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Monitor] 美 대선은 '쩐의 전쟁' 8조 원 대결의 내막

2015. 7. 2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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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실시될 미국 대통령 선거는 역사상 유례 없는 ‘쩐의 전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대선에서 모든 후보들의 선거 자금이 역대 최대인 75억~80억 달러로 예상된다.

미국의 역대 대선을 보면 후보들의 선거 자금 규모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 왔다. 2000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와 앨 고어 민주당 후보는 각각 1억8500만 달러와 1억2000만 달러를 지출했다. 2012년 대선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6억8350만 달러,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가 4억3330만 달러를 퍼부었다. 당시 양당과 후보 외곽 조직이 지출한 자금까지 합치면 각각 11억700만 달러와 12억3800만 달러에 달한다.

차기 대선에서 선거 자금 규모가 더욱 크게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이유는 ‘특별정치활동위원회(Super Political Action Committee, Super PAC)’ 때문이다. 슈퍼팩(Super PAC)은 각종 선거에서 특정 후보의 지지 활동을 위한 기금 모집과 광고 등을 주로 하는 민간단체를 말한다. 슈퍼팩은 지지 후보에게 선거 자금을 직접 줄 수는 없지만 자금을 제한 없이 모아서 간접적인 방식으로만 지원할 수 있다. 슈퍼팩의 활동은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작년 개인이 슈퍼팩에 낼 수 있는 정치 후원금 총액을 2년간 12만3200달러로 제한한 연방선거법 조항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시하고 개인의 선거 자금 기부 총액 제한을 폐지한다고 선고했다. 이에 앞서 연방대법원은 2010년 특정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기업이나 노동조합이 지출하는 광고·홍보비에 제한을 둘 수 없다고 선고한 바 있다. 두 개의 판결에 따라 개인과 기업, 단체 모두 합법적으로 무제한 슈퍼팩에 기부할 수 있게 됐다. 슈퍼팩은 특정 후보와 직접 손만 잡지 않았을 뿐 사실상은 외곽 후원 조직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슈퍼팩이 특정 후보를 위해 얼마나 자금을 모금하느냐에 따라 선거의 당락이 갈릴 수 있다.

슈퍼팩 기부 한도 폐지 무제한 기부 가능해져

특히 차기 대선이 1년 8개월 정도 남았지만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들은 이미 슈퍼팩을 통한 선거 자금 모금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공화당의 유력 후보들 중 한 명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자신의 슈퍼팩인 ‘라이트 투 라이즈(Right to Rise)’를 통해 대대적으로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 부시 전 주지사는 친기업 성향인 공화당의 전통적인 자금줄인 재벌과 대기업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 플로리다 주지사 시절 쌓았던 인맥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지낸 아버지(조지 H. W. 부시)와 형(조지 W. 부시)이 쌓아 놓은 인맥과 부자 기부자들을 그대로 물려받으면서 다른 공화당 후보들을 압도하고 있다. 인적 네트워크와 선거 자금을 얼마나 모으느냐가 선거 당락을 가르는 주요 요인인 만큼 부시 전 지사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유력한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자신을 지지하는 슈퍼팩인 ‘프라이어리티즈 유에스에이(Priorities USA)’, ‘레디 포 힐러리(Ready for Hillary)’ 등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애초 개헌을 통해서라도 ‘머니게임’으로 변질된 미국 선거 자금 모금 체제를 개편하겠다고 주장했지만, 막상 부시 전 지사의 선거 자금 모금이 크게 늘어나자 슈퍼팩을 통한 모금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클린턴 선거캠프는 당선을 위해선 20억~25억 달러를 모금해야 한다면서 목표를 달성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클린턴 전 장관은 친서민 행보에 주력하고 있어 선거 자금 모금에 불리한 측면이 있다. 그는 또 그동안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던 월가의 금융 기업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월가의 기부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의 후원자들을 보면 억만장자인 투자자 마크 라스리와 헤지펀드의 대부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가 있다. 또 블랙스톤그룹과 모건스탠리 웰스매니지먼트, 골드만삭스, DE 쇼, 에버코어 파트너스 등도 클린턴 전 장관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 헤지펀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 최고경영자(CEO) 봅 머서와 사모펀드 KKR 공동창업자 헨리 크래비스는 크루즈 상원의원과 부시 전 주지사를 각각 후원하고 있다. 크래비스는 지난 2월 부시 전 주지사를 위한 기금 마련 만찬을 주최했는데, 당시 참석자들은 1인당 10만 달러씩 헌금했다고 한다.

미국 대선에서 선거 자금이 늘어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2000년대 들어 선거전이 초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대선에서 부시 후보와 고어 후보가 48%의 똑같은 지지율을 얻는 바람에 연방대법원의 결정으로 승자가 결정됐다. 2004년 대선에는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각각 51%와 48%를 득표했다. 2008년 대선에선 오바마 후보와 존 매케인 후보가 각각 53%와 46%를 얻었고, 2012년 대선에서는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후보가 각각 51%, 4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지지율이 비슷해질수록 선거전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부동층을 확보하기 위해 미디어 홍보에 대규모 자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미국 홍보업체들은 내년 대선 후보의 광고비용이 34억 달러로, 4년 전 29억 달러보다 20% 정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대선이 역대 최대의 머니게임이 될 수밖에 없는 숨져진 이유도 있다. 출마한 후보들이 모두 억만장자이기 때문이다. 비(非)당파 웹사이트 크라우드팩 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선 주자 26명 중 순자산이 100만 달러 미만인 인물은 단 4명에 불과했다.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후보는 릭 스나이더 미시간 주지사로 순자산이 무려 2억 달러에 달했고, 전 휴렛패커드(HP) CEO인 칼리 피오리나가 8000만 달러로 뒤를 이었다. 클린턴 전 장관의 순자산은 2150만 달러로 3위를 기록했다. 남편 빌 클린턴의 재산을 포함하지 않은 액수다. 부시 전 주지사도 1000만 달러의 재산을 보유해 5위를 기록했다. 일부에선 내년 대선을 아예 ‘억만장자에 의한, 억만장자를 위한, 억만장자의 선거’라고 비꼬는 말도 나오고 있다. 자칫하면 금권(金權)선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돈이 반드시 대선의 승패를 좌우하지는 않는데도 불구하고 내년 대선에선 선거 자금이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 공화당의 돈줄, 코크 형제의 선택은

미국 차기 대선에서 에너지 재벌인 찰스 코크(79)와 데이비드 코크(74) 형제는 공화당 후보들 중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네덜란드계 유대인인 코크 형제는 정유업체인 코크인더스트리의 공동 소유주로 각각 429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해 미국 포브스 선정, 2015년 세계 부호 공동 6위에 올랐다. 찰스는 코크인더스트리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는 부사장을 맡고 있다. 코크인더스트리는 미국 내 비상장 기업 중 2위로, 연간 수익 1150억 달러, 종업원 수 14만 명에 이른다. 코크 형제는 1980년대부터 공화당의 든든한 돈줄 역할을 해왔다. 또 미국 보수주의 싱크탱크를 대표하는 헤리티지 재단의 주요 후원자이기도 하다. 코크 형제는 차기 대선에 무려 9억 달러(9897억 원)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코크 형제는 공화당 후보들 중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랜드 폴 상원의원 등 5명에 대해 대선 후보로 선출될 좋은 기회를 잡은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2012년 대선에서 사용한 자금이 4억 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코크 형제가 내놓을 정치 자금은 선거 판세를 좌우할 수 있는 규모다. 코크 형제의 지원을 받는 후보와 그렇지 못한 후보 간 명암이 갈릴 것이 분명하다. 공화당의 ‘킹메이커’로 나선 코크 형제는 “우리의 지원을 받으려면 어떤 정책이 미국에 득이 되는지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지침까지 제시했다. 코크 형제가 공화당 후보들 중 누구를 선택할지, 또 이 후보가 코크 형제의 지원으로 차기 대권을 거머쥘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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