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보수-진보' 위험한 이분법

2015. 7. 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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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의 현장 칼럼 창]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것도 민생을 위한 무한경쟁을 하지 않고 당의 구성원들이 중도개혁이니 좌클릭이니 우클릭이니 하는 추상적인 말 뒤에 숨어 개인과 정파의 이익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28일 오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 대표실에서 당 정체성에 대한 6차 혁신안을 발표하는 김상곤 혁신위원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절절한 반성에 이어 김상곤 위원장은 정체성 확립을 위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념을 민생제일주의로 선언했다. 을지로위원장 우원식 의원이 당 정체성 소위원장으로 내용을 대부분 정리했다.

이틀 전 같은 장소에서 최재천 정책위의장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최재천 의장은 지속가능한 사회, 포용적 성장과 시장경제,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공화제의 원리라는 관점에서 모든 정책을 다시 살펴보고 재설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성장은 보수가 하고 분배는 진보가 한다는 담론은 지극히 편협한 이분법"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표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혁신위원회와 비주류 정책위의장의 당 정체성과 정책노선에 대한 구상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와 노선 갈등을 '친노 강경파'와 '비주류 중도파'의 대립으로 설명하려는 시각이 있다. 보수 성향 언론과 논객들, 새누리당이 야당의 내부 갈등을 분석하는 프레임이다. 야당의 주축을 '친노-좌파-종북-386(486 또는 86)' 연합으로, 비주류는 호남에 기반을 두고 중도 노선을 지향하는 '합리적 진보'로 가정한다. 그럴듯한가?

엉터리다. 당장 비주류인 이종걸 원내대표와 최재천 정책위의장이 왜 문재인 대표보다 종종 더 강경한지 설명하지 못한다. 비주류였던 천정배 의원과 정동영 전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에 끊임없이 '더 많은 진보'를 요구하다가 탈당한 이유도 설명하지 못한다. 비주류인 박지원 의원이 북한인권법 제정에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이유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새정치연합 안에 여당이 만든 엉터리 프레임으로 다른 계파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심하다.

'강경 친노' 대 '중도 비주류' 가설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각각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를 대표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친노 앞에 붙는 강경은 '강경 진보', '강경 좌파'를 뜻하고, 비주류 앞에 붙는 중도는 '보수와 진보 사이의 중도', 또는 '좌와 우 사이의 중도'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은 좌파정당이 아니다. 진보정당도 아니다. 지금도 아니고 과거에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왜 많은 사람들이 새정치민주연합을 좌파정당이나 진보정당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2002년 대선에서 두번째로 패배한 한나라당과 보수 성향 논객들이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권, 진보정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학술세계에서나 적용할 수 있는 관념적 이분법을 현실 정치세계에 끌어들여 상대를 이념의 늪에 가두려 한 것이다. 프레임의 위력은 강력했다. '보수는 다소 부패했지만 대체로 유능하고, 진보는 다소 깨끗하지만 대체로 무능하다', '보수는 성장, 진보는 분배'라는 식의 근거없는 가설이 설득력 있게 퍼졌다.

결국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았다. 후보의 경쟁력이 워낙 압도적이었지만 그에 앞서 이념 전쟁,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좌-우, 보수-진보 이분법 프레임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도 크게 기여했다. 2014년 6·4 지방선거, 7·30 재보궐선거, 2015년 4·29 재보궐선거 때 '경제는 새누리당'이라는 펼침막이 곳곳에 나부꼈다. 지금도 새누리당의 필승 전략이 바로 좌-우, 보수-진보 이분법 프레임이다.

미국을 방문중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워싱턴 동포간담회에서 "진보 좌파의 준동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우리 새누리당이 진보 좌파가 준동 못 하도록 노력하겠다. 이걸 공고히 하는 방법은 새누리당이 더욱 선거에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딱 그 프레임이다.

2013년에 터진 이석기 의원 사건, 2014년의 통합진보당 해산은 이분법 프레임을 더욱 강화시켰다. 2010년과 2012년 진보정당과 선거연대를 한 제1야당을 좌파정당이나 '종북숙주정당'이라고 몰아붙일 근거가 생긴 것이다.

이분법은 모든 분야에서 복잡한 흐름을 파악하는 유용한 도구다. 그러나 지나친 단순화는 위험하다. 특히 정치를 이분법으로 설명하는 대가는 치명적일 수 있다.

첫째, 사실을 호도한다. 현 집권세력의 정책은 대체로 보수에 가깝다. 그러나 보수의 필수 요소인 도덕성과 애국심이 부족하다. 군에 다녀오지 않은 출세주의자들이 정부를 장악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노동자와 농민을 대변했던가?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노동자와 농민 곁에 서 있었나? 아니다. 노동자와 농민을 외면한 정치세력이 진보일 수 없다.

둘째, 유럽의 중도보수에 가까운 야당의 집권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새누리당의 영구 집권은 보수의 건강성 상실과 그로 인한 우리 사회의 극우화를 불러올 수 있다. 일본이 그렇게 됐다.

셋째, 국민들이 어느 한쪽 가치를 포기할 위험이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국민들은 민주주의 후퇴와 인권 침해를 일정 부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조짐이 있다. 경제성장과 보수를 선택하고 지불해야 하는 대가로 보는 것이다. 프레임 효과다.

정당의 가치와 정책노선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깃발이 얼마나 다를까. 2012년 대선을 거치며 비슷해졌다. 이제는 구체적인 정책 수립과 실천, 그리고 신뢰로 승부해야 한다. 누가 이 시대의 과제를 진짜로 해결할 수 있을까.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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