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할계'.. '9회 8점차' 권혁 투입, 어떻게 봐야 할까

김우종 기자 2015. 7. 2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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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김우종 기자]

'한화의 수호신' 권혁.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우도할계(牛刀割鷄)

: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 무릇 큰일을 처리할 기능을 작은 일을 처리하는데 쓰다.

28일 잠실구장. '2015 KBO리그' 한화-두산전.

1회 2점, 3회 3점을 뽑은 한화는 4회초 1점을 추가하며 6-0을 만들었다. 한화는 4회말 비록 2점을 내줬지만, 5회 재차 2점을 올리며 8-2까지 달아났다. 한화 선발 송은범은 5이닝 2실점 역투를 펼치며 승리 요건을 갖춘 채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어진 6회말. 8-2, 6점 차 리드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필승조' 박정진이었다.

박정진은 6회 18개, 7회 11개의 공을 각각 뿌린 채 무실점으로 두산 타선을 틀어막았다. 8회초 한화는 김태균과 김경언이 연속 적시타를 치며 10-2 리드를 잡았다. 8점차. 이어진 8회말에도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박정진이었다. 8회말 두산은 1사 후 3번 김현수를 대타 장민석으로, 4번 로메로를 대타 국해성으로 각각 교체했다. 사실상 수건을 던진 것이나 다름없는 백업 선수들의 투입이었다. 8회 삼자 범퇴.

박정진이 3이닝 동안 43개의 투구수를 기록한 가운데, 두산의 9회말 마지막 공격. 점수는 여전히 8점 차. 그런데 이 순간, 한화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다름 아닌 한화의 수호신 권혁이었다. 직전 경기인 26일 삼성전에서 ⅔이닝 동안 4피안타 4실점으로 부진했던 권혁. 당시 권혁은 15개의 공을 던졌다. 그리고 하루 휴식 후 8점 차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것이다.

'8점 차'. 세이브 상황도 아니었다. 접전도, 위기 상황도 아니었다. 이미 두산은 8회 주력 선수들을 빼며 내일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화의 투수력을 감안했을 때, 9회에만 8점을 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터. 그럼 권혁은 이 여유 있는 상황 속에서, 왜 경기를 끝내는 상황에서 올라와야만 했을까. 그리고 그게 꼭 권혁이어야만 했을까. 혹시 팀 승리를 마무리하기 위해 나설 수 있었던 다른 대기 불펜 투수는 없었던 것일까.

권혁은 선두타자 최재훈을 4구째 헛스윙 삼진 처리한 뒤 오재일을 4구째 우익수 뜬공, 최주환을 6구째 중견수 뜬공으로 각각 유도했다. 10-2. 경기 종료. 한화가 이겼다. 권혁의 투구 수는 14개.

28일 경기가 끝난 뒤 김성근(오른쪽) 감독과 악수를 나누는 권혁. /사진=OSEN

한화 김성근 감독은 왜 9회 8점이나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도 '마무리' 권혁을 올렸을까. 그 이유를 유추해본다면 우선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식'의 투수 교체였을 가능성이 크다. 1회에 6점 차도 뒤집어지는 요즘 KBO리그에서 '8점차'도 안심 못했을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로 이날 경기는 두산과의 주중 3연전 중 첫 경기였다. 그야말로 상대가 '악'소리도 못 내도록, 최강의 '권혁 카드'를 초장부터 앞세워 상대 기를 '꽉' 누르겠다는 의도를 가졌을 수도 있다.

이 경기 전까지 한화는 두산에 상대 전적에서 2승 5패로 열세에 놓여 있었다. 한화로서는 참으로 버거운 상대였다. 또 김 감독은 올 시즌 시범경기 때부터 두산 라인업을 본 뒤 "어마어마하다"라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아울러 매번 두산의 유희관을 '좋은 투수'라며 극찬하는가 하면, 이 경기 전에도 "두산처럼 선발 로테이션이 잘 돌아가는 팀은 없는 것 같다"면서 내심 부러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 두산을 상대로 10-2, 8점 차로 앞선 9회에도 팀 내에서 쓸 수 있는 최고의 카드를 투입, 상대의 기세와 의지를 궤멸시킨 것이다. 이것이 29일과 30일 경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두산 입장에서는 9회 크게 점수 차가 뒤져 있는 상황에서도 권혁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질리다'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두산 김태형 감독(오른쪽). /사진=OSEN

그렇지만 '꼭 권혁이어야만 했는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날 한화의 1군 투수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13명. 이 중 선발 자원인 탈보트와 배영수, 송은범, 김민우, 송창식 등 5명과 필승조인 박정진, 윤규진, 권혁을 제외하고도 박성호(8G 5⅔이닝 ERA 1.59), 정광운(1G 1이닝 ERA 9.00), 윤기호(1G 1이닝 ERA 0.00), 김범수(1G 0이닝), 박한길(1G 1이닝 ERA 9.00)이라는 5명의 불펜 자원이 있었다.

권혁. 올 시즌 54경기에 출전해 8승8패 12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4.30을 기록 중이다. 한화가 90경기를 치른 현재, 81⅓이닝을 던졌다. 똑같이 54경기에 출전한 NC의 불펜 투수 최금강이 62⅔이닝을 던진 것에 비해 약 20이닝을 더 던졌다. 탈보트, 유먼, 안영명에 이어 팀 내 최다 이닝 투구 4위이자, KBO리그 전체 불펜 투수 중 투구 이닝 1위다. 반면, 박성호와 정광운, 윤기호, 김범수, 박한길 5명이 던진 올 시즌 투구 이닝은 전부 다 합쳐도 8⅔이닝 밖에 되지 않는다.

권혁은 이날 경기를 통해 지난 2004년 자신의 한 시즌 최다 이닝 투구(81이닝)를 경신했다. 그런데 앞으로 한화는 54경기를 남겨놓고 있다. 이 추세라면 100이닝 돌파는 물론, 단순 계산으로 130이닝을 던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불펜 투수들이 한 시즌 동안 80이닝을 던진다고 볼 때 분명 적지 않은 투구 이닝이다.

한화가 권혁을 투입하는 경우는 크게 '팀이 이기고 있을 때 경기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혹은 '팀이 추격전을 펼치고 있을 때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서' 등이 있다. 그러나 '8점'이라는 점수를 지키기 위해서도 권혁이 나와야만 한다면 이야기가 다소 달라진다. 즉, 이는 사실상 초반에 크게 무너지는 경기를 제외하고는 권혁이 매번 경기 때마다 투입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야구라는 경기에서 '9회 8점차 리드를 지켜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쉬운 일, 즉 '닭 잡는 일'이다. 닭을 잡을 때에는 닭 잡는 칼을 쓰면 된다. 더 크고 어려운 일을 해야 할 때 쓰는 '소 잡는 칼'을 구태여 쓸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이번 경기 9회에서도 권혁이라는 크고 중한 '소 잡는 칼'보다는 나머지 경험 적은 불펜 투수들인 '닭 잡는 칼'을 쓰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흔히들 1군 경기는 2군 퓨처스리그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1군 무대에서 1타자, 1이닝 그리고 1경기를 뛰는 것은 신예 선수들에게는 대단히 큰 경험으로 작용한다. 엄청난 경험이다. 단번에 크는 선수는 없다. 실수를 많이 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야 이승엽, 류현진, 강정호가 탄생한다.

'박성호, 정광운, 윤기호, 김범수, 박한길'. 이들도 분명히 김 감독이 신중하게 판단하고 고른 5명의 날카로운 '칼(刀)'일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에는 한화 이글스의 훌륭한 '소 잡는 칼(刀)'로 성장할 수 있는 재목들이다. 한화 이글스는 올해도 또 내년과 후년에도 계속해서 야구를 잘해야 하는 팀이다. 닭의 배를 가르는 데, '소 잡는 큰 칼'은 잠시 아끼고 '닭 잡는 칼'도 한 번 우직하게 써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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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종 기자 woodybell@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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