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상생 '달라진 게 없다'](下) "설비 투자하라" 해놓고.. 단가 후려치거나 물량 안 주거나

이혜리 기자 2015. 7. 28.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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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권 넘기면 대체상품 주선 믿었는데 아무 말 없네요""특허기술 설명 듣고 같은 제품 별도 제조" 13년째 공방외상 매출 담보제공 늦었다고 성수기 상품출고 중단도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한 뒤에 유통업을 하고 싶어서 외국 브랜드 초콜릿을 들여왔는데 대기업에 울며 겨자 먹기로 넘겨주고 자금 손실도 많이 봤죠. 이젠 하지 말아야 하나 싶어요.”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임성모씨(가명)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2011년 영국의 유명 초콜릿 ‘쏜튼’을 한국에 들여왔다.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브랜드라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들어갔고, 편의점에 진열하기 위해 ‘입점비’도 내야 했다. 임씨는 “생소한 브랜드를 정착시키는 건 힘든 작업”이라며 “밤을 새워가며 일했다”고 말했다. 매출은 제법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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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 키워 놓으면 치고 들어오는 대기업

그러나 지난해 국내 2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를 운영하는 글로벌 유통 대기업 테스코가 한국 판매권을 넘겨받고 싶어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홈플러스 측은 임씨에게 “쏜튼 본사로부터 국내 대리점과의 계약관계가 끝났다고 들었다”면서 “대체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해줄 테니 초콜릿 사업권은 양보해달라”고 했다. 임씨는 “대기업과의 싸움에서 내가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고민 끝에 사업권을 넘겨줬는데 대체상품 판매에 대해서 아직 아무 말도 없다. 답답하다”고 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테스코와 쏜튼 본사, 해당 중소업체 간 문제이며, 홈플러스는 테스코 계열사이긴 하지만 관계가 없다. 대체상품 판매는 아직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2013년 ‘갑을 논란’ 이후 2년이 지났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은 여전히 요원하다.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중소기업이나 중소상공인의 사업영역을 치고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멕시칸 패스트푸드점 ‘타코벨’이 대표적인 사례다. 타코벨·KFC·피자헛 등 4만개가 넘는 요식업 브랜드를 보유한 미국의 ‘얌(Yum)’은 한국에 진출하기 위해 국내 중소기업인 ‘M2G’와 가맹계약을 맺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1차 계약을 맺고 2011년 재계약을 했다. M2G가 타코벨을 한국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 결과 점포는 8개로 늘었고, 타코벨을 찾는 사람도 증가했다.

그러나 M2G가 모르는 사이 타코벨 브랜드 사업권은 국내 대기업인 ‘아워홈’에 넘어갔다. 지난해 12월 아워홈은 M2G가 운영하는 타코벨 신도림점에서 불과 1㎞ 남짓 떨어진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신규 점포를 개설했다. 아워홈 구자학 회장의 딸인 구지은 전 부사장이 타코벨 오픈에 공을 들였다는 내용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아워홈은 향후 5년간 매장을 50개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타코벨 인터네셔널 측은 “아워홈은 독점사업권을 가진게 아니다. 복수의 사업자로 참여하는 것”이라며 “아워홈이 참여해 M2G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특허기술 빼가기도 다반사

인쇄전문기업 ㄱ사는 거래 대기업의 요청에 따라 냉장고 등 가전제품의 바깥면에 붙이는 유리막 코팅 생산설비에 대규모로 투자했다. 당초 설비 투자를 하면 어느 정도의 물량은 수주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던 대기업은 정작 설비 투자가 끝나자 태도를 바꿔 약속한 만큼의 물량을 발주하지 않았다. 대기업 내부에선 이 제품의 수요가 경기침체 등으로 급격히 줄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여기에 제품 단가도 당초 합의한 수준의 70%로 후려쳤다. 손해는 고스란히 ㄱ사가 떠안았다.

동부대우전자에 부품을 납품하던 하영VIT는 “2012년 상반기부터 물량이 늘어나니 설비 및 인원을 보강하라”는 동부대우전자 측의 말에 따라 15억원 이상 투자했다. 하지만 납품처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내부 결정에 따라 동부대우전자는 하영VIT가 아닌 다른 업체에 물량을 주기 시작했고, 하영VIT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LG유플러스와 서오텔레콤의 특허기술 침해 공방은 2003년부터 13년째 이어지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가해자 몰래 구조요청을 할 수 있도록 단말기 측면에 별도의 비상 버튼을 만들어 이 버튼만 누르면 보호자에게 호출이 가는 내용의 서오텔레콤 특허기술을 침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LG화학은 하도급업체의 기술을 빼돌린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드러났다. LG화학은 2013년 3~10월 하도급업체 ㄴ사로부터 배터리 라벨 원가자료·사양정보·제조방법·설비 등에 대한 설명을 23차례에 걸쳐 e메일·전화 등으로 전달받았다. LG화학은 이 시기에 ㄴ사 자료를 활용해 중국 남경법인에 제조시설을 구축했고 그해 9월 배터리 라벨이 생산되자 ㄴ사와의 구매계약을 중단했다. 공정위는 LG화학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1600만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대리점에 대한 본사의 물량 밀어내기와 매출목표 달성 강요 논란도 현재 진행형이다.

주류 도매업체인 오션주류는 오비맥주가 2011년 11월 외상 매출 담보 2억6000만원을 추가로 마련하라고 부당한 요구를 하고 담보 제공이 늦어지자 주류 소비 성수기인 연말에 맥주 출고를 중단해 회사가 부도에 처했다며 공정위에 신고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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