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건보 부과체계 개편, 흐지부지되나

오건호 |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2015. 7. 7.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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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민건강보험 지역가입자다. 매달 은행 계좌에서 나가는 보험료 금액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 근로소득에만 보험료가 매겨지는 대부분의 직장가입자에 비해 나에게는 재산에도 보험료가 부과된다.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직장가입자로 있다가 지역으로 전환된 사람 중 약 절반이 재산 때문에 보험료가 평균 두 배 이상 오른다. 대부분 일자리 사정이 어려워져 지역으로 왔을 텐데 오히려 보험료를 더 내야 하니 황당한 현실이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송파 세 모녀도 월 5만원씩 보험료를 냈다. 월세가 전세금으로 환산돼 재산으로 간주된 결과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재산에 대한 보험료율마저 역진적이다. 재산이 1억원이면 해당 보험료가 약 8만원인데, 30억원에 부과되는 보험료는 26만원으로 3배에 불과하다. 재산 부과 상한액이 30억원이어서 300억원 자산가도 26만원만 낸다. 게다가 재산이 있어도 피부양자로 이동하면 보험료를 회피할 수 있다. 김종대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자신의 사례로 고발했듯이, 그는 퇴임 후 수천만원의 연금소득과 수억원의 재산이 있지만 부인의 피부양자로 등록해 아예 보험료를 면제받는다.

직장가입자 내부도 보험료가 형평하지 않다. 직장가입자 중 근로소득 외 금융소득, 임대소득 등이 있는 사람은 추가소득 연 7200만원까지는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 연봉이 4000만원인 직장 동료 중 한 사람이 별도로 금융소득 7200만원을 벌더라도 두 사람의 건강보험료는 월 10만원으로 같다.

참으로 기가 막힌 보험료 산정이다. 상위계층은 능력에 비해 보험료를 덜 내는 반면 근로소득만 있는 일반 노동자, 전·월세를 살거나 작은 아파트를 가진 서민들은 고스란히 보험료를 내고 있다. 이런 보험료 방식이 지금까지 유지돼 온 게 놀랄 정도이다.

당연히 부과체계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아 왔다. 주위에서 사회보험에 대해 논의할 때마다 꼭 나오는 주제가 건강보험료이다.

한 해 건강보험공단에 제기되는 보험료 관련 민원이 무려 5000만건, 전체 민원의 80%에 달한다. 이제 문제점도 명확히 알려져 있고 연구도 수없이 진행되었다. 소득 파악이 미비하다는 게 그간 현행 제도를 방치한 이유였지만 지금은 파악된 소득에도 제대로 보험료가 매겨지지 않는 상황이고, 지역가입자 대부분이 어려운 서민이어서 재산의 비중을 축소해야 할 근거도 분명하다.

작년에 바뀌리라 기대했다. 국민건강공단도 보험료에 하소연하는 사람들에게 조만간 제도가 개선되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달래 왔다. 정부가 2013년 7월 개선기획단을 출범해 작년 가을 문제점을 상당 부분 해결하는 개편 방향을 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서민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는 경감되고 상위계층 보험료는 오른다. 송파 세 모녀도 월 5만원에서 1만원대로 줄어들 예정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발표한다던 개편안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올해 1월 보건복지부 장관의 일방적 중단 선언으로 한바탕 파동을 겪었고 여론의 뭇매를 맞자 정부와 새누리당이 ‘당정협의체’를 꾸려 상반기까지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결론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자꾸만 불길한 생각이 든다. 당정협의체가 완성된 개편안보다는 여러 방안을 제시할 거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면 최종안을 정하는 위원회를 또 구성하겠다는 건가. 부과체계 개혁에 적극적인 유승민 원내대표의 지위가 흔들거리고, 메르스 사태가 진정된 후 복지부 장관까지 교체되면 작업이 더 지연될 수 있다. 곧바로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수많은 사람들의 보험료가 변하는 중대사를 정부와 새누리당이 정면으로 다룰지 의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태도도 이해하기 어렵다. 올해 초 복지부 장관이 중단 선언을 하자 부과체계 개편이 절실하다며 반짝 열을 올리더니 무슨 ‘인내의 화신’인 양 지켜보고만 있다. 한 달 한 달 보험료에 한숨 쉬는 서민들만 애가 탄다.

삼척동자도 어이없어 할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두고 이리 안이한 게 우리 정치다. 이미 분석할 만큼 했고 대안도 나와 있다. 민심도 충분히 확인되었다. 정부가 부과체계 개편을 중단한다고 했을 때 분개하던 시민들을 벌써 잊었는가? 건강보험료를 상식의 세계로 옮겨 놓자. 제발 건강보험료 좀 공평하게 내자.

<오건호 |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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