음이 우거져 있다. 반면 이 두 도시를 벗어나면 우기는 일년중 한 번뿐인 사바나 기후로 황량한 풍경이 펼쳐진다.
ⓒ 이근승
▲ 우삼바라로 가는 길가의 사이잘(Sisal) 농장 과거 제국주의 항해의 시대에 필수적인 밧줄을 생산하기 위해서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식민지에 사이잘을 들여왔다. 아프리카는 세계 사이잘삼 생산량의 2/5를, 그중에서도 탄자니아는 아프리카 생산량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다.
ⓒ 이근승
▲ 우삼바라 초입 사바나 평원에서 이천미터 산들이 겹겹이 쌓인 우삼바라 지역으로 올라가는 길
ⓒ 이근승
모시를 떠난 버스는 곧게 뻗은 도로를 따라 달린다. 천천히 완만한 능선을 이루어 내려가던 킬리만자로 산자락은 뒤로 쳐졌다. 그리고 이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황량한 사바나의 수평선이 오른편으로 펼쳐진다.

왼편으로는 길을 따라 병풍처럼 우뚝 선 산들이 달리고, 군데군데 파레 산줄기에서 흘러나온 물줄기가 고인 푸른 습지대가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 저 멀리 리프트 밸리(동아프리카 지구대)에서 뻗어 나온 파레 산맥의 끝자락이 물러나고, 넓은 평원이 보이기도 잠깐이다. 다시 검푸른 산 덩어리들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2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진을 친 우삼바라 산맥이다.

늙은 버스는 갈림길에서 탄자니아 수도인 다르에르살람으로 향하는 남쪽 길을 외면하고, '픽픽' 쓰러질 듯 가파른 산 위를 꾸역꾸역 오른다. 돌고 돌다가 숨을 고르고, 다시 숲 속 사이로 난 고갯길을 돌아 나가기 수십 번이다.

▲ 루쇼토 변두리 우삼바라 지역의 읍내인 루쇼토가 가까와지자 하나 둘씩 인가가 나타난다.
ⓒ 이근승
아침 7시에 출발한 지가 언제인데, 버스는 오후 두 시가 되도록 우삼바라의 읍내인 루쇼토에서 진을 빼고 있다. 오는 도중 사바나 평원에서 버스가 퍼졌는데, 그때도 그랬다. 모두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버스 안에는 '언제 떠나나' 안절부절못하는 므중구(외국인)만 있었다.

여기저기 사람들은 그늘이 드리운 가시나무 아래에서 시시덕거리며 늙은 바람을 맞고 있었고, 뭔가에 안달 난 외국놈 하나만이 태양에 뜨겁게 달구어진 버스 안에서 오도가지도 못하고 성난 표정을 해댔다.

차를 고쳐야 할 운전수는 담배를 피워가며 조수랑 처자식 이바구를 하는데, 왜 그러고 있느냐고 따지는 놈 하나 없고. 그렇게 태평하게, 한 시간이 흐른 다음에 차는 부릉부릉 떨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태워서 떠나고......

"조수 아저씨, 얼마 후에 떠나는 거죠?"

루쇼토에 도착하기 무섭게 다들 일어나 내려버리니, 물어 볼 수밖에. 자기도 모르는가 보다. 먼저 내린 운전수를 뒤따라가 뭐라고 하더니만, 친절하게도 돌아와 하는 소리.

"조금 있다 간다고 하네요."
"얼마나 조금?"
"쪼오끔!"

더 물어봤다가는 괜히 나만 또 열 받는다. 그래도 혹시나, 가방을 가지러 다시 들어온 사내를 붙잡고 물어본다.

"곧 떠날 거요."
"얼마나 곧?"
"그러니까 고?."

끄응, 다시 후덥지근한 버스 안엔 외국놈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짐작건대 점심시간이라 짬을 준 것이 분명한데, 정확히 언제 떠나는지 알아야 마음이 편할 터이다. 아침을 거른 터라 창문 밖으로 만다지(기름에 튀긴 밀가루 빵) 몇 개와 물병을 사서 먹는데 조바심으로 뱃속까지 부글부글 끓는다.

사람들은 어디 있을까. 저어기 나무 그늘 아래 퍼질러 앉은 여남은 명, 식당 앞에서 닭 다리를 뜯는 남자들하고, 이 와중에 대체 잠이 올까나. 평상 위에서 자빠져 자는 사람들...
좌불안석으로 시계만 쳐다보고, 한 시간 반이 넘어서야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다시 반 시간이 지나고, 마지막으로 돌아온 운전수가 시동을 건다.

대체 이들은 어떻게 알까? 조금이라는 시간은 얼만큼이며, 또 귀신같이 어떻게 거기에 맞춰서 들어오는지. 그리고 떠날 시간을 앞두고 왜 그렇게 태평하며, 나는 왜 바보같이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것일까.

정오를 지난 태양이 기울어 갈수록 산은 깊어만 가고, 모든 것은 차츰차츰 변해만 간다.
치마와 바지를 입은 모시 사람들과는 다르게 아랍인들처럼 천을 허리와 머리에 두른 여인네들이 보인다. (일찍이 10세기부터 탄자니아는 아라비아 반도에 살던 사람들이 정착하여 아랍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파키스탄의 카라코람에서, 인도의 마닐라로 가는 여정에서, 히말라야의 시킴을 휘젓고 다니다 만난 얼굴들이 이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땅에서 서성인다. 그리고 시냇물 가장자리에 살얼음처럼 웅크린 이 창날 같은 공기, 새벽녘 문풍지로 스며들어 코끝을 베고 도망치던 검푸른 빛, 그 속에 들어앉아 시리도록 서늘한 풍경들.

모든 것은 너무나 닮아 있다. 사람도, 풍경도, 냄새도.

아. 그토록 잘나 보이기를 소망했던 분별의 어리석음이여, 살아감의 단순함이여, 내 너와는 다름을 줄기차게 주장하였더라도. 얼굴이 틀리고 무엇을 숭배하고 어쩔지라도, 이토록 산이 주는 세상은 닮아 있는데.

▲ 음타에 우삼바라 산맥의 최정점에 위치한 조그만 음타에 마을. 버스는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 이근승
오후 5시가 넘어 버스는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멈추어 선다. 우삼바라의 가장 높은 꼭대기인 음타에다. 층층이 높아만 가던 산줄기는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여기에서 2000m 정점을 찍고 절벽이 되어 평원으로 급강하한다.

정들었던 사람들은 눈인사를 하며 도시에서 샀을 비료부대와 괭이를 들고, 혹자는 두 발을 묶어 바동거리는 닭을 가슴에 품고 어느덧 사라졌다. 나는 홀로 버스에서 내려 상쾌한 공기를 폐 깊숙이 들이마신다.

바깥으로 나가는 차라야 하루에 한 대가 고작이고,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벽촌에 도착한 첫날, 땅거미가 자욱한 길 위로 땟국물 젖은 아이들이 나를 반긴다.

한 달에 여행객이라고 해봤자 한두 명이 전부인 삼천 원짜리 허름한 여관에 짐을 풀었다. 천 원짜리 저녁을 먹고, 여관방으로 돌아와 삐걱거리는 침대에 눕는다. 일하는 아이인 듯 한 소년이 성냥과 초를 가져오고, 이내 흔들거리는 촛불을 끄고 밖으로 나갔다.

조그마한 신작로 길 주변으로 불을 밝힌 세네 개의 점방이 있다. 어스름 저녁을 놓친 농부가 염소를 따라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 어두운 밤, 가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따라 흥얼거리는 청년들을 지나쳐, 문밖으로 사람들 그림자가 길게 늘어뜨린 남폿불을 밝힌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므중구의 출현에 사람들이 놀라 두리번거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떠들썩한 얘기들이 멈췄다.

열린 문으로 산바람이 불어오고, 천장에 매단 유리병 속 남폿불이 너울거리며 춤을 춘다.
어둠의 시간이 올 때까지 있었을 고단한 삶의 파편들이 천장 위로 오르는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찻잔을 움켜쥔 시꺼멓고 부르튼 엄지 마디를 가진 사람들. 뜨거운 홍차에 적신 얼굴 아래로 땀방울이 콧물 되어 떨어진다. 이 어두운 저녁이 보듬어 감싸내는 나무꾼과 비탈밭을 일구는 촌부의 시간들, 그리고 따스한 차 한잔에서 풀어내는 향기로운 사람 냄새......

나지막이 차 한 잔을 말하고, 그 초조했던 시간의 굴레를 벗어던진다. 그리고 사람들이 뿜어대는 하얀 입김과 화덕 위 주전자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와 매캐한 연기가 어우러진 자욱한 평화의 향연 속에 빠진다.

▲ 음타에 찻집 설탕 두 스푼이 들어간 붉은 홍차와 그 옆의 만다지(튀긴 밀가루 빵)
ⓒ 이근승
이런 찻집이 좋다. 오래된 탁자에, 오래된 이 빠진 사기 찻잔.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이 안에 담겨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길이 머물렀던 걸까. 또 그들이 떠난 후, 주인은 얼마나 많은 물걸레질을 했을까.

오랜 시간이 주는 엄숙함과 40원짜리 만다지가 말하는 삶의 가난함 앞에서 알 수 없는 평안함에 휩싸여 침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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