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기술자'라던 임 과장, 어느새 해킹 책임자로

입력 2015. 7. 28. 15:53 수정 2015. 7. 2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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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 걸고 불법사찰 없었다"는 국정원장, 모순투성이 해명… 권한 없는 직원이 어떻게 자료 삭제했을까?

[미디어오늘 조윤호 기자]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를 통해 해킹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주로 자살한 직원 임 과장이 삭제했다는 자료들에 대한 해명이었으나, 해명은커녕 의혹만 더 증폭됐다. 국정원의 해명이 과거 국정원이 주장했던 내용들과 모순되는 지점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국회 정보위원들에 따르면 이병호 국정원장은 27일 오후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임씨가 삭제한 자료는 51건이고 이를 복원한 결과 대테러 자료가 10건, 실험실패건이 10건, 국내실험용이 31건이었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원장 직을 걸고 내국인 불법사찰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해명과정에서 많은 의문점이 제기됐다. 국정원이 임 과장의 책임으로 '꼬리자르기'하려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정보위 야당 간사인 신경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기자들에게 "RCS와 관련된 모든 일은 임 과장의 주도로 했고 임 과장이 모든 책임을 졌는데 사망으로 상당 부분 알 수 없게 됐다는 보고가 국정원 측으로부터 여러 번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임 과장이 '단순 기술자'라는 국정원의 해명과 어긋난다. 국정원은 지난 17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은 그 분야의 최고 기술자일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임 과장의 사망 이후 국정원 직원 명의로 발표한 성명에는 "순수하고 유능한 사이버 기술자였던 그가 졸지에 우리 국민을 사찰한 감시자로 내몰린 상황을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있다.

'순수한 기술자'라는 말에는 해킹 전반을 지휘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는 '윗선'이 있음을 함축한다. 정보위 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은 지난 19일 "이 직원(임 과장)은 자기가 어떤 대상을 선정하고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니었다. 대상을 선정해 알려주면 기술적으로 이메일을 심고 보고하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임 과장이 해킹을 주도했다는 국정원 보고와 어긋난다.

임 과장이 해킹을 주도했느냐는 의문은 임 과장이 자료를 삭제할 수 있었느냐는 의문으로 연결된다. 임 과장은 유서에서 "오해를 일으킨 자료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정원은 파일 삭제 권한은 '국장'에게 있다고 해명했다. 게다가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임 과장은 지난 14일 정보위원회 이후부터 감찰을 받고 있었고, 신경민 의원을 통해 지난 4월 이후 임 과장이 다른 부서로 전출된 상태였다는 점이 알려졌다.

종합하자면 임 과장은 삭제권한도 없는 데다 다른 부서로 전출된 상황에서, 국정원 감찰을 받는 중에 자료를 삭제한 셈이다. 국정원의 시스템이 지나치게 허술하거나 아니면 윗선이 개입해 자료삭제를 방조했거나 둘 중 하나다.

나아가 국정원은 삭제된 자료는 대테러 자료 아니면 실험용이라고 해명했다. 대테러나 실험용 해킹 흔적을 왜 삭제하려 했을지도 의문점이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위원장은 27일 정보위가 열리기 직전 기자간담회에서 "감출 필요가 없는 파일을 100% 복구 가능한 채로 삭제하고 자살하셨다는 주장을 국민 누구도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민 의원도 정보위 이후 기자들에게 "임 과장이 목숨까지 버려할 이유에 대해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국가정보원의 해킹프로그램 의혹과 관련, 국회의 진상조사가 시작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에서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이 출석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민중의소리

국정원의 해명을 믿을 수 없다보니 '100% 복구'해 확인했다는 말도 석연치 않다. 국정원은 임 과장이 사망한 이후 24일 자료를 100% 복구했다고 밝혔다. 안철수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국정원 같은 정보기관은 자료 삭제를 대비해 백업을 해두기 마련이다. 이번 경우 백업을 안 했는지 했는지가 중요한 의문점"이라며 "백업을 했다면 자료를 찾는데 1분도 안 걸린다. 왜 1주일이나 걸렸나"라고 반문했다.

안 위원장은 또한 "만약 백업을 안 해뒀자면 100% 복구는 불가능하다. 서버는 시간이 지나면 내부 작동을 하면서 겹쳐쓰기를 시작하고 따라서 하루 정도만 지나도 100% 복구는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와도 불가능하다"며 "백업을 했다면 1주일이나 걸린 이유를 설명할 수 없고 백업을 안 했다면 100% 복구 자체가 모순"이라고 말했다.

사실 애초에 "그 분야의 최고 기술자"이자 20년 간 관련 업무를 맡았던 임 과장이 100% 복구 가능하도록 자료를 삭제했다는 것부터가 의문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때 IT비전문가였던 국정원 직원 김하영(좌익효수)은 43시간 동안 오피스텔에 머무르며 디스크 조각모음까지 해 187개 파일을 복구 불가능하도록 삭제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여러 논란이 해명되지 않은 이유는 결국 국정원이 자료는 제출하지 않은 채 해명만 거듭했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이 요구한 34개 자료는 하나도 제출하지 않았고, 원본 파일 대신 요약본으로 자료를 제출했다. 새정치연합이 민간인 사찰 흔적으로 의심하고 있는 SK텔레콤 3개 IP에 대해서도 국정원은 자신들의 핸드폰 번호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짜 국정원 직원 핸드폰 번호가 맞는지조차 확인 불가능한 상황이다.

국정원이 자료는 없이 믿어달라는 말만 거듭하는 셈이다. 신경민 의원은 2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어제 정보위원회는 종교집회의 합창을 연상시킨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은 국정원의 입장에 동조하며 국정원의 자료 제출 거부를 부추기고 있다.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은 2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로그파일 공개하면 목숨을 잃는 사람 생긴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사람이(대북 정보원들을 뜻함) 들어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진실규명의 열쇠인 '로그파일'을 제출하지 않으면서 '불법사찰은 없었다는' 말을 믿어달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맞서고 있다. 국정원이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이상 국정원 해킹 의혹을 둘러싼 의문을 계속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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