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핀테크,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할까?

테크 2015. 7. 2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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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테크M 편집부 ]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하는데 제3자가 거래정보를 가져갈 수 있는 위험은 없나요?"

"거래 데이터는 데이터베이스(DB)에서만 오가고 이중인증과 자체 일회용비밀번호생성기(OTP)를 사용합니다."

사무실 한켠에 놓인 테이블에 네다섯 명이 둘러앉아 서류를 뒤적이며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난상토론을 벌였다. 요즘 판교 핀테크지원센터 사무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핀테크 스타트업은 자신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에게 조언을 받는다.

기자가 핀테크지원센터를 찾은 6월 15일에는 외환송금 관련 핀테크 업체 가온페이와 업계 관계자들의 상담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코스콤, 신한카드, IBK기업은행의 핀테크 담당자가 탁자에 둘러 앉아 가온페이의 기술 설명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상담이라기보다는 스터디 모임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핀테크지원센터는 정부와 민간이 합심해 핀테크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금융감독원 직원이 상주해 있고, 각 금융기관 핀테크 담당자가 돌아가며 파견근무를 하는데, 하루 3~4건 정도 멘토링을 진행한다. 한 팀당 2시간 정도씩 상담을 하다보면 하루가 훌쩍 간다.

박민성 가온페이 대표는 "우리 솔루션은 은행의 대체제가 아니라 보완재다. 하지만 영역 뺏기로 오해할 수 있어 은행들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궁금했는데 오늘 자리가 큰 도움이 됐다"면서 "특히 다음 단계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이 날 상담에 참여한 금융투자업체 관계자는 "핀테크 스타트업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은행의 영역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특히 이곳에 와서 은행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많이 배운다. 은행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너도나도 핀테크 스타트업 지원

핀테크 열풍에 발맞춰 은행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정부와 협업하는 핀테크지원센터 외에도 자체 핀테크 지원센터를 만들어 기술 스타트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특히 핀테크 스타트업 개발자들을 위해 핀테크 오픈 플랫폼을 제공하는 은행이 늘어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곳이 IBK기업은행과 농협이다. 두 회사 모두 핀테크 오픈 플랫폼 개발을 천명했다. 한 핀테크 스타트업 관계자는 "두 은행의 오픈 플랫폼은 공공기관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처럼 고객이 동의하면 얼마든지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은행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금융사고로 얼룩졌던 이미지를 핀테크로 쇄신해가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IBK기업은행의 오픈형 핀테크 플랫폼의 이름은 'i-ONE뱅크'. 핀테크 기업들이 자신들의 서비스를 i-ONE뱅크에 쉽게 연결하고 탑재할 수 있도록 확장형 플랫폼 구조로 설계했다. IBK기업은행은 핀테크 기업과 공동 개발한 모델을 적극 적용할 방침이다. i-ONE뱅크에 탑재된 대표 사례 중 하나가 사기거래방지 솔루션을 보유한 더치트의 서비스다. 수취인 예금계좌가 사기거래 및 보이스 피싱 등에 활용됐는지를 검증해 준다.

IBK기업은행은 간편결제 스타트업 비바리퍼블리카와 업무협약을 통해 모바일로 간편하게 송금하고 결제하는 '토스(TOSS)'도 지원하고 있다. 토스는 스마트폰에 받는 사람의 전화번호와 보낼 금액, 비밀번호 3단계만 입력하면 바로 송금이 가능한 앱이다. 6월 12일 현재 누적 이용자 수가 38만 명을 넘겼고 하루 거래액이 1억 5000만 원 정도에 달해 국내 대표 핀테크 서비스로 떠올랐다.

점자 스마트워치를 개발한 닷과도 손잡았다. 금융거래내역을 메시지로 전송받는 서비스 'IBK ONE알림'에 닷의 점자 스마트워치 기술을 접목할 계획이다. 닷의 기술이 적용되면 장애인도 입출금 거래내역과 신용카드 승인내역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NH농협은행도 핀테크 활성화를 위해 오픈 플랫폼을 구축한다. 웹케시와 핀테크 오픈 플랫폼 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해 핀테크 기업 지원사격에 나설 예정이다. NH농협은행은 오픈 플랫폼을 통해 표준화된 금융 API를 스타트업에 제공한다. API는 운영체제와 응용 프로그램 사이의 통신에 사용되는 언어나 메시지 형식으로 국내 금융사가 직접 구축하는 것은 농협이 최초다. 핀테크 기업 입장에선 공개된 API를 활용해 자체 서비스를 만들어 유통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은행이 기술력 있는 핀테크 기업을 따로 찾아 나서지 않아도 스스로 아이디어를 들고 찾아오게 되니 서로 윈윈이라는 평이다.

오픈 플랫폼형, 프로그램형, 공간제공형 등 다양

핀테크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과 공간을 제공하는 은행도 부쩍 늘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12월 핀테크 사업부를 신설했다. 금융권 최초 부서 규모의 핀테크 전담조직이다. 우리은행 핀테크 사업부에는 23명의 은행직원과 계열사인 우리카드, 우리FIS(전산 전문회사) 직원들이 파견 근무 중이다. 이곳에서는 크게 지급결제·송금, 신기술 발굴, 스타트업 제휴, 인터넷 전문은행 등 4개 분야의 사업을 추진한다.

그 결과, 올해 상반기 ICT 기업들과 다양한 공동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집단지성 활용 사기방지 솔루션 스타트업 더치트와 양해각서를 맺고 사기거래 피해예방 대응에 나선다. 더치트는 사기피해자 제보 등에 근거해 계좌이체시 상대방 계좌가 사기에 활용된 이력이 있는지 실시간으로 분석, 공지해 사기를 막는 기술을 개발했다.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별도의 채널도 만들었다. 우리핀테크늘품터는 일대일 컨설팅을 통한 사업화 지원, 외부기관 연계 컨설팅, 핀테크 사업 아이템 경연, 세미나 모임 개최 등을 통해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늘품터에서 발굴한 사업을 은행의 서비스로 도입하고 핀테크 기업에 대출·투자 등 금융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전문가 실무협의회를 설치해 신속한 의사결정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은 3월 KB핀테크HUB센터를 출범시켰다. KB핀테크HUB센터에는 KB국민은행 3명, KB국민카드 1명, KB투자증권 1명, KB데이타시스템 1명 등 각 계열사에서 선발된 직원 6명이 상주한다. 최근 60여 개 업체와 면담을 진행(6월 첫 주 기준)한 KB국민은행은 상담부터 기업공개(IPO) 지원까지 단계별 지원체계를 강점으로 내세운다.

KB국민은행은 핀테크 관련 중소벤처기업에 150억 원 규모의 투자를 할 계획이다. 투자뿐 아니라 각 계열사와 연계한 성장 지원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모바일 결제송금서비스(20억 원), 모바일 금융보안(50억 원), 모바일 거래 및 인증시스템(40억 원), 데이터 분석 및 예측을 위한 알고리즘 기반금융기술(40억 원) 등 4대 주력투자분야 기업에 지분 투자와 지식재산권 투자 형태로 지원한다. 현재 모바일보안업체 S사와 딜소싱(deal sourcing,투자건 발굴)을 진행하고 있으며, 채널인증업체 T사에 대한 투자를 검토 중이다.

5월에는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상용화가 이뤄지는 스마트 인증분야를 주제로 '핀테크-Day'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스마트인증에 대한 실수요를 가진 계열사를 참여시켜 실질적 협력이 가능한지 가능성을 타진했다.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 전면개편을 준비하는 KB투자증권 업체들의 기술을 비교·분석했다.

신한은행은 핀테크 기업 육성을 위해 '신한 퓨처스랩'을 가동한다. 퓨처스랩 설명회에만 80여 개 국내 핀테크 업체가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신한은행은 신한퓨처스랩 프로그램을 통해 유망 회사를 발굴하고, 12주간 멘토링을 제공한 뒤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IBK기업은행은 올 하반기에 핀테크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공간인 'IBK금융그룹 드림랩(Dream Lab)'을 설립한다. IBK핀테크 드림 솔루션 프로그램을 통해 핀테크 기업을 발굴해 지원하고 육성할 방침이다.

하나-외환은행 역시 하나은행 본점에 핀테크 기업을 위한 사무공간 '핀테크 원큐랩(1Q Lab)'을 열었다. 이곳에는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신용평가 기술 핀테크 업체와 얼굴인식 보안 솔루션 업체 파이브지티가 입주했다.

그래도 스타트업은 목마르다

핀테크 기업 지원책이 쏟아지며 은행과 핀테크 기업 사이는 부쩍 가까워졌지만 아직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둘의 관계가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동분서주하는 은행가를 반기면서도 아직 목마름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분위기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일부 은행에선 자체적으로 핀테크 서비스를 선보였지만, 같은 은행끼리만 가능한 반쪽자리 서비스"라고 지적하면서 "스타트업 지원책도 생색내기용이 많다. API를 열어주는 은행도 있지만, 아직 대부분의 은행이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면서 스타트업을 못미더워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보안 불안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다. "기술적 보안을 걱정하는 은행은 드물다. 오히려 보안 심의를 하면 잘 돼 있다고만족할 정도"라며 "은행이 핀테크 스타트업을 부담스러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직 레퍼런스가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꼬집는 의견도 나왔다.

과거에는 정부 규제가 발목을 잡았다면 이제는 민간 규제의 느낌이 든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요즘 정부에서는 규제를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예전에는 질의 자체가 힘들고 오래 걸렸는데 요즘은 20일 안에 해석을 내려준다. 은행도 적극적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보수적인 성향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은행도 할 말이 있다. 갑작스런 핀테크 열풍에 동참하려고 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어려움이 많다.

핀테크 지원자금을 확충했지만 너도나도 핀테크 기업이라며 나서는 터라 제대로 된 핀테크 기업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열린 한 핀테크 스타트업 데모데이 행사에서도 다양한 기업들이 무대에 올라 자신들의 기술과 사업을 소개했지만 뒷자리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관계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관계자는 "모든 IT가 은행에 적용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은행 업무에 어떤 식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제대로 된 핀테크 기업은 별로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조은아 기자

[본 기사는 테크M 2015년7월호 기사입니다. 핀테크에 대한 다양한 기사를 매거진과 테크M 웹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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