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없이 몸 던져 두 생명 구하고 하늘로 간 '바다공주'

입력 2015. 7. 29. 06:00 수정 2015. 7.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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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서 물에 빠진 남녀 구하고 심장마비로 숨진 50대 어머니 "1년에 1∼2명 목숨은 늘 살렸다..평생 봉사활동 해와"

계곡서 물에 빠진 남녀 구하고 심장마비로 숨진 50대 어머니

"1년에 1∼2명 목숨은 늘 살렸다…평생 봉사활동 해와"

(서울=연합뉴스) 설승은 기자 = "우리 엄마요. 그냥 천사였어요. 불의를 절대 참지 않으시고 평생 남들 돕고 봉사하는 것만 아시는 말 그대로 천사 같은 사람이었어요."

평생 남의 목숨을 살리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온 한 주부가 지난 주말 계곡에서 물에 빠진 남녀를 구하고 정작 자신은 목숨을 잃은 사실이 알려져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토요일이던 이달 25일 밤 이혜경(51·여)씨는 서울 서초동 집을 떠나 지인 7명과 산악회 회원 등 40여명과 함께 경북 울진의 왕피천 용소계곡으로 무박 2일 계곡 트레킹을 떠났다.

다음날 오전 5시 30분께 계곡에 도착해 떡국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한 시간 뒤 상류부터 계곡을 헤엄쳐 내려오는 방식으로 트레킹을 시작했다.

수영선수 출신에 라이프가드(안전요원) 자격증을 가진 이씨는 수영에 서툰 회원들을 일일이 챙기면서 트레킹했고, 마무리 구간의 굵은 모래가 깔린 잔잔한 계곡물가에 앉아 휴식을 하고 있었다.

낮 12시 20분께. 계곡물에 등산 스틱을 떨어뜨린 한 낯선 남성이 스틱을 주우러 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수심 3m 물속에서 허우적댔다. 남성의 일행인 한 여성이 곧 뛰어들었지만, 같이 물에 빠졌다.

이를 본 이씨는 번개처럼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잠수를 해서 곧 스틱을 건져 올렸다.

이어 평소 언성을 높이는 법이 없는 이씨가 쇳소리에 가까운 목소리로 "스틱 잡고 나가요, 살 수 있어요"라고 소리를 지르며 두 사람을 물가로 힘껏 밀어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직후 이씨는 하늘을 바라보는 자세로 다리를 떨며 물에 힘없이 둥둥 떴다. 심장마비였다. 두 사람을 살려낸 이씨가 세상과 작별한 순간이었다. 이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0호실. 발인 전날인 이날 이씨의 빈소를 찾은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고인에 대해 늘 남의 생명을 구하는 천사같은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연세대 체육학과 캠퍼스 커플로 만난 김덕배(51·전 서울시의원)씨와 결혼해 슬하에 두 딸 유빈(25)·수빈(22)씨를 뒀다. 서울시 대표로도 활동한 장거리 전문 자유형 선수였던 이씨는 선수 생활을 접고 1986년부터 가정주부로 살아왔다.

눈가가 촉촉했던 남편 김씨는 지갑 속에서 아내의 수영 심판 자격증을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며 "산에 다니는 것을 좋아해 '산을 사랑한 바다공주'라는 닉네임을 즐겨 썼다"며 "사람을 구하는 게 일상인 사람이라 1년에 1∼2명의 목숨은 살렸다"고 말했다.

이씨는 작년에도 등산 중 실족한 노인에게 심폐소생술을 해서 목숨을 구했고, 물에 빠진 딸 친구를 구하고 무더위 속 차 안에 갇힌 노인을 살려내는 등 사람을 구한 사례는 셀 수 없다고 한다.

당시 트레킹에 함께했던 친구 하미경(50·여)씨는 "사고 전으로 시간이 되돌려진대도 혜경이는 아마 똑같이 사람들을 구하러 물로 뛰어들었을 거예요"라며 "원래 그런 친구예요. 그야말로 의인이죠"라고 말했다.

서초구 녹색어머니회 활동, 지역 도서관 사서 봉사, 치매노인센터 주방 봉사, 장애인 아동 수영 강습, 각종 성당 봉사활동, 노인대학 봉사 등 고인이 지역에서 해온 봉사활동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모임에서 같이 시작한 치매노인센터 주방 봉사는 다들 힘들다며 곧 그만뒀지만, 이씨는 모임 이름으로 혼자 수년째 봉사를 해왔다고 한다.

이런 어머니를 똑 닮은 큰 딸 유빈씨는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파견으로 필리핀에서 장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수빈씨는 지역 아동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수빈씨는 "어릴 때부터 본 건 봉사활동하는 엄마의 모습뿐이었다"며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엄마가 해오던 봉사활동은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씨는 특히 치매 초기인 시어머니가 홀로 지내는 영등포의 집에 매주 들러 목욕을 시키고 음식을 만들어 놓는 등 손위·아래 가족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효부였다고도 가족들이 전했다.

이씨가 구한 두 사람 중 최모(35)씨는 27일 빈소를 지켰다. 힘겹게 입을 떼며 감사를 표하는 최씨의 손을 꼭 잡고 이씨의 딸들은 "우리 엄마 몫까지 잘 살아달라"고 부탁했다.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그냥 익사하셨다면 정말 슬퍼 만 했을 것 같은데, 엄마의 희생으로 두 사람이 살게 됐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산을 사랑한 바다공주'를 하늘로 돌려보낸 수빈씨는 엷은 미소를 띠고 씩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s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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