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메르스 "국가가 뚫렸다" / 김양중

2015. 7. 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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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에스에프(SF) 영화의 대가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오래전에 출품한 작품이 있다. 한국에서 개봉했을 때 제목은 <우주전쟁>이다. 벌써 10년 전에 나온 영화라 제대로 기억하기는 힘들 것이다. 거의 2시간 동안 상영되는데 대부분의 장면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사람들은 외계인에게 쫓겨 다니다가 잡아먹힌다. 다른 영화처럼 특별한 영웅이 나타나서 외계인을 물리치지도 않는다. 엄청난 무기와 신기술을 장착한 외계인 앞에서 사람들은 속수무책이다. 그러다가 거의 마지막 장면에 오면 외계인은 저절로 죽는다. 지구상에 있는 가장 작은 미생물에 외계인이 쓰러진 것이다. 당시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은 이 영화의 결론에 큰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뚫린 삼성서울병원.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 병원이 바이러스에 무너지다니, 그 자체로 허탈하다. 삼성서울병원은 이곳에서 일하던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이 메르스에 감염됐지만 이들의 치료마저 포기해야 했다. 다른 질환을 치료받기 위해 입원한 환자들 가운데 메르스에 감염된 이들도 국립중앙의료원 등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했다. 초일류 병원이라던 곳에서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하다니, 안쓰럽기까지 하다. 로봇수술장치나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촬영) 등 최첨단 장비로 중무장한 이 병원이 병원감염을 막지 못해 쓰러진 것이다.

삼성서울병원은 병원 안에서 생기는 감염을 막는 데에 크게 부족했다. 메르스 감염을 막기 위한 방호복도 의료진에게 한참 동안 지급하지 않았다. 그 결과 환자를 돌보던 의사·간호사·방사선사 등이 잇따라 감염됐다. 음압병실도 갖추지 않았다. 이 병실은 공기 압력이 외부보다 낮아 병실 안에 있는 바이러스 등이 병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해 감염 확산을 막는다. 병원감염을 잘 막는다고 해서 병원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갖추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영인 출신이 병원의 사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수익만 생각한다면 방호복보다는 돈이 되는 로봇수술기계 등을 더 마련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번 메르스 유행 사태를 겪은 삼성서울병원이 크게 개혁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환자 진료에 있어 수익보다는 환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획기적인 조치를 내놓는다는 것이다. 이 병원의 운영 주체인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이사장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3일 대국민 사과를 할 정도라면 이에 걸맞은 대책이 나올 것이다. 조심스러운 전망이기는 하지만, 이 병원의 개혁은 이곳에서만 그치지 않고 한국 의료 전반을 흔들 파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 병원의 개혁을 우리 사회와 정부가 안을 수 있냐는 것이다.

"삼성이 뚫린 게 아니라 국가가 뚫렸다." 지난달 11일 국회 메르스 대책특별위원회에 참석한 삼성서울병원의 한 의사가 한 말이다. 메르스 유행을 크게 확산시킨 병원에서 나온 말이라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를 비롯해 앞선 정부들도 공익적인 의료는 등한시했다. 의료는 공공의 이익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만 했다. 참여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영리병원을 허용하자고 정책을 펴왔고, 중동을 비롯해 해외 환자를 유치해 돈을 벌라는 주문을 내놨을 뿐이다. 병원이 스스로 감염을 막아야 한다고 말만 했지, 환자 안전을 위한 기본인 병원감염 예산도 지원해 주지 않았다. 메르스 유행 뒤 해결책도 지금까지 그래 왔듯 정부의 행정적인 모양만 바꿀 뿐, 공공병원을 축소하려 하거나 민간병원이라도 공익적 구실을 하도록 지원하지 않는 지금까지의 정책을 반복할까봐 우려된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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