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천만원으로 부부가 직접 지은 땅콩집

취재 이세정 사진 변종석 2015. 7. 17. 16: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주 주택_ 삼달리 ZeZuZip

무심코 지나가면 놓치고 만다. 울창한 나무에 둘러싸여 목재 외장은 도드라지지 않고, 지붕도 제주의 흔한 감귤창고와 꼭 닮았다. 10년 전 이곳으로 이주한 김상연, 김은정 부부는 지난 1년간 둘의 힘만으로 집을 지었다. 이처럼 제주 풍광에 자연스레 녹아든 집을.

10년 전 어느 날, 앳된 부부 한 쌍이 제주 땅에 발을 디뎠다. 수중에 가진 돈은 단 50만원.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이들은 더 이상 학업을 진행하기 벅차 귀국을 결심했지만, 서울로 돌아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가진 돈으로 원룸 한 채 구할 수 없었고, 바로 취직이 될 리도 만무했다. 그때, 남편 김상연 씨가 솔깃한 제안을 했다.

"마침 겨울이 다가오니, 감귤 선과장에 가면 숙식은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아내는 단숨에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무작정 제주로 들어왔다. 선과장에서 3개월 일하고 모은 돈은 700만원. '신구간'이라 불리는 제주 이사철에 부부도 드디어 보금자리를 구했다. 그 때가 2006년이었다.

"우리가 번 돈으로 우리가 먹고 사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았어요. 소소히 부모님 용돈도 드린 날은 너무 기뻤고요."

아내 김은정 씨의 말처럼, 그 뒤 제주에서의 삶은 행복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일이 없을 때는 쉬었다. 원래 상연 씨는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건축회사를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회사 일로 건축을 접하다 보니 더 배우고 싶어졌고, 고심 끝에 유학을 결정했던 것이다. 파리에서 그는 건축학교 1학년부터 다시 시작했고, 얼떨결에 남편을 따라 온 은정 씨는 미술사를 공부했다.

제주에 와서도 상연 씨의 건축 공부는 계속됐다. 처음에는 목조나 철골 건축회사에서 일하고, 경력을 좀 쌓은 후에는 창호회사로 옮겨 디테일 도면을 그리고 전문 시공 기술을 익혔다. 이타미준이 설계한 방주교회 창호 공사까지 맡을 정도로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은정씨 역시 전공을 살려 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김영갑 갤러리에서 학예사로 일하기도 했다.

"저흰 제주에 와서 아직 유명한 관광지, 올레길 같은 데도 못 가봤어요. 그냥 열심히 일만 하느라 친구도 별로 못 사귀었죠. 집짓기를 결심하고 1년간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도 변화가 찾아왔어요."

부부는 작년 4월 초, 집짓기를 시작했다. 위치는 김영갑 갤러리가 있는 서귀포시 삼달리. 원래 귤밭이었던 터는 모양이 길쭉하고 못 생겨서 다른 사람들은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상연 씨 마음에는 찼다.

"집을 짓는 게 저한테는 졸업논문을 쓰는 거 같았어요. 제 인생의 한 장을 정리하는 의미 같은 거죠. 이 땅에 최대한 우리의 삶과 제주도에 대한 애정이 녹아들어간 집을 그리고 싶었어요."

설계 과정에서 제주 감귤밭의 창고는 좋은 모델이 되어 주었다. 돌 혹은 시멘트블록으로 쌓아올린 벽에 목수가 짠 나무 트러스, 그리고 슬레이트 지붕이 전부이지만, 그의 눈에는 볼수록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상연 씨가 3개월의 고민 끝에 내민 설계도 역시 창고 같은 집이었다. 가구당 면적은 45㎡, 13평 남짓한 두 집이 데칼코마니처럼 붙어 있는 땅콩집. 부부가 사는 데 13평이면 족하니, 나머지 한 채는 원하는 사람들에게 임대를 주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하면 되겠다 싶었다.

이제 진짜 실전이었다. 부부는 기계 장비를 쓰는 일을 최소화하고, 둘의 힘으로만 집을 짓자고 마음먹었다. 다행히 은정 씨는 대학시절 조소를 전공한 덕에, 공구를 다루는 데 큰 두려움은 없었다. 그렇게 1년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House Plan]

건축비는 얼마나?

순수자재비 약 5천만원+ 전기설비 등 외주 비용 약 1천만원+ 부부 예상 인건비(1년간) 약 5천만원= 총 1억1천만원 정도

곡괭이와 삽으로 땅을 파고 시멘트를 비벼 기초를 만들었다. 성연 씨는 용접을 하며 골조를 세웠다. 구조재로는 큰 사이즈의 각파이프를 사용했는데, 상연 씨가 보기엔 아연도금해 녹도 안 슬고, 가볍고 가격까지 싸니 최고의 자재였다. 필요한 만큼 잘라 쓰고, 부족하면 직접 용접해 이어 쓰다니 얼마나 편한가. 게다가 추후 리모델링까지 고려한 창고형 평면과 단면이 적용된 집이라 각파이프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여기에 샌드위치 패널을 두르고 지붕은 컬러 골강판을 택했다. 주변 감귤 창고에 쓰는 소재라 이질감이 없고, 시공 방식도 간단해 오히려 하자가 적을 거란 판단에서다. 이후 창호 시공, 칸막이 제작, 페인트칠, 마루 깔기, 타일과 변기 설치 등 그 모든 과정이 차곡차곡 이어졌다.

[Interior Source]

내벽 마감재: 에나멜페인트, 수성페인트 바닥재: 오크 원목 프로링 수전 등 욕실기기: 대림바스 현관문: 이건창호 방문 및 가구: 직접 제작 데크재: 방부목

"셀프집짓기의 단점은 공사 속도가 참 느리다는 거예요. 그런데 느린 만큼 생각할 시간이 많으니 좋은 점도 있어요. 문제가 생기면 납득할 만한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오랜 시간 토론할 수 있지요. 처음 설계할 때 외장재를 결정해 놓았는데,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달간 다른 공정을 하면서 계속 고민했답니다."

오랜 고심 끝 결정한 외장재는 '방부기스리'라 불리는 폭이 좁은 각재다. 원래 사이딩 밑 작업에 쓰는 부재인데, 이 집엔 세로로 두 겹 시공해 볼륨감을 주고 외벽 방수 역할도 더했다. 무엇보다 회베당 가격이 가장 저렴한 자재라는 데 엄지를 치켜든다.

인테리어 공사는 생각보다 혹독했다. 은정 씨는 특히나 페인트 작업이 너무 힘들었다고 회상한다. 퍼티하고 갈고, 마르고 다시 칠하는 지루한 작업이 끝없이 이어졌던 것. 그 즈음 상연 씨는 마루를 깔았는데, 그마저 한 달은 족히 걸렸다. 한 공간에서 같이 일하면서 둘이 투닥거리는 날도 많았다.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싸웠어요. 지금 보면 저기 할 때 싸웠고 여기 할 때 싸웠고, 그런 추억만 남았네요(하하). 남편은 건축 문외한인 제가 초등학생 같은 질문을 하면 참다참다 짜증을 내고, 나중엔 방해하기 싫어서 내 마음대로 하면 그것 때문에 혼나고, 맨날 그런 식이었죠."

상연 씨에게 제일 힘들었던 순간을 물어보니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주위의 시선이요. '니들 부부가 잘 할 수 있겠어? 그런 재료로 집을 짓는다니 말이 돼?' 이런 말들을 듣는 게 힘들었어요. 웬만한 뚝심 없으면 못 했을 거예요."

김상연 씨가 말하는 제주 조립식 주택 짓기 팁

+ 샌드위치 패널로는 처마를 뽑아내면 안 된다. 그 부분의 열교로 결로가 생기고 실내에 물이 떨어지는 하자까지 발생할 수 있다.

+ 흔히 창틀에 '유바'라고 부르는 'ㄷ'자 부재를 시공하는데, 철 소재인지라 한여름에는 표면온도가 60~70℃까지 오른다. 이 열기가 실내로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으니 주택에서는 되도록 쓰지 않는다.

+ 창호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제주에서는 강한 바람, 태풍으로 키 큰 창은 꺾이기나 틈이 생기기 쉽다. 창호는 PVC라도 스틸 보강이 되어 있는 제품을 고르고, 기밀성이 높은 것으로 선택한다.

그렇게 부부의 땀과 눈물, 가끔씩의 환희가 섞인 집이 1년 만에 제 모습을 갖췄다. 부부가 직접 지은 집이, 그것도 건축하기 까다롭다는 제주에서 1년 만에 완성되었다는 소식에 주변 사람들도 신기해했다.

수십 년 넘은 후박나무, 팽나무, 동백나무가 집을 둘러 그늘을 만들고, 데크 너머 무밭이 싱그러운 집. 흙 마당은 따로 없지만, 실내에서 큰 창을 통해 자연을 맘껏 즐기기 부족함이 없다. 우거진 나무 덕분에 아침이면 새들이 날아와 잠을 깨우는, 이름하여 '제주집(ZeZuZip)'. 군더더기 없는 이름까지 집을 닮았다.

어느덧블로그를 통해 묵고 가는 여행객들도 많아졌다. 부부는 일주일 살기, 한 달 살기 같은 프로그램으로 집을 내주기도 한다. 그래서 관광지보단 맨 얼굴의 제주를 느끼고자 하는 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사람들에게 이런 공간을 경험해 볼 많은 기회를 주고 싶어요. 작지만 평면 구성이 간결하고 동선이 짧아 생활 자체도 심플하게 만드는 집. 친환경 주택이니 패시브하우스니 하는 화려한 콘셉트보다 최소한의 면적으로 사는 삶, 그래서 자연에 폐를 끼치지 않는 게 먼저잖아요."

부부는 앞으로 여력이 되면 지금보다 더 작은 집을 지어보고 싶다. 지을 때도 허물 때도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그래서 자연에 더 가까운 집 말이다. 의뢰 받아 짓기보다는 조금씩 하고 싶은 건축을 하면서 나이 들고 싶다. 상연 씨는 건축으로 돈을 버는 것보다 그냥 내가 전보다 건축을 더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나중에 요 근처 버스정류장 앞에 작은 가게 하나 차리고 싶어요. 옛날 시골 점방 같은 거요. 손님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죠. 우린 둘이서도 충분히 신나고 재밌는 걸요."

월간 <전원속의 내집>의 기사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습니다. 무단전재, 복사, 배포는 저작권법에 위배되오니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Copyright © 월간 전원속의 내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