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호흡측정한 음주운전자도 본인 동의하면 채혈측정 가능"

김경학 기자 2015. 7. 2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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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이 상당히 의심이 되면 호흡측정을 한 운전자라도 본인 동의 이후 채혈측정을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일반적으로 채혈측정은 음주운전자가 자신이 생각하는 혈중알코올농도보다 호흡측정 결과가 높다고 생각돼 불복한 경우에 진행했다. 그러나 측정기 오류 등의 가능성이 있을 때는 채혈측정도 다시 요구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음주운전 등을 한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로 기소된 김모씨(54)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고 28일 밝혔다.

공무원인 김씨는 2013년 6월2일 자정쯤 인천 부개동의 한 도로에서 운전을 하다 신호대기 중이던 차량 3대를 추돌한 뒤, 중앙선을 넘나들다 또 다른 차량 3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피해 차량에 탑승해 있던 10명은 전치 2~3주에 해당하는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현장에 출동해 김씨와 사고 피해자들을 경찰서로 데려왔다. 김씨는 얼굴색이 붉고,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등 술에 취한 모습을 보였다. 경찰이 김씨에게 호흡측정기로 음주측정을 한 결과, 김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24%로 나왔다. 면허 정지에도 해당하지 않는 훈방 수치였다.

경찰이 서울의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찰은 사고 피해자들에게 김씨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알려줬다. 일부 피해자들이 측정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혈액 채취를 해서 혈중알코올농도를 다시 측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피해자들이 처벌수치 미달로 나온 것을 납득하지 못하니 정확한 조사를 위해 채혈에 동의하겠느냐’고 물었다. 김씨는 혈액 채취 동의서에 서명한 뒤 인근 병원에서 채혈에 응했다. 혈액으로 측정한 결과, 김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239%로 나왔다. 이는 ‘만취’에 해당하는 면허 취소 수치였다.

1심은 김씨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경찰의 증거 수집 절차가 위법했다며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호흡측정이 이뤄진 운전자에 대해 다시 혈액 채취의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경우는 운전자가 호흡측정 결과에 ‘불복’한 경우에 한정된다”며 “불복하지 않았는데도 경찰관의 요구로 재차 채혈을 해 취득한 혈액은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라고 밝혔다.

대법원의 판단은 2심과 달랐다. 대법원은 “호흡측정 당시의 구체적 상황에 비춰 호흡측정기의 오작동 등으로 인해 호흡측정 결과에 오류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정이 있는 경우라면, 호흡측정 수치만으로는 수사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없어 추가로 음주측정을 할 필요성이 있다”며 “경찰관이 음주운전 혐의를 제대로 밝히기 위해 운전자의 자발적인 동의를 얻어 혈액 채취에 의한 측정의 방법으로 다시 음주측정을 하는 것을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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