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정원 대선개입·세월호·자원외교 비리..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국가

CBS노컷뉴스 김주명 기자 2015. 7. 1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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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대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을 인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2심에서 유죄판단의 근거가 됐던 국정원 직원 이메일에 첨부된 파일이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았다.

대선이 끝난지 2년 7개월이 지났지만 국정원 댓글사건의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기까지 또다시 얼마나 기다려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는 해에 엄정중립을 요구받는 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해 선거에 영향을 주려한 행위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흔드는 국기문란이자 헌정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하지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처벌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뿐 아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일부를 열람하고 공개한 혐의로 중앙지검으로 소환됐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집권당의 실세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일부를 선거과정에서 공개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심지어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공개하고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최근 성완종 리스트 사건과 관련한 검찰 수사 역시 마찬가지다.

돈 전달 의혹이 언론을 통해 제기된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총리만 기소됐을 뿐 나머지 이 정권의 실세들은 사법적 책임은 물론 정치적 책임조차 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살한 성 전 회장의 측근들만이 구속됐을 뿐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이뤄진 자원외교나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혈세가 엉뚱한 곳에 씌여져 막대한 예산이 유실되고 낭비됐지만 어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엄정중립을 지켜야할 국가의 정보기관이 국민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해도 처벌받지 않고 국민의 예산을 집행하는 정부가 잘못된 판단으로 예산을 펑펑 낭비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법의 정의'에 대한 신념이 사라진다.

세월호 승무원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린 지난 4월 28일 오전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 15명이 광주고등법원 법정에 배석했다. (사진=박종민 기자)
세월호 침몰 참사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조리가 노출된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선장과 승무원 등 세월호 침몰이나 구조과정에서 직접적 책임이 있는 일부만이 기소됐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죄를 지어도 감출 수 있고, 피해 갈 수 있다는 생각들이 만연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가 되고 있다.

특히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2013년 전국 성인남녀 17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법집행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76.3%가 "돈과 권력이 많으면 법을 위반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지도자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법률적 정치적 책임을 회피한다는 인식이 만연하면 지도층에 대한 신뢰의 상실로 이어진다.

이는 결국 사회의 통합과 국민통합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2011년 법률소비자연맹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77%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법을 지키면 손해 본다는 말에 동의하는가?'에 대해서도 42%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우리 사회가 정의롭다거나 법이 정의의 보루라는 국민들의 신념이 사라져 법치의 기본이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일본의 유명한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일본은 전쟁이나 원전 사고 등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며 일본 사회의 책임 회피 성향을 비판했다.

"1945년 종전(패전)에 관해서도,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에 관해서도 누구도 진심으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결국 누구도 잘못하지 않은 것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보면서, 최근 우리 사회에 파문을 일으킨 이른바 지도층의 도덕적 불감증과 무책임을 지켜보면서 일본 사회에 대한 하루키의 비판이 떠오른다.

우리 사회도 책임회피의 사회가 되고 있다는 우려가 깊어진다.

[CBS노컷뉴스 김주명 기자] jmk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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