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의 눈]오갈데 없는 한국 유학생들

김혜미 입력 2015. 7. 29.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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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이데일리 김혜미 특파원] 뉴욕에서 약 1년 반을 머물면서 뉴욕에 사는 주변 한국인들 사이에서 잊을 만 하면 한번씩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누구는 하버드와 컬럼비아 두 군데 아이비리그 대학을 다 졸업했다더라’, ‘일자리를 찾다가 안돼서 다시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다’…. 취업 때문에 대학 혹은 대학원에 다시 진학한다는 얘기였다.

취업이 되지 않아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휴학을 하는 경우는 한국에서도 사실 흔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대학에 이어 대학원을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다시 대학을 새로 들어간다거나 대학원을 막 졸업했는데 또다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좀 달리 보였다. 미국 사립대학 학비는 한국보다도 훨씬 비싼 편이지만 이들 학생들 형편이 모두 넉넉한 것도 아니다.

이들이 연이어 진학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취업이다. 이들은 특히 한국 기업이 아닌 미국 기업에 취업하고자 한다. 처음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업무시간 등에 있어 임직원 희생을 어느 정도 강요하는 한국식 기업문화보다는 업무시간이 정확하고 개인의 삶을 존중해주는 미국식 기업문화가 더 낫다는 것을 체감한 것이다. 복지혜택 등 기본적인 처우가 한국보다 낫고 직업이나 직급에 따라 차별대우를 받지 않는 문화도 미국 기업을 선망하는 주된 이유중 하나다.

그러나 이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비자다. 미국에서는 과학(S)과 기술(T), 공학(E), 수학(M) 등 이른바 ‘STEM’ 전공자가 아닌 경우 H-1과 같은 취업비자를 후원 받기가 쉽지 않다. 기업으로서는 해당 직원을 반드시 채용해야 하는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등 시간과 비용이 드는 다소 성가신 문제이므로 굳이 한국인을 채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국에 머무는 기간을 늘리기 위한 여러 방법이 동원되는 데 가장 흔한 방법이 바로 진학이다. 이로 인해 학부를 두 군데 졸업하거나 대학원을 두세군데 졸업한 한국 유학생들을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다. 이에 따라 순수하게 다른 전공을 공부해보고 싶어 다시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오히려 비자 면접에서 거절당하는 억울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미국 시민권자인 한 지인의 친구는 컬럼비아대 입학 허가를 받고도 ‘석사학위를 추가로 받기엔 너무 필요 이상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You are overqualified to go to another master degree)며 학생 비자 발급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처럼 연달아 진학을 선택하고, 어떻게든 미국에 머물려 하는 유학생들 상당수가 미 동부 명문대학을 졸업한 인재들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취업하면 되지 왜 꼭 미국이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지만 이들이 귀국한다해도 상황은 여전히 복잡하다. 한때 유학생들을 선호했던 한국 기업들은 이제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도 영어가 능숙하며 기업 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학생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공동체 의식을 중시하는 한국 기업 문화에서 미국식 문화를 경험한 유학생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뉴욕에서 대학을 졸업한 유학생 A양(25)은 몇달 전 한국에 돌아갔다가 뉴욕으로 다시 돌아왔다. 어떻게든 한국에서 자리잡으려고 노력해봤지만 정시 출·퇴근은 커녕 본인이 맡은 업무가 아닌데도 영어를 사용할 일이 있으면 이곳저곳 불려다녀야 했다. 결국 A양도 진학을 선택했다. 대학 이후 삶을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가 없는 한국 학생들에게 유학이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된 셈이다.

김혜미 (pinnster@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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