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가지뉴스]미국 대선에서 70대 사회주의자가 뜬 3가지 이유

정대연 기자 2015. 7. 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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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의 ‘뻔한 승리’가 예상됐던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에 70대 ‘사회주의자’가 등장하면서 신선한 파문이 일고 있다.

주인공은 미국 버몬트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3). 샌더스는 사회주의 정당이 뿌리내리지 못한 미국에서 정치인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24년 동안 무소속 연방 의원으로 장수해왔다.

지난 4월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만 해도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월가 친화적인 클린턴을 좀 더 왼쪽으로 끌어오는 역할만 해도 선전하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정도였다.

지난 6일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열린 버니 샌더스의 대중연설에 지지자들이 운집해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샌더스를 바라보는 미국 시민과 언론의 시선이 최근 몰라보게 달라졌다. 대선 풍향계로 불리는 뉴햄프셔주와 아이오와주에서 클린턴과 샌더스의 격차는 급격히 좁혀지고 있는데, 뉴햄프셔에 대한 WMUR/CNN 조사에서 5월 31%포인트 차이가 났던 두 사람의 지지율은 최근 8%포인트까지 좁혀졌다. 아이오와에 대한 퀴니피악대 조사에서 5월 45%포인트에 이르렀던 격차는 최근 19%포인트로 줄었다. 지난 1일 위스콘신에서 열린 샌더스의 첫 집회에는 1만 명이 운집해 지난달 뉴욕에서 열린 클린턴의 첫 대중연설에 모인 5500명, 공화당의 선두주자 젭 부시를 보기 위해 모인 3000명을 압도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샌더스는 지난 4월 공식 출마 선언 뒤 두 달 동안 1500만 달러(약 168억 원)의 후원금을 모았다. 같은 기간 클린턴의 4500만 달러에 비하면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후원금을 낸 40여만 명 중 99%가 250달러 이하 소액 후원자다.

CNN의 뉴스쇼 진행자는 지난 5일 방송에서 샌더스에게 ‘내각 진용’에 대한 구상을 묻기도 했다. 샌더스는 “아직 내각 얘기를 하기에는 이르다”면서도 폴 크루그먼, 조지프 스티글리츠, 로버트 라이시 등 중도 좌파 경제학자들을 거론했다.

미국에서 ‘샌더스 열풍’이 불고 있는 세 가지 이유를 살펴봤다.

미국 민주당 후보로 대선 출마선언을 한 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이 지난 4일 아이오와주 워키서 열린 독립기념일 행진에서 지지자와 사진을 찍고 있다. 워키 | AP연합뉴스

1. 샌더스의 ‘진정성’

샌더스는 대선을 앞두고 갑자기 등장한 인물이 아니다. 미국의 강고한 양당체제 하에서 어느 정당에도 속하지 않은 채 소신을 지켜온 그의 인간적인 매력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많은 미국인들이 민주당과 공화당이 별 차이가 없다고 믿고 있으며, 그 속에서는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샌더스는 대학생 때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민권행진에 참가하고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벌였다. 1981년 버몬트주 벌링턴 시장선거에 출마해 정계에 입문했다. 정치인으로서 ‘노동자와 소외계층이 잘 사는 세상’이라는 메시지를 바꾼 적이 없다.

그는 “대형은행을 해체하고 조세제도를 개혁해 극소수 재벌에 편중돼 있는 부를 중산층과 빈곤층에 재분배해야 한다. 상위 1%가 하위 90%보다 많은 부를 소유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누구도 옹호하기 어렵다”면서 2008년 미국에서 일었던 월가점령운동의 정신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다. 샌더스는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공화 양당이 감세연장안에 합의했을 당시 무려 8시간 동안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통해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같은 부자들의 세금도 깎아주는 것은 감세가 아니다”라며 법안에 반대했다.

또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메디케어(노인·장애인 건강보험)를 미국민 전체로 확대해 단일 건강보험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낙태와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 무상교육, 인종차별 철폐, 선거 공영제도 그의 주요 공약이다.

한편, 샌더스는 2000년 미국 대선 때 무소속으로 나온 랠프 네이더처럼 ‘판을 깨는 사람’은 되지 않겠다고 했다. 그가 민주당 예비경선에 참여한 것은 당시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가 공화당 조지 부시에게 패한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 받는 네이더의 역할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

2. 클린턴의 ‘불통’ 이미지

클린턴이 구태의연한 이미지에 비밀주의를 선호해 진보 성향 언론에서조차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반면, 샌더스는 클린턴보다 6살이나 많은데도 참신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클린턴은 대선 출마를 선언한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으로부터 “북한의 그 친구(김정은)랑 얘기하는 것이 그녀(힐러리 클린턴)랑 얘기하는 것보다 더 쉽다. 버락 오바마와 차별화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됐다는 것 아니겠느냐”는 공격을 받았다. 국무장관 재직시 개인 이메일 계정 사용, 중동 외교실패 등에 대한 질문 공세를 받게 되는 상황을 꺼려 언론 접촉을 가급적 피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때문에 ‘불통’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다.

클린턴은 가족 소유 재단의 후원금 불법모금 논란으로 도덕성 시비에 휘말리면서 ‘보통사람의 대변자’라는 이미지도 많이 손상됐다.

최근에는 첫 경선 프라이머리가 열려 ‘대선 풍향계’로 통하는 뉴햄프셔주 북부의 고햄지역에서 거리행진을 하는 동안 참모진이 시민들이 클린턴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로프를 치면서 불통 이미지가 더 깊어졌다.

언론 인터뷰를 회피해왔던 클린턴은 결국 CNN과 대선출마를 선언한 이래 첫 전국 단위 언론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3. 미국의 ‘불평등 심화’와 ‘좌향좌’

샌더스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갈수록 불평등이 심화되는 미국의 현실과도 맥이 닿아있다. 미국에서는 상위 1%의 소득이 국가 전체소득의 20% 이상을 차지하는데, 1970년대 후반 이후 상위 1%의 소득 비중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반면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은 늘어나고 있다. 갤럽은 1999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자신을 사회적 진보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보수라고 하는 응답보다 늘 적었지만 최근 조사에서 처음으로 동률을 이뤘다는 조사결과를 지난 5월22일 발표했다. 둘 다 31%였다. 1999년 조사에서는 보수가 39%, 진보가 21%였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데이나 밀뱅크는 히스패닉계 이민자 인구의 증가, 젊은 여성들의 생각 변화, 기독교의 영향력 쇠퇴, 공화당 내 우파인 티파티의 득세에 대한 진보 진영의 반발 등을 이러한 변화의 배경으로 들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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