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감독들이 기억하는 '초보 시절'

김선아 2015. 7. 2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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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편집부] '초보' 딱지를 붙이고 운전을 시작하듯, 지금은 베테랑으로 꼽히는 감독들에게도 초보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경험이 부족하다", "아직 감독을 맡기에는…"이라는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위기에 처한 팀을 빠르게 재건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어느덧 베테랑이 된 그들이 전하는 '리빌딩 설계도'다.

※ 본 기사는 월간 점프볼 2015년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영주 감독 (현 구리 KDB생명)

KDB생명으로 새 출발2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던 금호생명은 2007년 이상윤 감독 부임 후 환골탈태했다. 이경은, 신정자, 한채진을 축으로 짜임새 있는 농구를 구사,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것. 하지만 금호생명의 모그룹이 경영난을 겪으며 산업은행에 매각되는 등 2009-2010시즌 중반부터 팀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다른 계열사로의 농구단 이전도 불가능했다. 금호생명은 시즌 종료 직후 극적으로 산업은행 계열로 편입돼 농구단이 존속됐고, 계약이 만료된 이상윤 감독을 대신해 김영주 코치를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김영주 감독 Said_"코치 경험은 많았지만, 감독은 처음이라 걱정이 앞섰다. 코치 때는 마음이 편했는데 막상 감독이 되니 막중한 책임감이 따랐고, '내가 준비한 농구가 통할까?'라는 조바심도 들었다. 그래도 농구는 체력이 밑받침이 되어야 기술도 덧칠할 수 있다는 신념은 변함이 없었다. 체력향상을 중점에 두고 비시즌 훈련을 진행했다. 감독으로서 데뷔전은 선수 때보다 더 긴장되더라(웃음)."

양강구도 깬 반란2007 겨울리그부터 안산 신한은행(현 인천 신한은행)의 챔프전 상대는 4시즌 연속 용인 삼성생명(현 삼성)이었지만, 2010-2011시즌에 드디어 양강구도가 깨졌다. KDB생명이 4강에서 삼성생명을 3승 1패로 제압, 전신 시절 포함 팀 통산 2번째 챔프전 진출을 달성한 것. 비록 챔프전에서는 신한은행에 1승 3패로 무릎을 꿇었지만, 간판을 바꾸며 새 출발한 KDB생명은 리그 판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김영주 감독 Said_"당시 신한은행은 전력이 상당히 강했지만, 우리 팀은 활용할 자원이 한정적이었다. 전력상 쉽지 않은 상대인 만큼 선수들을 다그치기보단, 격려하며 매 경기를 치렀다. 당시 챔프전을 치르며 느낀 바가 많다. 3년만에 KDB생명으로 돌아왔는데 김소담, 최원선, 허기쁨 등 젊은 센터를 성장시키는 게 올 시즌은 물론 팀의 미래를 좌우할 요소가 될 것 같다. 하위권에 처진 동안 가능성 있는 신예를 모아 3년 전과는 또 다른 농구를 하게 됐다. 잠재력 있는 선수가 많아 기대도 크다."

김진 감독 (현 창원 LG)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던 꼴찌2000-2001시즌 동양은 최하위에서 허덕였다. 선수 부상, 외국선수의 부조화 등으로 시즌 초반 11연패를 경험했다. 힘겹게 연패를 끊었지만, 다시 7연패를 당하며 무너졌다. 결국 지휘봉을 잡고 있던 최명룡 감독이 시즌 중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잔여 경기는 동양의 창단 시절부터 코치를 맡아온 김진 코치의 감독대행 체제로 치러지게 됐다. 구단은 6년간 동양과 함께해온 김진 감독대행이 팀 분위기를 바꿀 적임자라 판단했다. 김진 감독대행은 6승 16패로 잔여경기를 마쳤고, 2001-2002시즌부터 정식 감독이 되어 팀의 체질개선에 나섰다.

김진 감독 Said_"선수 구성과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김병철과 전희철은 경쟁력이 있었다. 박재일 등 식스맨도 준수했지만, 가드와 외국선수는 약했다. 좋은 선수가 많더라도 이를 하나로 묶고 이끌 가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드의 차이가 경기 운영, 안정감 등을 좌지우지하기에 기존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할 가드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외국선수 선발도 중요했다. 당시 리그는 전체적으로 빅맨을 선호했는데, 나는 외국선수의 힘보다 트랜지션 가능성을 따졌다. 전희철이 내·외곽에서 플레이할 수도 있어 국내선수의 역량에 초점을 맞춰 외국선수를 구성했다.

꼴찌에서 챔피언으로!김진 감독이 동양의 정식 감독이 된 후, 리그에 새 바람이 불었다. 전 시즌 꼴찌 동양이 통합 우승을 일궈낸 것. 김진 감독이 선발한 가드 김승현과 마르커스 힉스, 라이언 페리맨은 동양이 가진 약점을 깨끗이 메웠다. 김승현은 신인임에도 김진 감독이 바라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힉스와 페리맨은 성실함과 실력 모두 갖춘 매력적인 외국선수들이었다. 이들의 합류로 김병철, 전희철도 부담을 덜었다. 결국 동양은 패배의식을 털어내고 빠르고 조직적인 팀으로 탈바꿈했다. 김진 감독은 지도자 데뷔 첫 시즌에 팀에게 첫 우승을 선사했고,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승현도 신인상과 MVP의 영광을 동시에 안았다.

김진 감독 Said_"오랫동안 팀에 몸담으면서 동양은 스피드 위주로 경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험이었다. 준비를 많이 했지만, 선수단을 끌고 나가면서 모험에 그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시즌을 준비하며 선수들의 역량을 높이려고 했는데 다행히 김승현, 김병철, 전희철, 박재일 등 선수들이 잘 따라와 줬다. 또한 힉스와 페리맨도 선수단과 시너지 효과를 냈다. 모험으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재밌는 농구를 하며 과정과 결과 모두 좋았다. 틀리지 않은 판단이었다는 것에 기뻤다."

박종천 감독(현 부천 하나외환)

만년 2인자의 설움현대 여자농구팀은 '만년 2인자'였다. 1999 여름리그를 시작한 뒤 4차례나 챔프전 준우승에 그쳤다. 그러던 중 2002 여름리그를 앞두고 자금난으로 해체 위기에 처했다. 별세한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동생 정상영 KCC 회장이 도움을 줘 안정세를 조금이나마 찾았지만, 정덕화 감독이 남자농구로 무대를 옮기는 등 여전히 불안했다. 이 자리는 KCC에서 코치생활을 하던 박종천 감독이 메우게 됐다. 당시 현대는 전주원, 권은정, 박명애, 정윤숙 등 노련한 선수가 많았지만, 손발을 맞출 시간이 적었다. 개막 전까지 박종천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달뿐이었다. 당시 외국선수는 자유계약이 가능한 때였지만, 자금 사정으로 인해 나키아 샌포드와 재계약해 시즌을 준비했다. 샌포드는 그해 유일한 재계약 외국선수였다.

박종천 감독 Said_"현대는 계속 준우승만 했던 팀이다. 잘하면 본전이지만, 성적이 떨어지면 안 되는 팀이었다. 감독이 되어 제일 힘들었던 것은 내가 여자농구를 잘 모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지 않은가. 경기 비디오를 구해 2주간 분석만 했다. 또한 여자선수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전 감독들과 여자농구 원로들을 찾아가 묻고 또 물었다. 여자농구 선수들이기에 심리파악도 중요하다고 하더라. 책을 읽고, 메모를 벽에 붙여가며 고민했다. 훈련하며 당근과 채찍 모두 썼다. 팀 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선수들에게 절실함도 심어주고, 동기부여도 필요했다."

초보 감독이 일냈다현대가 드디어 창단 첫 우승에 성공했다. 신임 박종천 감독이 현대의 준우승 징크스를 한 방에 날렸다. 1999 여름리그와 2000 겨울리그 챔프전에서 만나 패했던 삼성생명을 상대로 우승컵을 따내 기쁨이 더 컸다. 박종천 감독은 선수단에 빠른 농구를 이식해 정규리그를 2위로 마쳤다. 속공 부문 2위를 기록했다. 이어진 챔프전에서는 선수들의 장점인 '경험'을 극대화했다. 체력보다는 노련미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수비를 구축한 것. 덕분에 챔프전에서 만난 삼성생명의 창을 막았다.

박종천 감독 Said_"나는 빠른 농구를 지향한다. 뛰는 농구로 팀 컬러를 바꿔 현대에서 정규리그 2위, 챔프전 우승에 성공했다. 우리의 우승은 가드 전주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주원이 없었으면 팀이 꾸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이전까지 몸담았던 KCC에 현대 여자농구팀을 대입했다. 전주원은 이상민, 김영옥은 조성원, 정윤숙은 추승균으로 봤다. 이와 같은 대입을 통해 빠른 농구를 할 수 있었다. 또한 선수들이 노련하고 기술도 갖췄었다. 요즘 세대보다 한 두 단계 위의 능력을 가진 선수들이었다. 공격, 수비 작전 수행 능력이 탁월했다."

추일승 감독 (현 고양 오리온스)

재정난에 시달리던 코리아텐더추일승 감독이 팀을 맡기 전 코리아텐더는 재정난 탓에 팀 운영이 원활하지 않았다. 훈련 여건이나 선수단 지원이 타 팀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이와 같은 여건 속에 맞이한 2002-2003시즌은 선수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 똘똘 뭉쳐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던 시즌이다. 코리아텐더는 정규리그에서 28승 26패, 4위를 기록했다. 이어 플레이오프 4강까지 오르는 투지를 보였다. 이렇다 할 스타플레이어는 없었지만 조직력으로 부족한 점을 극복했고, 외국선수 에릭 이버츠, 안드레 페리의 활약도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려운 팀 사정 탓에 다음 시즌에 대한 걱정이 클 수밖에 없었다.

추일승 감독 Said_"당시 계약 조건이 외국선수 둘을 모두 재계약 하는 것이었는데 에릭 이버츠가 재계약 사인을 하러 오지 않았다. 결국 드래프트에서 외국선수를 뽑을 준비를 안 하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안드레 페리도 말썽을 많이 일으켰다. 외국선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서 앞으로 외국선수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주엽이가 상무에서 전역하며 합류했는데,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뛰면서 무릎이 안 좋아졌다. 무릎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1라운드 중반쯤 코리아텐더가 KTF에 인수됐지만, 구단 운영을 안 해봤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부족했다. 시스템을 만드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난다. 반대로 팀을 만들어가는 재미도 있었다."

외국선수의 중요성 깨닫다시즌 개막 후인 11월, 코리아텐더가 KTF에 인수되면서 선수단에는 새로 시작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부적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믿었던 이버츠와 재계약을 못했고, 외국선수 트레이드를 단행하는 등 계획하지 않은 변화도 겪었다. 결국 KTF는 19승 35패, 8위에 머물고 말았다. 추일승 감독은 프로 첫 시즌 외국선수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지를 가장 많이 깨달았다고 한다. 또 에이스 역할을 해줘야 할 현주엽의 몸 상태가 완전치 않았던 것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추일승 감독 Said_"시즌을 마치고 주엽이를 재활에만 집중시켰다. 주엽이가 프로에 들어온 후 한 번도 플레이오프에 못 올랐기 때문에 주엽이를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엽이에게 맞는 외국선수를 찾는데 초점을 맞췄고, 애런 맥기와 게이브 미나케를 선발했다. 셋이 '삼각편대'라 불렸고, 주엽이는 '포인트 포워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3명의 호흡이 아주 잘 맞았다. 팀이 인수된 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면서 선수단이 많은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또한 SK와의 대결도 색다른 기억으로 남아있다. KTF 창단 초기에는 SK와 '통신사 라이벌'로 불렸고, 이 때문에 SK전은 꼭 이기려고 노력했다."

위성우 감독 (현 춘천 우리은행)

만년꼴찌 우리은행6개팀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지만, 우리은행은 2000년대 후반 만년 꼴찌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었다. 위성우 감독 부임 전까지 4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으니 말이다. 4년 동안 감독이 3차례 바뀌며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위권에 머물며 드래프트에서 연달아 유망주를 선발했지만, 이들이 성장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당시 주축은 임영희였고, 신세계에서 양지희와 배혜윤을 영입했지만, 꼴찌를 벗어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박혜진도 아직 어렸다. 우리은행이 4시즌 동안 거둔 승수는 겨우 28승에 불과했다.

위성우 감독 Said_"신한은행에 있을 때 본 우리은행의 느낌은 지는데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승리에 대한 절박함이 부족했다. 기량을 끌어올리고, 나약한 근성을 키우기 위해선 강한 훈련밖에 없었다. 첫 시즌을 준비할 때는 정말 훈련을 많이 시켰다. 한 번 시작하면 될 때까지 했다. 식사 시간을 넘긴 적도 많다. 선수들이 농구를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강하게 훈련을 했다. 일단 체력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는 반복 훈련이 필요했다. 외국선수는 처음 뽑았던 루스 라일리가 개인사정으로 못 왔다. 어쩔 수 없이 대체선수로 티나 탐슨을 데려왔는데, 너무 나이가 많아 잘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우리은행의 반란단 한 시즌 만에 팀이 이렇게 바뀔 수가 있는 것일까. 만년 꼴찌였던 우리은행은 개막전에서 KDB생명을 물리치며 파란을 예고하더니, 각 팀들을 하나하나 격파하며 단독 1위를 질주했다. 디펜딩 챔피언 신한은행도 우리은행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선수들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체력을 과시했고, 승부처에서의 집중력도 높아졌다. 여기에 대체외국선수로 영입한 탐슨은 다른 팀의 외국선수들을 압도하며 우리은행에 터보 엔진을 달아줬다. 결국 우리은행은 챔프전에서 삼성을 꺾고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다. 꼴찌에서 우승이라는 감동드라마의 탄생이었다.

위성우 감독 Said_"사실 우승은 생각도 못했다. '꼴찌만 면하자', '플레이오프를 가자'라는 게 목표였는데 생각보다 선수들이 훨씬 잘해준 것 같다. 힘든 훈련을 잘 견뎌준 선수들에게 고마웠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임영희가 맏언니로서 역할을 잘해줬다. 임영희가 있었기에 후배들도 잘 따라와 줬던 것 같다. 박혜진은 국내 최고의 가드가 될 만한 자질을 보여줬다. 좋은 신체조건에 기술과 승부근성까지 키웠다. 첫 우승을 정말 힘들게 하면서 선수들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것 같다."사진_문복주 기자, 신승규 기자, 유용우 기자

2015-07-28 김선아( seona@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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