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딸 얼굴, 십자수 10만땀으로 새기다

이희훈,김동환 2015. 7. 2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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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월호 유가족 김종근씨 "진척없는 진상규명, 울화통 터지죠"

[오마이뉴스 이희훈,김동환 기자]

 수정이가 떠난 방에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보내 온 편지와 선물들로 가득 했습니다. 그리고 수정이 아빠가 직접 수 놓은 십자수 액자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었습니다.
ⓒ 이희훈

"수정이가 그렇게 가고 나서 매일 집 옥상에 올라가서 울었어요. 그래도 계속 생각이 나서 알아본 게 십자수였습니다. 날마다 사진 속 얼굴을 보고 한땀 한땀 뜨면서 무언의 대화를 하는 거죠."

초점 잃은 시선이 잠시 허공 위로 떠올랐다. 딸의 모습을 기억하며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딸 바보'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고(故) 김수정 학생의 아버지 김종근씨다.

김씨는 세월호 유가족 사이에서 '십자수 아빠'로 유명하다. 딸 사진을 모델삼아서 실물 크기에 가깝게 만든 대형 십자수 때문이다. 그는 지난 11개월 동안 서툰 손으로 하루에 9시간 넘게 딸 얼굴에 매달렸다.

동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살려고 했다'고 답했다. 사고 소식을 들은 후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데다 울화까지 겹쳤다. 금방 될 줄로 알았던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이 유족들의 뜻과는 달리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어그러지는 것을 지켜보자니 견디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사고 진상규명을 쫓느라 1년 정도는 직업을 갖지 못하고 지냈다. 그동안 그가 국가에서 받은 거라곤 몇백만 원 정도의 생활지원금과 안산시에서 면제해준 연 4만 원 정도의 수도세 뿐이다. 사정을 모르는 지인들은 '돈 많이 받아 좋겠다'는 인사를 건넨다. 서러움이 짙어질수록 딸이 더 보고 싶어졌다. 김씨에게 십자수는 현실을 잊고 딸과 마주할 수 있는 해방구였다. 
 수정이가 수학여행을 떠난 날짜를 아직 지우지 못하고있습니다. "18일 날 옴"이라고 적어 놓은 게시판을 보며 수정이 엄마는 또 눈물을 흘립니다.
ⓒ 이희훈
 수정이 세 자매의 사진이 곳곳에 걸려있습니다.
ⓒ 이희훈
지난 11일 찾은 그의 집 곳곳엔 수정양의 흔적이 가득했다. 주인 없는 방에서는 갓 삶아낸 감자 냄새가 났다. 고인이 가장 즐겨먹던 간식이다. 가족 알림판으로 사용하던 화이트 보드는 1년 넘게 쓰지를 못하고 있다. 수정양의 수학여행 일정을 표시해둔 '18일에 돌아옴'이라는 글씨를 지울 수가 없어서다.

장례를 치른 지도 1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매일같이 딸이 안치된 납골당을 찾았던 김씨 부부지만 딸의 죽음은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김씨는 "지금도 딸이 올 것 같은 생각에 밤이 늦어도 현관문을 잠그지 못하겠다"라고 털어놨다. 노트북을 편 기자에게 삶은 감자가 담긴 접시를 밀어내며 권하는 김씨의 손가락엔 '수정'이라고 새겨진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딸 얼굴 너무 보고 싶어... 하루 9시간 십자수 떴죠"

 수정이의 생전 사진으로 만들어진 십자수 도안과 십자수 도구들.
ⓒ 이희훈
 딸들의 이름이 적힌 반지를 끼고 있는 수정이 아빠 김종근씨. 여느 아빠와 다르지 않은 투박한 손이다. 수정이 엄마는 "나보다 더 섬세하고 바느질도 잘해요"라고 말했다.
ⓒ 이희훈
- 십자수는 어떻게 하게 됐나요?
"작년에 국회에서 농성할 때 유가족 엄마들 중 몇 명이 십자수를 했어요. 아이 얼굴로 베개를 만든다고 하는데 괜찮아 보이더라고. 그런데 아빠가 그걸 들고다니기는 좀 그렇잖아요. 근데 딸 얼굴이 너무 보고 싶었어. 그래서 집에서만 하는 걸로 생각하고 시작했죠."

- 처음 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큰 걸 만들었나요?
"아. 패턴을 만들어주는 업체가 있어요. 거기 사진을 갖다주면 실이랑 패턴을 갖다 줍니다. 그러면 색깔 실을 바꿔가면서 칸에다 뜨는 거죠."

- 칸이 상당히 작은데.
"이거 할려고 안경을 새로 맞췄어요. 사고가 발생한 이후로 시력이 갑자기 나빠져서. 가끔은 운전하는데 물체가 두 개로 보였어요. 치료받고 나서 지금은 좀 괜찮아지긴 했는데."

- 얼마나 걸렸나요.
"두 개 만들었는데 큰 거는 7개월 정도 걸렸어요. 11장의 패턴을 채워야 하는데 패턴 1장에 7000칸이니까 총 바느질은 7만7000땀 정도 되지요. 작은 거는 땀 수가 4만 땀 정도로 적고 패턴도 조금 쉬운 편이라 4개월 정도 걸렸어요."

- 딸 얼굴 한참 봤겠어요.(웃음)
"그렇죠. 처음 할 때는 3일 밤을 샜으니까.(웃음) 보통 십자수를 뜰 때는 테두리부터 잡아요. 그런데 저는 얼굴부터 시작했어요. 빨리 보고 싶어서. 눈, 코, 입 먼저 해놓고 주변을 채워갔죠. 이거 하느라 사람들도 거의 못 만났어요. 하루 평균 9시간은 떴으니까."

- 다른 생활은 안 하셨어요?
"제가 사고 이후 1년 동안은 일을 못했어요. 진상규명 때문에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또 일도 손에 안 잡히잖아요. 그런데 되는 일은 없고…. 그럼 딸이 보고 싶어지니까 집에 와서 이걸 하는 거죠. 양반다리 하고 한 2~3시간 뜨다가 다리 저리면 옥상 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와서 다시 뜨고…. 그런 식이었어요."

"치적은 그렇게 밝히려고 하면서 세월호 진상은 감추려고만 해"

 수정이가 잠들어 있는 납골당에서 아빠는 눈물 흘리는 엄마를 토닥여줍니다.
ⓒ 이희훈
 엄마는 딸의 유골함과 사진을 들여다보고 울기를 반복합니다.
ⓒ 이희훈
- 왜 이 작업에 매달린건가요? 
"너무 답답한거죠. 유가족들은 다들 그래요. 1년이 지나도록 뭔가 진전되는 게 없잖아요. 아마 세월호 사고가 빨리 마무리가 됐다면 저도 이렇게 필사적으로 딸 얼굴 뜨는 데 몰두하지는 못했을 거에요. 제가 너무 힘드니까 살려고 한 거죠.."

- 어떤 점이 답답한가요.
"TV 볼 때마다 울화통이 터져요. 방송 같은 곳에서 유가족들이 받는 억대 보상비만 강조하면서 보도하니까 친했던 사람들까지도 우리가 떼돈이라도 번 줄 알아요. 국가에서 주는 긴급 생활지원금 말고는 10원 한 장 받아본 적이 없는데. 돈은 나중이고 진상규명이 우선이라는 입장도 여러 번 밝혔는데도 그래요."

- 유족들은 아직도 진상규명이 1순위라는 입장이죠.
"억울하게 숨진 내 새끼가 왜 그렇게 죽었는지부터 밝혀달라는 게 우리 요구예요. 아니 그게 그렇게 어렵나. 대통령이 어디 가서 뭐 했네 이런 건 크게 나오잖아요. 자기들 치적은 그렇게 밝히면서 이건 왜 그렇게 감추려고 드는지 이해가 안 가요."

- 유가족들은 정부가 어떤 걸 감추려고 한다고 생각하나요.
"얼마 전에 저희가 세월호 수중 촬영을 하려고 팽목항에 갔는데 해양수산부에서 못 들어가게 막았어요. 떳떳하다면 수중 촬영 막을 이유가 없잖아요. 기사 보니까 '88수중'이라는 업체는 두 달 전에 가서 세월호 촬영을 했대요. 그때는 왜 안 막고 유가족들이 뭐만 하면 막느냐는 거죠. 세월호 인양도 마찬가지예요."

- 1년 전에 '인양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놓고도 정부가 뒤늦게 발표한 게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죠.
"어떻게 보면 정부는 '뭉개기'만 하는 것 같아요. 시간만 지연시키려고 하고. 인양한다고 했으면 빨리 작업을 해야죠. 지금 시기가 딱 좋은데 왜 또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내는지…. 하여튼 그런 거 보고 있으면 또 십자수 뜨고 싶어져요. 딸 얼굴 보는 게 제일 마음 편해요. 이제 가장 큰 사진이 남았는데 그것도 조만간 시작하려고 해요."

- 딸이 사진을 많이 찍어놔서 불행 중 다행이네요.(웃음)
"아니에요. 수정이는 사진 찍는 건 좋아했는데 찍히는 건 싫어했거든요. 정면에서 찍은 사진은 거의 없어요. 다 친구들이 몰래 찍거나 해서 갖고 있다가 사고 후에 저희한테 건네준 사진들이에요. 그래서 제가 요즘 '정면으로 사진 찍는 것도 효도'라고 얘기를 해요.(웃음)"
○ 편집ㅣ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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